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는 왜 설정을 리셋했나

경고: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스포가 있음

스타워즈는 디즈니가 루카스아츠를 인수하고 스타워즈 시리즈 부활을 선언하면서, 2014년 이전의 모든 설정들을 가품(non-canon)으로 분류해 ‘이제는 없는 것’으로 취급하기로 했다. 진품(canon)이라고 인정을 받는 것 중 2014년 이전 것은 2008년판 CG 애니메이션 <클론전쟁(Clone Wars)>과 TV 시리즈 외에는 없다. 오직 극장판 스타워즈 6편(과 그 원작격 소설)만 남겨두고 다 리셋(초기화)을 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2014년 이전에 나온 모든 외전격 소설과 애니메이션, 게임 등 뿐만 아니라 이들로 파생되었던 사건과 인물, 배경 설정들이 이제 모두 아무 것도 아니게 됐다.

미친 게 아닌가, 무려 30년간 쌓여있던 덕후들이 차곡차곡 모은 설정과 세계관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처음부터 다시’라고 선언하다니.

마지막 경고: 지금부터 진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스포가 있음

<깨어난 포스>는 영화의 곳곳에 지난 세월 동안 스타워즈에 열광했던 팬들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차원에서 다양한 오마쥬를 넣었지만, 그건 30년 세월 팬질에 대한 보답일 뿐이지, 스타워즈는 이제 한 시대가 끝났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는 뜻으로 한 솔로를 죽이는 것으로 그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 것이라고 본다. 이제 너희들이 생각했던 스타워즈는 이 작품으로 끝이고, 이젠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설정으로 다시 시작이야 라는 말이다. 그 동안 고마웠어.

도대체, 왜인가.

그간 스타워즈 팬보이들 사이에서 다양한 설정 논란들과 싸움질, 수십 수백 개에 달하는 외전과 확장된 세계관(Expanded Universe)의 이야기들은 적어도 십수 년, 길게는 20년 이상의 덕질 내공이 되지 않으면 팬보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말하자면, 우리 꼰대들의 세계다.

스타워즈는 아니 디즈니는 스타워즈라는 세계관을 ‘지금의’ 젊은 층에게 다가서기 위해서, 그들이 지난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처음부터 차곡차곡 익히고 학습하게 하는게 아니라 그냥 ‘너희들을 위해서 세계를 초기화 했어’라는 뜻을 보이며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팬이 아니었던 사람이나 지금 이 <깨어난 포스> 한 편으로 처음 시작하는 10대와 20대에게 덕질을 시작할 토양을 만든 것이다. 스타워즈 세계관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기존의 설정이 활용되어 재등장할 수 있긴 하겠지만 그걸 미리 공부해서 올 필요는 없이 지금부터 2017, 2019년에 나올 스타워즈 영화나 아니면 그 사이를 메워줄 지금부터 나올 게임들, 소설들만 보는 것으로도 스타워즈 세계관에 푸욱 젖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한 것이다.

오히려, 이런 면에서 나는, 기존의 복잡하고 사방에 흩어져 있던 세계관들이 다시 차곡차곡 진품으로 정리되어서 재정립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옛날 덕후들은 더 환영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루카스가 대충 땜빵으로 맨날 얼기설기 만들었던 설정들이 깔끔하게 새롭게 정리될 것이란 말이다!

이제 광선검은 포스가 있는 사람만 쓸 수 있는 무기도 아니게 되었고, 천재적인 비행 조종술도 제다이만 가능한 것이 아니게 되었고, 광선검의 다양한 형태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선대 제다이 원로회의 구성원들 이름 따위는 몰라도 되게 되었는데다가, 차세대의 주체적 여성과 흑인 주인공이 이끌어 나가는, 새로운 세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이건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모 세대가 된 올드 팬보이들이 자식과 함께 새로운 세계관을 공부하면서 스타워즈에 빠져들 수 있다는 뜻이다. 부모의 덕질은 이렇게 자녀들에게 흘러들어가고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세계관.

그리고 사실, 30년 동안 곰팡이가 썩고 냄새나던 세계관은 이제 버릴 때가 되기도 했지 말이다.

