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이노스가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서 오랫만에 야구에 푸욱 빠졌더니, 야구 게임이 갑자기 또 당겨서 MLB 2K12를 꺼냈다. 작년 초에 사서 마이플레이어를 좀 키우다가 말았던 게임이었다.

알다시피 마이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자기 캐릭터를 하나 만들고 AA리그에서 AAA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들어가 커리어를 쌓는 방식이다. 야수를 선택하면 수비 포지션에 따라 그 수비 위치로 날아오는 공을 잡아 대처하는 방식이고, 타순에는 타격하고 그렇다. 난 삼진 잡는 맛이 꽤 좋아서 마무리 투수를 선택해서 하고 있다.

상황의 종류에 따라서 스킬들이 투수 능력, 타자 능력, 수비 능력, 주루 능력으로 나뉘어 있고, 해당 분야에서 성과를 내면 보상 점수(Skill Point)를 50~100점 정도 받아 계열 능력에 투자해 점점 성장하는 그런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투수라는게 공을 던지고 나면 1루 커버를 해야하는 등 수비도 해야하고 또 특히 MLB의 내셔널리그는 투수가 타석에서 공도 쳐야 한다. 하지만 공을 던지는 기회는 투수니까 늘상 있지만 수비라든지 타격이라든지는 기회가 그렇게 자주 오지 않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능력치도 낮은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능력 포인트(SP)를 얻기가 쉽지 않다.

결국 잘 하는 능력에는 계속 보상을 받아 성장을 시킬 수 있고, 원래 못 하는 능력에는 애초에 보상을 받을 기회도 적고 성공할 확률도 낮기 때문에 보상을 받을 수가 없다. 여기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다른 게임에서, 특히 FPS를 생각해보자, ‘잘 하는 플레이어’는 전체 플레이어의 10~20%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그러면 잘 하는 플레이어는 상대를 쏴 죽이면서 잘 했다고 계속 보상을 받고 성취감 만족감을 느끼며 플레이를 할 수 있겠지만, 못 하는 플레이어 혹은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이 성취감을 얻고 보상을 얻는 부분을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 것인가. RPG의 경우라고 하면 플레이어들은 정해진 루트를 따라감으로써 완료 보상만으로 되어 있지만, FPS나 대전형 게임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말하자면 게임 시스템 전체의 보상 체계가 상위 그룹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면 이 시스템을 어떻게 해야 전체 플레이어가 모두 만족스럽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나. 성취의 빈도가 잦은 플레이어와 드문 플레이어의 밸런스.

생각해볼 문제다.

FPS를 중심으로 한 경쟁 게임의 점수 기록 문제

대전형 게임 방식이 최근 온라인 게임의 흐름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제 플레이어들의 게임 점수를 어떻게 기록할 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가장 대표적인 대전형 게임인 FPS를 놓고 볼 때, 이제 평가 방법이 단순히 승률(=승리/게임수)만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이고, 다양해진 게임 방식에 일률적으로 15년 전에 만든 킬데스 비율(K/D)을 여전히 아무 수정 없이 쓰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라,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이 글을 시작했다.

점수 기록의 문제

FPS에서 점수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그 기원이 참 애매하다. 그 시작을 종말(Doom)의 데스매치(Death Match, DM)에서 봐야하는지 그 이후에 본격 대중화된 팀데스매치(Team Death Match, TDM) MOD들에서 봐야하는지, 어쨌든 대충 95~6년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는듯하다. (이런 자료 조사는 안했으니 대충 시기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이 ‘킬 = 득점’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이후로, 게임 방식에서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승리 연관 행동(킬)에만 점수를 평가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 중 대표적으로 TDM에서 개인 플레이가 횡행하게 됐다. 팀의 승리를 기록하지 않으므로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피를 다 깎아 놓은 적을 다른 플레이어가 마무리해서 득점을 가로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게임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왜 내가 잡을 수 있는 적을 같이 쏘느냐부터 시작해서.

