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딧잡

크레딧잡은 국민연금 가입 데이터를 통해서 기업의 종사자 연봉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였다. 국민연금은 소위 ‘4대 보험’중 하나로, 정규직 노동자가 당연히 가입(해야)하는 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이 국민연금 데이터를 보면 어떤 회사의 정직원 숫자(가입자)와 해당 직원의 연봉(소득) 구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데이터를 이용하면 법인명(회사 이름)을 가지고 직원들의 분포가 어떤지를 파악할 수 있게 역산할 수 있어서, 이를 기반으로 만든 사이트가 크레딧잡이다.

문제는 연봉 정보의 공개를 가지고 일부 기업들이 민원을 넣었고, 이에 따라 정보 공개를 중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직원의 연봉 정보 공개에 대한 부분을 가지고 기업들이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여긴 크게 세 가지의 관점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국민연금 납입 정보를 왜 기업의 민원으로 중단하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납입을 노동자 개인이나 기업이 자의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것은 국가가 법으로 보장/강제하고 있는 것이고, 정직원으로 취업을 하게 되면 당연 가입되는 것으로써, 심지어는 직업이 없어도 납입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민원 유무로 이 정보 공개가 중단된다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둘째로, 이 국민연금에 가입되는 연봉은 구간에 따라서 구분된다. 소득 금액의 범위에 의해서 납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연봉을 특정할 수도 없고 따라서 개개인을 특정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는 개인 정보와는 관계가 없고, ‘민원에 대응한다’는 부분은 어불성설이다. 연봉 정보가 어느 구간에 해당하는지를 파악할 수 없게 하려면 450만 원 쯤 월급을 줘서 정확하게 어딘지 파악 못 하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셋째로, 원래 기업들은 직원들의 연봉 공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다. 아주 간단하게 러프하게 비유를 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저 일 잘하는 사람(A)이 연봉을 100원 받는다.”, “저 일 못하는 사람(B)이 연봉을 200원 받는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원래 직원들의 연봉이 공개되지 않을수록 직원과 연봉 협상을 하는데에 유리하다. 애초에 이런 정보의 불균형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협상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직원 A든 B든 연봉이 공개되지 않아야 다른 직원의 연봉을 싸게 후려칠 수 있고, 부당하게 많은 연봉을 주는 직원의 정보를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연봉을 공개하는 것은 일종의 고용자(기업)-피고용자(개인) 사이의 신뢰 문제인 것이지, 이것을 공개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그리고 또한, 양자간의 ‘합의(계약)’에 의해 공개치 않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익명(개인을 특정할 수 없게)’으로 공개하는 것은 원래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런 연봉의 범위를 통계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 문제가 없는 일이다.

결론을 내자면,

한국은 역시 기업하기에 너~어어~무 행복한 나라라는 것이다. 직원들의 연봉 정보가 이렇게 공개되는 것도 ‘공단’에 압력을 넣어 멈출 수 있고, 법인세도 국가에서 계속 감면해주고, 국가가 기업에 해고의 자유도 계속 확보해주는 데다가, 심지어는 파업에 대해서도 불법으로 만들어주고 노동자 착취를 아주 편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나라다.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직접 도와주는 이런 나라가 전세계에 몇이나 있겠는가!

노동자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아니다. 국민으로 간주된 적이, (저들이 말하는) ‘건국’ 이후로 없었다.

크레딧잡

이익균점권

‘이익균점권’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장석준 선생이 <고래가 그랬어>에 기고한 글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눈에 띈 것이다.

옛날 헌법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단다. “제18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서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어려운 말들이 많지? 고래 친구들에게 친숙하게 바꾸면 이런 이야기야. “상품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회사들에서는 노동자도 이익을 공평하게 나눠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회장님을 위해 일을 해주고 월급을 받아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지. 노동자들도 회장님과 함께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고르게 나눠 가져야 한다는 말이야.

