미들어스와 위쳐3의 전투

며칠 전에 술자리에서 문득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미들어스: 모르도르의 그림자의 적과 위쳐3의 적이 가지는 인공지능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 두 게임의 인공지능 철학에 대한 부분이다.

모르도르의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개체(적)들 전체를 총괄하는 상위 인공지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플레이어를 둘러 싼 10마리의 오크들은 모두가 개별적인 공격 기회를 갖는 것이 아니라 한두 마리가 적극적인 공격 태세를 취하는 동안 나머지 오크들은 플레이어와 일정 거리를 두고 둘러싸고만 있게 하고 공격권을 일부 오크에게만 분배해주는 것이다. 이는 10마리 전체를 총괄해서 공격 기회를 나누는 상위 인공지능이 있거나 혹은 오크들 자체에게 공격 조건 자체를 매우 낮은 빈도로 설정해 둔 것일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플레이어가 전투를 매우 단조롭게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흐름 외에 장거리 투창 공격을 하는 오크라든지, 동급의 오크 중에서도 훨씬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는 오크를 만들어 두는 식으로 단조로운 전투를 깨는 방식을 취했다.

게임적으로 볼 때, 플레이어에게 이는 굉장히 훌륭한 경험을 제공한다. 수십 마리 오크에게 둘러싸였다고 하더라도 이들 중 공격하는 소수의 오크를 △로 반격하면서 다른 오크들을 차분히 썰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마치 리듬 게임의 노트처럼 차분하게 썰다가 간간히 등장하는 △로 반격을 하고, 위험한 순간에 굴러서 회피를 하면 된다. 즉 반복되는 패턴(플레이어의 공격 의지)가 있고 거기에 간간히 비정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다른 노트를 눌러주면 되는 구조이다.

반면 위쳐3의 전투는 모든 전투 참여 개체의 인공지능이 개별적으로 돌아간다. 10마리의 구울(ghoul)이 전투에 참여한다고 하면, 구울들은 각각의 공격 판단과 공격 타이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전장 전체의 상황을 신경써야 한다. 혹여 한두 마리가 카메라 밖으로 도망을 가서 공격 타이밍을 가지고 들어온다고 하면 이는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런 설계에서 여러가지 공격 타입을 가진 인간 적은 매우 위협적이다. 근접 거리에서 플레이어의 공격에 방어 동작을 할 뿐 아니라, 특히 방패가 있는 적은 1:1에서도 공격 타이밍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주변 다른 개체들의 공격 상황까지 신경쓰다 보면 전투 진행이 매우 어려워진다. 게다가 여기에 장거리에 활을 든 적이 몇 추가가 되면 근거리의 적들을 신경쓰느라 날아오는 화살에 농간 당하는 일도 잦게 발생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쳐3의 전투가 플레이어에게 아주 어렵지는 않은 것은, 방어 키(L2)가 거의 완벽하게 인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방어 키를 누르고 있는 상태를 항상 유지하고 공격 키(☐)를 가끔 눌러주는 것 만으로도 할만한 전투가 되고, 게임의 설정상 초인인 위쳐는 사인(sign)이라고 마법 공격을 활용하면 훨씬 쉬운 전투를 끌고 갈 수 있다.

  • 여담이지만 이 방어 상태에서 십자패드를 좌우로 움직여 사인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방어의 유지는 위쳐3의 전투에서 아주 중요한 설계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인간 플레이어와 인공지능 개체 사이의 능력을 놓고 봤을 때, 인간의 행동이 (게임이 설정한) 제한적인 능력(기능)을 가지고 있고 정보 수집과 판단에서 인공지능보다 못하다는 면에서 보면, 위쳐3의 주인공은 인간 적보다 훨씬 강하고 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구도가 이를 보정해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위쳐3의 인공지능은 기능의 제약과 정보 수집, 판단 모두에 제한적이고 부족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면에서 게임의 인공지능이 가져야할 기본 자세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전투 방식의 차이가 있고 게임 경험에서 어떻게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는, 게임이 무엇을 제공하려고 하느냐 하는 의도의 부분에서 갈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르도르의 전투는 플레이어에게 수십 수백 마리 오크들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이를 난도질하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였던 것이고, 위쳐3의 전투는 플레이어에게 각각의 전투가 충분히 치명적이도록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플레이어에게 다수와의 전투를 가능하면 피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지게 하고, 전투보다는 드라마에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원한게 아닌가 싶다.

Witcher 3

보통의 게임들은 메인 스토리라인을 제외하면 사이드 퀘스트들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사이드 퀘스트들은 단지 플레이타임을 늘여주고 경험치를 획득하는 귀찮은 작업일 뿐, 개발 쪽에서나 플레이어 쪽에서나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콘텐츠였다.

하지만 위쳐3의 사이드 퀘스트들은 하나하나가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그냥 ‘짧은 이야기(narrative)’일 뿐이 아니라 메인 스토리 퀘스트처럼 플레이어에게 도덕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잃게 되거나 하는 선택이 플레이어에게 도덕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다. 배신하고 은거한 위쳐 동료를 복수를 위해 죽일 것인가 잘 살게 두고 떠날 것인가,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3분 짜리 불량배 이벤트를 보고 지나칠 것인가 개입해서 살인을 할 것인가 등.