그러다보니 최대 피해를 주거나 죽기 직전 일정 시간 이내에 킬에 기여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도움(assist) 점수를 주거나 하는 방법으로 이를 개선하려고 했는데, 이건 마치 축구의 어시스트 같은 형태였다. 문제는 이를 ‘N킬 M데스 L어시스트’ 형태로 표시하다 보니 어시스트는 있으나 마나가 됐고 오히려 ‘양념칠만 하고 다니는 바보’ 같은 느낌이 되었달까.

실제로 최근 진화된 형태의 TDM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에게 클래스 형태로 역할을 나누고 있으면서도 이 전통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여, RPG로 친다면 힐러 같은 명백한 도우미 클래스야 도움 많은게 자랑이 되겠지만, 화력지원이나 버프 같은 능력 들에 대해서는 평가가 안된다는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최근 유행하는 전설 리그(League of Legends, LOL)가 그렇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사실 카운터스트라이크 같은 클래스가 없는 대전형 TDM 게임이라면야 도움 정도까지만 기록해주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FPS도 ‘모든 게임의 RPG화라는 흐름’에 따라 본격적으로 클래스 형태를 도입하게 되는데 저격 개념과 돌격 개념이 분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클래스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즉 플레이어들에게 팀플레이라는 걸 요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예고된 문제였지만, 플레이어들은 현재 상태에서 가장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찾는다는 걸 감안하면,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방법 뿐이고, 이 규칙들 중에서 플레이어에게 동기 부여하는 가장 큰 부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시도에서 팀포트리스2(Team Fortress 2)의 점수 계산법도 나름 참고할만한 부분인기는 하지만, 이 전에 미군(America’s Army)은 더 효과적인 형태를 만들었다. 현실 군대에서 보병의 제 1 목적은 목표 달성이고 제 2 목적이 생존이라는 걸 은유하는 방식으로 만들면서 기존 FPS들의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행위는 ‘교전수칙(Rules of Engagement)’ 위반으로 게임중 쌓을 수 있는 점수보다 훨씬 높은 패널티를 부과하고 이게 일정 점수를 넘으면 방에서 강퇴시킨다. 게다가 이것들이 반복되면 게임에서 플레이어를 영창에 가둬버려 영구 추방 효과를 준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사선(line of fire)에 들어온 상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고, 이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한 난이도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예를 볼 때, 앞서 제시한 ‘동기 부여 부분을 바꿔야 한다, 즉 점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점수를 개선하면 플레이어들의 행태가 달라지는 여러 게임들의 사례를 더 확인해보자.

참고할만한 채점 방법들

– 미군(America’s Army)
AA의 경우는 훌륭한 채점 방식이기는 했지만, 이 게임이 사실 게임보다는 시뮬레이션에 가까워 ‘납득’할 뿐이지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의 게임내 성과를 채점하는 기본 룰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이 방법의 가장 큰, 결정적인 문제점은, 생존 점수가 매우 높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맵 구석 은밀한 곳에 짱박히려고 하는 본능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미션을 누가 끝내던 생존 점수를 높게 받기 때문이다.

– AVA
AVA는 반격(Counter Strike, CS)와 같은 전통적인 TDM 게임 방식에 ‘분대장’ 개념을 추가했고, 분대장이 망원경으로 적 병사를 체크한 상태에서 팀원이 그 적을 킬하면 분대장과 해당 팀원이 공동으로 점수를 획득하게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분대장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대신 이 분대장을 게임 계급 최고자에 부여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게 된다. 채점 방식의 문제를 보완하는 다른 장치들이 추가로 필요하게 되었던 것.