스타워즈는 왜 설정을 리셋했나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난 레드 오케스트라(Red Orchestra) 같은 리얼리즘 계열의 FPS를 좋아한다. 가능하면 게임이 (현실이 될 수는 없지만) 현실 같은 느낌을 좋아해서, 총을 쏘는 게임들에서도 캐주얼하게 묘사되는 카운터스트라이크(Counter Strike) 류로 이어지는 스타일 보다는 전장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게임들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기존 배틀필드(Battlefield) 시리즈의 러쉬(rush) 모드처럼 진격하고 진격을 저지하고 그런 스타일, 수십 명이 함께 전선을 구축하는 그런 스타일을 특히 좋아했다.

스타워즈 배틀프론트는 거기에 상당히 부합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스타워즈의 세계관이 ‘현실적’이라는 말과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상상하는 그런 이미지, 영화 속에서 스톰트루퍼(Stormtrooper)와 저항군(Rebel)들이 싸운다면 이럴 것이다 하는 상상이 그대로 게임 안에서 묘사되고 있다.

사실 광선총이 있는 시대라면 자동 조준도 그와 같이 발달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눈 앞에 제다이가 광선검을 들고 (말 그대로) 날아오고 있고 달랑 총 한 자루 든 보병으로서 내가 할 일은 그냥 최대한 쏘다가 죽는 거다. 남은 내 동료들이 제다이를 처치하고 이 전투를 이길 거라고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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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프론트의 백미라면 워커 어설트(Walker Assault) 모드다. 앞에 언급한 배틀필드 시리즈의 러쉬 모드를 이제 완성형에 가깝게 발전시킨 느낌인데, 한 발 한 발 멀리서 거대한 AT-AT가 걸어오고 있고 저걸 막지 못하면 아군은 끝장이라는 느낌. 그런 압도감. 이를 막기 위해서 아군의 폭격기(A-Wing)가 오도록 타겟을 잡아줘야 하고, 폭격기가 AT-AT의 방어막를 이온 어뢰로 잠시 다운시켜 놓으면 화력을 집중해서 지상에서 저격해야 한다. 밀린다고 해도 두 번의 기회는 더 있지만, 이 두 번 안에 쓰러뜨리지 못하면 진짜 끝난다. 그런 긴장감과 절박함.

이런 전장에서 개인의 전투력은 그 의미가 매우 작아진다. 혼자서 수십 킬을 하면서 스코어를 올린다고 해도 그건 게임의 승리와 관계 없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장 단위가 되면 개인의 화력보다는 전술 무기들의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보병 학살자라고 부르는 AT-ST 같은 것이나 맵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터렛, 벙커들을 활용해서 전선을 밀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해진다.

배틀프론트는 이런 전장의 느낌이 정말 잘 표현되어 있다. 붉은 광선(총알)이 쏟아지는 속에서 고고히 혼자 녹색의 광선검을 든 루크 스카이워커를 보는 공포감, 멀리서 걸어오는 전차(AT-ST), 포탑에서 날아오는 커다란 광선, 폭발, 킬러 드로이드… 그리고 하얀 설원.

배틀프론트는 기존에 스타워즈가 만들어낸 프랜차이즈 게임들 중에서 단연 최고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워즈 속의 전쟁이 어떤지 거의 완벽한 묘사에 성공했다.

병사로 전쟁터에서 죽이고 죽다가 우연히 찾아오는 영웅이 되는 기회를 얻으면 잠시 제다이가 될 수도 있다. 수십 미터를 점프해 돌진하고 적의 총알을 광선검으로 튕겨내면서 아군 보병들의 진격을 지휘한다. 제다이가 나타나면 보병들은 당연하게 그를 따라 전진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게임의 구조 설계는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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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스타워즈 시리즈의 6편, <제다이의 귀환(Return of the Jedi)>에서 나왔던 숲 속의 전투(엔도 전투)를 배경으로 하는 맵에서는 이게 진짜 영화구나 싶은 수준. 영화 속에서 대충 스피더 씬으로 넘어갔던 숲 속 진격 장면을 게임에서 거의 완벽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기존의 배틀필드식 하드코어한 컨트롤이 아니라 매우 쉽고 간략하게 익숙해지도록 만든 것은 최고다. 게이머가 아닌 스타워즈 팬이 ‘아 스타워즈 게임이라 관심은 가는데…’라고 할 때 바로 시작해도 딱 적응할 수 있는 컨트롤. EA의 판매 목표가 1천만 장~1천 3백만 장이라더니 그게 헛소리가 아니다.

게임의 악평 중 대부분은 게임이 나쁘다가 아니라 맵의 수가 너무 적다 것이다.

지금 그게 문제가 되나!?

스타워즈 배틀프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