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중

지대 즉 토지의 가치는 토지의 생산성이나 유용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대는 결코 생산에 어떤 도움이나 이익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결과물 중 일부를 확보할 수 있는 힘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토지가 갖고 있는 생산력과는 전혀 관계 없이 토지는 누군가가 그것을 사용하는 특권을 얻기 위해 노동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노동의 결과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지대를 만들어낼 수 없고, 가치도 없다.

지대란, 간략히 말하자면 인간의 노력이 만들어낼 수도 없고 증가시킬 수도 없는 자연적 요소를 사유권의 대상으로 만든 것에서 발생한, 독점의 대가인 것이다.

우리들의 문명이 왜 불평등하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도 아니고, 생존에 필요한 물자에 대한 인구의 압력도 아니다.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가장 큰 원인은 토지 소유권의 불평등에 있다.

인용

“많은 기업이 통합, 소통, 존경 같은 그럴싸한 단어를 로비에 걸어둔다. CEO가 사기 혐의로 감옥에 간 엔론도 이런 단어를 로비에 걸어놨다.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그럴듯한 소리가 아니라, 누가 보상받고, 승진하고, 해고되는지로 나타난다.”

–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인용

Q: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인데, 영화에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 보다 관객에게 더 큰 두려움을 느낍니다. 감독님에게 관객은 어떤 존재인가요?

A: 관객에 대한 두려움은 있죠, 산업 자체에. 공포가 있지만 그것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나리오를 거절할 때 ‘저는 재밌는데 관객들이 싫어할 것 같다’는 답변을 많이 하곤 하죠. 공포가 만들어 낸 거대한 착각이에요. 누가 관객을 알겠어요? 누가 재단할 수 있어요? 저는 관객을 모른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관객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요. 사실 누군들 염려 안하겠어요? 모두 흥행이 잘되고 싶고 관객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죠. 관객을 중심으로 기획하고 데이터화해도 (흥행이) 안되는 영화도 많아요. 관객의 호응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모르고 예측할 수 없다면 소신껏 하자는 거죠. 투자를 결정하는 사람들의 곤욕도 이해를 합니다. 사실은 알 수 없다는걸 모두가 솔직히 인정하면 편해지는데, 그렇게 하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는 돈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데, 그 부분도 영화를 창작하는 것 만큼 힘든 것 같아요.

– KAFA+ 마스터 클래스: 봉준호 감독 수업 다시보기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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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손해 보지 말자’가 목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상업적 영화, 상업적 배우 혹은 예술적 영화 혹은 예술을 좀 더 추구하는 연기로서의 예술을 추구하는 배우 어느 쪽이시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거 딱 잘라서 질문 드린다는 건 좀 어울리지 않기는 한데.

강동원: 요즘에는 독립영화도 그렇고 상업영화도 그렇고 조금 경계가 조금씩 모호해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한데요. 저는 항상 얘기해요. 제가 어쨌든 제가 제 돈으로 영화를 찍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상업영화 배우로서 상업영화에 출연한다면 최소한의 목표는 저를 믿고 영화를 만들게 해 주신 분들에 대해서 최소한 실망을 시켜드리지 않아야 된다는 게 있고요. 기본적으로는. 그리고 그냥 이 산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나아가서는 당연히 언제나 관객분들이 좋아해 주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목표고. 다만 이제 제가 독립영화에도 출연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렇다면 또 다른 얘기가 되니까요.

손석희: 그렇겠죠. 적어도 상업적 영화에 출연할 때는 나는 상업적 배우다라는 그런 태도를 기본적으로 가져야 된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강동원: 저는 그래요, 저는. 그런데 그거야 사람들마다 다 다르니까. 그런데 사실 제가 영화 스스로 혼자 만드는 게 아닌데 모든 사람이 협업하는 것이 이게 영화라는 건데 저 혼자만 나는 뭐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라는 것도 저는 좀 잘 모르겠더라고요.