이 것 외에도 목표 달성시 팀 전체에 공동 승리 보상을 준다는 것은 협동에 더 집중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특히 전차 호위와 같은 모드(mode)에서는 플레이어들의 전차 수리 점수를 좀 더 높게 주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효과적인 룰이기도 했다. 또한 수비 팀의 경우라면 수리중인 적을 킬하는 쪽에 추가 점수를 줄 수도 있을텐데 싶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시도들에 불구하고 여전히 K/D를 S/D라는 개념으로 바꾸기만 했을 뿐 큰 차이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 K/D가 가지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붉은 합주단(Red Orchestra)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의 1차 목적은 생존이 아니라 목표 달성이고 자기 진영 군의 공동 승리를 추구하게 되어 있으므로, 각 플레이어들의 죽음(D)을 기록하지 않고 킬 점수만 기록한다. 죽음을 신경쓰지 말고 달려 나가라는 뜻. 여기에 또한 게임 시스템의 기본 승리 조건이 ‘시간 내에 목표 달성’을 하거나 ‘적 부대를 괴멸 시키’거나 이므로, 최대한 효과적으로 킬 점수를 올리는 방향으로 게임 플레이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 방법은 오히려 전체적인 팀플레이의 몰입과 생존의 중요성을 밸런스하고 있다. 다만 한 라운드에 보통 20~30분이 소요되는 이 방식이 요즘 주류를 이루는 ‘빠르게 시작하고 빠르게 결론 내기’에 어울리지 않을 뿐.

– 망나니 중대(Battle Field: Bad Company 2)

이 게임은 전통적인 K/D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이 ‘미친듯이’ 돌격하는 플레이 행태를 보이는데,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점수(score)라는 별도의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각 게임에 약 20~30분이 걸리는 하드코어한 형태임에도 불구학고, 플레이어들은 라운드와 상관 없이 매 라운드에 팀에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활동한다. 이는 각자의 캐릭터에 기록되는 뱃지와 점수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으로 현재 진행중인 라운드의 최종 승패 뿐만 아니라 킬 점수, 어시스트 점수, 깃발 획득, 점령 등 모든 게임 요소에 ‘열심히’ 참가하도록 독려한다.

누군가가 킬 점수에만 열중하여 짱박혀 저격질을 할 때의 기여도가 일반 TDM 게임에 비해 매우 높기도 할 뿐 아니라, 16 vs 16 정도의 게임에서 한두 플레이어의 이런 이기적인 행위가 전체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명확하게 전선이 그어지는 구조와 각 클래스의 역할도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이 게임에서 가장 눈여겨볼 시스템은 ‘구원 점수(savior score)’와 어시스트이다. A 플레이어가 B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도중에 C 플레이어가 A 플레이어를 킬할 경우 C는 B를 살린 구원 점수를 얻게 된다. 만약 공격중인 A를 도운 D 플레이어가 있다면 (A는 죽었으므로) D가 킬 점수를 얻고 A는 어시스트를 얻는다. 전체 HP 중에서 A가 기여한 정도가 얼마나 되느냐에 상관 없이 B가 죽기 X초 이내에 데미지를 가한 모든 플레이어가 얻는 것으로 보인다.

합리적 대안

최근 FPS의 TDM은 갈수록 RPG와 같은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현대전을 배경으로 각 플레이어들이 역할을 나누고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공동의 승리를 위해 기여하는 형태 뿐만 아니라, 심지어 환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들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전사, 마법사, 성직자, 도적 같은 클래스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고 이들의 행동을 어떻게 판정할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게임이 이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을 명확하게 판단해 평가할수록 플레이어들의 게임내 행동은 ‘공동 승리’를 위해 기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MMORPG에서 여러 플레이어가 하나의 몹을 공격해서 어떻게 경험치를 분배받느냐의 고민과 같은 부분으로 연결된다.

그런 면에서 최근 TF2나 BF:BC2 같은 게임 이후에 대두된 ‘달성도(achievement)’는 좀 더 적극적으로 게임중 평가 수단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힐러들의 힐 점수, 어시스트, 백스탭, 목표 달성에 대한 기여도 같은 것들은 이미 계산되고 있지만 점수로 표시되지 않는다. 얼마나 자신의 역할을 잘 했는지 평가 받고 이 역할들을 하는 것이 팀에 얼마나 도움됐는지 자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힐러 클래스가 힐만 열심히 했을 때, 킬만 열심히 한 전사와 동등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 정찰병이 적을 많이 발견해 보고할수록 높은 점수를 얻어야 하고, 암살자가 적의 주요 인물(기여도가 높은 인물)을 암살하면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해야 한다. 암살자가 잠수중인 플레이어를 파밍하나 전장을 휩쓸며 아군을 학살하는 전사를 암살하나 같은 점수라면 어느 누가 손쉬운 점수를 얻을 방법을 마다할까.