이런 선택들은 개발자 인터뷰에서 ‘인과(consequence)’를 강조했다는 이야기에서 예상을 했지만, 게임 전체 모든 선택이 이렇게 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메인 퀘스트들은 선택의 결과가 훨씬 복잡하다. 중요한 여러 선택의 포인트들이 서로 인물 간에 얽히고 섥혀서 여러가지 결과를 낸다. 의뢰인이 자살하거나 의뢰인의 아내가 죽거나 의뢰인이 떠나거나 의뢰 대상과 관련이 있던 마을이 몰살하기도 하는 등으로 결과들이 복잡하게 나타난다.

플레이어가 이 결과들을 아마 모두 볼 수는 없을 거다, 그렇게 플레이를 하라고 만들었다고 보지도 않고. 플레이어는 이 ‘대륙’에서 ‘리비아의 게랄트(Geralt of Rivia)’로서 살아가며 사람들과 엮이고 있을 뿐이다, 마치 실제 인생처럼 플레이어는 선택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때론 급박하게) 고르면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게임은 그래서 보통의 게임보다 훨씬 진지해지고 무겁게 진행된다. 특히 높은 난이도로 진행한다면 전투마저 목숨을 건 사투처럼 만들어 준다면 이 게임을 마치 인생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스토리라인 뿐만이 아니라 캐릭터들의 연기는, 지금까지 그 어떤 게임도 하지 못했던, 사이드 퀘스트의 인물들 마져 표정에 감정이 흘러 나온다. 입을 씰룩이며 조소를 하거나 코를 찡긋거리는 혐오를 내비추는 미세 표정 뿐만 아니라, 망연자실한 표정 몸짓을 대화 가능한 모든 캐릭터가 보여준다. 메인 캐릭터들의 연기는 더할 나위도 없고.

어떻게 보면 위쳐 세계관에서 더 중요한 부분일 거라고 보이는 전투는 그저 양념일 뿐이라고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앞의 언급처럼 높은 난이도로 한다면) 굉장히 리얼하고 신중한 액션 전투를 맛볼 수 있다.

위쳐3는 다른 액션 게임들처럼 구르기로 적의 공격을 회피해서는 공격 거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회피나 방어로 적의 공격을 흘리거나 쳐내고는 바로 반격을 하지 않으면, 특히 인간이나 인간형 몬스터들의 경우처럼 방어를 할 줄 아는 적의 경우에는, 상대의 빈틈을 찾아내기가 매우 어렵다. 덕분에 전투 자체는 활극이라기 보다는 생사를 겨룬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들어 냈다.

위쳐의 본업인 의뢰는 이런 면에서 특히나 더 부각된다. ‘마을을 괴롭히는 몬스터들을 퇴치’한다는 보람도 있고, 그 몬스터에 얽혀있는 인물들의 이해관계도 훌륭하다. 몬스터헌터가 이런 식이라면 훨씬 멋지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역사상 나온 게임들 중에서 모든 면에서 이만한 게임을 찾기가 어렵다. 보통 흔하게 말하기를 ‘영화 같은 게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게임 이전의 게임들을 영화같다고 평한다면 위쳐3는 아카데미 수상작 같은 게임이겠다.

  • Game of the year? 글쎄다, ‘역대급’이라는 표현도 흔한데, 전무후무라고 본다.

두 개의 뉴스.

1. Large-scale Game of Thrones leak has HBO targeting Periscope streams

HBO가 트위터 생중계 앱(페리스코프)을 통해서 ‘왕좌의 게임’을 실시간 중계한 것에 대해서 ‘게제 중지 요청(takedown notice)’을 했다(한국어 뉴스, 블로터). 한국에서 아프리카나 다음팟을 통해서 TV 프로그램을 유통하는 것과 동일하다.

2. One Witcher 3 fan has a simple demand: more butts

위쳐3에서 게임 아트로 만든 배경화면과 달력을 공개했는데 여기에 섹시한 여성으로만 채워져있는 것에 질 발렌타인(Jill Valentine)이라는 한 여성 플레이어가 불만을 가지고 운동을 시작했다는 뉴스다. 그러면서 여자가 벗은 그림으로만 달력을 내지 말고, 여성과 게이 플레이어들을 위해 게랄트(Geralt, 위쳐3의 주인공)가 벗은 그림으로 채운 달력도 출시해달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사 중 이 부분

“Honestly, if we boycotted every game that didn’t consider us as players, we’d have very few games to play,” Jill said. “If you boycott something, you remove yourself from being a part of that market altogether, so they have no reason to consider your wants or needs.”

“솔직히, 우리를 플레이어로 대접해주지 않는 게임마다 보이콧을 한다면, 우리는 할 수 있는 게임이 거의 남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뭔가를 보이콧한다면 우리 자신을 시장의 구성원에서 제외시키는데, 그러면 그들이 우리를 신경써야할 이유나 필요가 없어지게 만드는 거죠.”

라는 인터뷰 내용이 백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