– jTBC 뉴스룸, 강동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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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게임의 전성시대는 언제나 올까

오손 웰스는 말했다. “영화감독은 우연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한 쇼트에 들어간 수많은 요소 – 연기, 의상, 대사, 앵글, 음악 등을 보통 감독이 선택한다. 그것들이 모여 우연의 조합이 되고 영화가 된다. 그렇다면 질문. 꼭 감독의 선택이어야 하나? 대답.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누가 말했는지 모를 그 빤한 말보다 증거가 있다. 아주 오랫동안 영화가 스스로 쌓아온 이름은 대부분 감독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예술적 성취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압도적인 흥행 기록은 두 감독의 이름을 영화판 밖에도 알렸다. 언젠가 이준익 감독에게 영화감독은 대체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감독은 제작자가 준 여러 개의 시나리오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골라. 의상팀이 의상을 준비해오면 그중에서 예쁜 옷을 골라. 옷을 입고 배우가 연기를 해. 연기를 잘하려고 노력할 것 아냐? 그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를 골라. 그리고 말해. 오케이! 어때? 감독이란 직업이 얼마나 쉽냐고! 그냥 골라. 그게 다야.”(그의 말투를 살리고자 존댓말을 생략했다.) 영화감독은 오직 선택만으로 창조하는 유일한 예술가가 아닐까?

A는 말한다. “들어오는 시나리오의 수준이 형편없어요. 어디서 우라까이(베낀다는 일본말, 영화계 은어)한 이야기예요. 이런 시나리오를 주고받는 건 의미 없어요. 우리가 왜 영화를 하는지, 왜 영화를 시작했는지 모두 잊어버린 것 같아요. 돈만 벌려고 영화 시작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우리 모두 ‘좋은’ 영화에 감동을 받았으니까 영화를 시작한 거 아닌가요?” 감독에게 선택권을 줄 때 좋은 영화가 나올까? 견고한 시스템으로 만들면 흥행에 성공할까? 좋은 영화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나?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일화. 그는 칸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이 예술성을 보장하는 위대한 작품들인지 의심했다. 정성일은 <리베라시옹>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의 답. “영화가 자기 돈을 들여서 예술을 하면 그건 별로 존경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지. 그러나 여기 온 감독들은 돈밖에 모르는 제작자를 꼬이고, 재미밖에 모르는 대중들을 홀리면서, 기어이 자기 이야기를 찍어서 우리들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든 거야. 그건 위대한 일이지. 그리고 그게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승리지.” (정성일, 정우열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 이다> 바다출판사) 영화에 기대하는 건 이해와 논리가 아니다. 선택의 일관성, 그것을 위한 투쟁, 끝내 쟁취한 합의로 만든 황홀한 이야기와 이미지. 그런 것이 가득한 ‘좋은’ 영화를 봤을 때 영화는 꿈이 된다. 그때서야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지금 한국영화는 만들고 싶은 꿈인가? 새로운 꿈이 없다면 좋은 영화도 없다.

– 망한 감독 전성시대, GQ Korea

게임업계에서는 흔히 ‘남의 돈으로 예술하면 안 된다’고들 이야기하며 게임이 치열하게 상업화로 달려가는 것에 합리화를 하고는 하는데, 영화는 오히려 남의 돈으로 예술을 하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며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승리라고 이야기를 한다.

투자자에게 은행 이율보다 높은 이율을 갖다 바치기 위해서 게임 회사는 직원들을 닦달하고, 이에 개발자들은 게이머들을 쥐어 짜서 매출을 만든다. 결국 재주를 부려 돈을 버는 것은 자본가와 투자자들이고 게임은 갈수록 형편없는 내용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 처음의 시작 어딘가에서 잘못 꼬인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망한 게임의 전성시대는 언제나 올까

“나는 아마도 고통을 느꼈겠지만 자기합리화의 억지 논리가 그 고통을 재빨리 지웠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기는 어렵다. 허위와 진실의 갈림길에서 위험한 자기합리화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엄중한 자기검열밖에 없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검열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용감해진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 자기합리화의 코드,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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