경쟁 게임에서 점수는 세분화되고 올바르게 평가될수록 플레이어들에게 ‘행위의 명분’을 제공한다. 지금과 같이 킬 점수 하나만으로 평가되는 게임 시스템에서는 플레이어가 킬 점수를 얻기위해 이기적으로 플레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결국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에서 협동하게 만들려면 협동해야하는 이유와 명분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FPS를 중심으로 한 경쟁 게임의 점수 기록 문제

온라인 FPS ‘커뮤니티’

온라인 FPS에서 계급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은 것은 플레이어들이 계급을 마치 레벨로 인식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오래 플레이를 하면 계급(레벨)이 올라가고 높은 계급은 고레벨이라는 인식으로 전달되므로, 플레이어들이 소위 ‘미친 듯’ 플레이를 할 거라는 예상. 그리고 이 예상은 적중해서, 현재 서든어택 같은 게임들에서 ‘나 계급이 대위다’ ‘소령이다’ 하는 식으로 자랑되는 것도 그렇고, 아바 같은 최신의 게임도 같은 맥락에서 플레이어들이 계급을 보고 실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 보면 꽤 성공한 요소다.

그런데 계급으로 발생하는 부차적인 문제들을 보면,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계급은 마치 한국 군 조직의 부조리를 모사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인듯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플레이어는 실력이 좋든 나쁘든 게임 수로 누적되는 경험치를 통해서 계급을 올릴 수 있다. 좋은 장교든 나쁜 장교든, 장교는 장교인 거다. 그래서 높은 계급을 가진 플레이어는 맵의 구석 구석에 잘 짱박혀 점수를 챙기는 행동을 하는게 실력이라고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같은 행동을 낮은 계급이 했을 때는 ‘캠핑’이고 “움직여라 쇼키야!”라는 욕지거리가 쏟아진다. 뭔가 이상하다.

덕분에 플레이어의 계급이 높은 플레이어들은 좀 더 많은 경험치와 좀 더 좋은 전우(?)를 확보하기 위해서 다른 계급 높은 플레이어가 있는 쪽으로 ‘줄서기’가 발생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혹은 ‘계급은 실력이 아니야’라고 굳게 믿고 있는 우직한 플레이어들은 온갖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꽁수에 관광당하고 게임에서 짜증을 내게 된다. “아 저기서도 보이나보네” “아 얍실한 플레이다”.

사실은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줄서기를 하는데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그건 킬/데스 비율이다. 동료 플레이어에 앞서 코너를 틀거나 위험 지역에 뛰어드는 희생적인 행동은 그냥 ‘죽음을 자초하는 바보짓’이지 뭣도 아니다. 맨 앞에서 코너를 돌다 마주친 적 플레이어와 난사를 겨루다가 소위 ‘개피’를 만들고 죽은 플레이어는 그냥 ‘삽질’한 것이지 팀을 위한 희생 같은 것이 아닌 거다.

이 두 요소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매우 ‘전략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1) 적이 총구를 겨누고 ‘쪼고’ 있는 접전 지역은 웬만하면 뛰어들지 않는다. 가능하면 ‘쪼는’ 쪽이지 ‘쪼는 곳으로 뛰어드는’ 쪽은 되지 않는다. 2) 가능하면 좋은 위치를 알고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와 함께 다닌다. 3) 만약 내가 ‘개피’가 되면, 구석에 숨어서 다른 플레이어가 ‘개피로 만든 적’을 줏어 먹으러 다닌다.

이런 문제는 공격과 수비로 구성되는 카운터스트라이크식 폭탄 설치 맵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수비쪽은 절대 적에게 나가지 않고 시간이 가든지 말든지 자리를 지키고 (나처럼 성질 급한 플레이어들은 개돌해서 죽고 팀원들에게 욕 먹는다) 공격쪽은 최대한 몰려다니면서 약한 곳을 뚫는다. 이러다 보니 나름대로 밸런스가 잡혀서 수비팀은 잘 쪼는게 실력, 공격팀은 잘 몰려다니는 게 실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가 현실적인 맵 형태를 가지는 아메리카스아미(AA)나 인서전시 같은 게임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수비팀에서 ‘쪼고’ 있을 곳이 너무 많아서, 팀원 수로 모든 지역을 커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 곳이 뚫리면, 뒤로 돌아온 적에게 ‘똥침(뒤치기)’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비팀도 쪼고있는 긴장감이 대단하다.

게다가 목표를 달성하는 쪽의 점수가 훨씬 높고, 상대 플레이어를 죽이는 것은 점수가 별로 높지 않도록 되어 있어 플레이어는 상대를 죽이러 다니기보다 목표를 성취하려고 하는 경향이 높아진다. AA는 상대를 전멸시켜도 승리 점수를 받지만, 목적을 달성하면 받는 점수가 킬로 받는 점수보다 높고, 인서전시의 경우에는 상대 플레이어를 죽인 것이 화면에 표시되지도 않는다. (하긴 심지어는 ‘너무 리얼해서’ 내가 상대를 죽였는지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게다가 최근 나온 팀포트리스2나 콜오브듀티4의 경우에는 다른 플레이어가 ‘개피로 만든’ 플레이어를 사살했을 경우, ‘개피로 만든 플레이어도 1점, 마무리한 플레이어도 1점’씩을 받는다. 팀포트리스2는 ‘어시스트’도 1점으로, 콜오브듀티4도 킬과 별도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킬과 동등하게 점수를 계산한다. 플레이어들은 그래서 직접 죽이지 못해도 최대한 자신이 팀에 기여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계급과 K/D, 과연 긍정적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여러가지 대안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1) 역할 분담에 의한 협동과 2) 클래스별 점수 체계 분리가 그 답안을 제시할 열쇠가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팀포트리스2는 좋은 사례 연구가 될 것이다.

온라인 FPS ‘커뮤니티’

한국 FPS 시장에 카운터스트라이크가 미친 악영향

넥슨의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이하 카스, 카스온)이 내일(12월 20일) 클베를 시작한다고, 온 사방군데 광고가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 광고들을 보고, 아니 사실은 카운터스트라이크 소스도 아니고 1.6을 온라인으로 만든다는 뉴스를 접하고 ‘카스의 망령’이 떠올랐다. “아니 카운터스트라이크 1.6이라면 내가 7년 전 ㅇㅇ소프트에 있을 때 마케팅하던 그 카스 1.0이 아닌가!”

1998년 하프라이프가 시장에 나오고 나서 ‘올해의 게임’으로 뽑히는 등의 파란이 있었고, 몇 개월 뒤 공개된 하프라이프 MOD 카운터스트라이크 1.0은 이후 7.0까지 버전업이 된 후 밸브에 흡수되었다. 이어 2000년 시에라온라인에서 정식 패키지 버전 카운터스트라이크 1.0을 발매하게 되는데, 그 1.0이 1.1, 1.2를 거쳐서 1.6까지 개선된 것이 오늘날의 1.6, 소위 ‘쩜육’이다.

당대를 풍미한, 이 게임은 2002년 쯤 국내에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만, 밸브가 스팀이라는 온라인 퍼블리싱 시스템을 만들면서 국내 PC방과 과금 체계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자 이 기회를 틈타 스페셜포스라는 게임이 나타나 뒤를 잇게 된다. 스페셜포스는 쩜육과 거의 같은 내용으로 만들어졌지만 그래픽이 매우 조악했고 당시 FPS 수준에서 볼 때 별로 주목받기 힘든 게임이었다. 하지만 PC방 관련 협회들은 우리 힘을 무시하냐며 ‘국내 실정을 무시하는 카스는 이제 PC방에서 못한다, 우리는 스페셜포스를 공식 게임으로 후원하겠다’며 PC방 손님들에게 노골적으로 권하기 시작했고, 2003년쯤 ‘대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던가 이런 대세 분위기도 잠시, 스페셜포스도 국내에서 인기를 좀 끌기 시작하자 두 퍼블리셔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했고, 마치 프리스타일의 경우처럼 양쪽으로 갈리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 틈을 타서 지금까지 대세를 타는 ‘서든어택’이 명함을 디밀기 시작했고 주춤거린 스페셜포스를 떠난 플레이어들이 ‘그래픽이 조금 나아진 스페셜포스’인 서든어택으로 몰리게 된다.

하지만 두 게임은 모두 카운터스트라이크를 베이스로 하고 있는 게임이라, 카스식의 플레이를 그대로 지원하고 있을 뿐 전혀 시스템적인 개선이라던가 ‘폭파’이외의 새로운 게임 방식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형만한 아우가 없다더니, 그나마 카스는 패키지 1.0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인질 구출이나 VIP 호위, 탈출 같은 다양한 게임 방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카스 이후에 만들어진 점령(배틀필드1942)이라던가 전차 호위(울펜슈타인ET) 같은 신선하고 획기적인 방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웃기게도, ‘Fire in the hole’이라는 구멍에 수류탄 던지며 외치는 이 문장이 카스로 인해서, 마치 ‘무조건 수류탄을 던지면 Fire in the hole’이라는 양 잘못 전달되기까지 했다. 사실 ‘Fire in the hole’은 광산 갱도에서 폭약이 폭발하거나 참호 같은 좁은 곳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걸 주변에 경고하는 말이지, 수류탄을 전질 때는 ‘throwing granade’라던가 ‘frag out’ 같은 좀 더 일반적인 문장이 사용되는데도. (그래서 최근 ‘전방 수류탄’이라던가 ‘수류탄 투척’ 같은 표현이 사용되는게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다. 이 내용은 위키피디아에서 ‘fire in the hole’로 검색해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런 덕분에, 한국 FPS는 ‘닥치고 폭파(폭설)’ 스타일이 정착되게 됐고, 최근에 아바에서 전차 호위를 따라하면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됐다는 듯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물론 그랬거나 말았거나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폭탄 설치(폭설) 게임을 더 많이 즐기고 있지만.

이런 역사를 만든 쩜육이, 1998년에 나왔던 카스쩜육이, 카스온으로 2007년 부활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해당 담당자는 ‘자신있다’며 쪽지를 날려왔지만, 난 이렇게 카스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이 두렵다. 지난 10년간 FPS의 발전을 한 큐에 원점으로 되돌리는 카스온의 등장이 과연 한국 FPS 시장에 바람직한 것일까. 자랑스레 ‘새로운 기획이 많다’며 이야기를 해준 분께 ‘쩜육 온라인이라니!’라고 흥분했지만, 시장성의 면에서 카스온이 실패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동남아시아에 여전히 대세를 이루는 쩜육, 그리고 중국의 수십만 동접자를 생각해보면 카스온은 성공할 것이다. 그래서 난 굉장히 걱정하고 있다.

  • 소스: 하프라이프2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 이후 소스가 엔진으로 독립한다.
  • 폭파: 정해진 위치에 폭탄 설치(폭설)를 해서 폭파시키거나 설치한 상대의 폭탄을 시간 내에 해체해야 한다.
  • 인질 구출: 테러리스트들은 몇 명의 인질을 데리고 있고, CT는 인질을 구출해서 데려와야 한다.
  • VIP호위: 플레이어 중 한 사람이 VIP가 되고 VIP가 죽으면 게임이 끝난다. 목적지까지 탈출하기.
  • 탈출: 정해진 목표 지점까지 한 사람이라도 도달하면 된다.
  • 점령: 정해진 지역을 일정 시간 점거하면 아군 지역으로 바뀌고, 맵 전체를 아군 지역으로 바꾸거나 일정 점수를 획득하면 승리한다.
  • 전차 호위: 전차를 파괴하는 쪽과 파괴당한 전차를 수리하며 전진시키는 쪽으로 나뉘고, 전차가 목적지에 도달하면 승리한다.
한국 FPS 시장에 카운터스트라이크가 미친 악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