그래서 관련된 여러 글을 찾다가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1948년에 제정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 즉 제헌헌법에는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규정한 조항이 들어 있었다. 제헌헌법 제18조 제2항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서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익균점권’이라는 것은 물론, 노동자들이 노동의 대가로 단순히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한 임금 차원을 넘어서, 노동자는 기업 활동에 의한 성과를 자본가와 동등한 자격으로 고르게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규정한 조항인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되돌아보면, 제헌헌법의 이와 같은 조항은 실로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이 헌법조항이 실제로 현실에서 반영된 적은 없었다. 정부 수립에 이어 곧장 동족상잔의 대규모 전쟁이 터졌고, 휴전 이후에는 독재정권들에 의해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헌법의 핵심적인 요소는 끊임없이 무시되고 유린되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이익균점권’이라는 헌법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돼버린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신경이 쓰였던지 박정희 정권은 헌법을 개정하면서 이 조항을 아예 말소해버렸다. 그 결과, 일반시민들은 대한민국이 애초에 이러한 매우 ‘진취적인’ 조항을 가진 헌법 밑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살아왔다. 이 무지상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제헌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이 ‘이익균점권’ 조항이 건국 당시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단순히 외국의 헌법(들)을 베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시의 국회 속기록은 이 조항이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정파 사이의 여러 날 동안의 치열한 논쟁 끝에 성립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원래 이 조항을 주도적으로 제안한 이는 대한민국 초대 내각의 사회부장관이기도 했던 전진한(錢鎭漢)이었는데, 그는 처음에 노동자의 ‘이익균점권’뿐만 아니라 ‘경영참가권’까지 헌법에서 명시해야 한다고 제안·주장했다. 그러나 며칠 동안의 격렬한 토론 과정에서 ‘경영참가권’은 통과에 실패하고, 그 대신 ‘이익균점권’은 관철될 수 있었다.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물론 오늘의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친일파 지주계급 출신들이 압도적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경영참가권’이나 ‘이익균점권’ 등 매우 진보적인 아이디어가 공개적으로 제안되고 그것이 국회의사당에서 활발히 토론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노동자의 경영참가권은 끝내 부정되었지만, ‘이익균점권’ 조항이 성립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제헌국회의 모습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선진적인’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익균점권’이라는 아이디어는 근년에 우리사회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논의되다가 꼬리를 감춘 소위 ‘이익공유제’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이익공유제라는 아이디어에는 어딘가 대기업과 자본가의 눈치를 보는 왜소한 자세가 엿보이는 데 비해서 ‘이익균점권’ 개념에는 기업 활동의 결실을 나눠 갖는 게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논리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 개념을 제시한 전진한의 논리는 명쾌했다. 그에 의하면, “노동을 상품시하여 자본에 예속시키는 것은 고루한 사상”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는 ‘노력’을 출자했다는 의미에서 자본가와 다름없는 자본가이며, 따라서 이윤을 균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얼핏 매우 급진적인 좌익사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진한은 대한노총이라는 우익 성향의 노동자단체를 세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반공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반대했던 것에 못지않게 자본주의 독재체제도 거부하는 ‘자유협동주의자’였고, 무엇보다도 평생 참선수행을 계속한 ‘탈속’의 정치가였다.)

– ‘국가의 쇄신, 개헌, 용기‘, 뉴스타파 포럼, 김종철

또 이런 기사가 있다.

전진한(1907~1972)은 이승만 정권 초대 내각의 사회부장관이었던 인물로, 좌익계 노동단체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을 와해시키기 위해 조직된 우익계 대한노총에서 이승만 총재 아래 위원장을 지냈다. 이를테면 노동계의 이승만 대리인이었던 셈. 이런 인물이었건만 그는 건국에 대한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고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농민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판단해 제헌헌법에 ‘이익 균점권’을 밀어 넣었고 이에 맞춰 한국전쟁 와중에 노동쟁의조정법 등 하위 법체계를 만든다.”

“이는 유진오 박사가 만든 제헌헌법 초안에 대한 전진한의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담고 있는 초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경제 분야는 취약하다고 봤다. 이어 “농민과 근로대중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실현하지 않는다면 헌법 초안은 사문화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가 이익 균점권을 생각하게 된 배경이자, 보수 정치인들과 상공회의소의 집요한 반대를 물리치고 격론 끝에 관철시킨 이유다.”

– ‘제헌헌법 18조 ‘이익균점권’ 아시나요‘, 서울신문, 2011년 2월 16일자

그런데 이 조문(제정헌법 제18조)은 이후 개정으로 사라졌다.

이익균점권

구조조정과 구조개선, 정리해고

두산 그룹에서 인프라코어의 직원들을 ‘구조조정’헸다. 구조조정이라니 마치 구조를 개선하는 것 같아서 듣기에 좋지만 결국 노동자를 해고해서 기업의 재정을 안정시킨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를 ‘정리해고’라고 표현하든 ‘구조조정’이라고 표현하든 ‘구조개선’이라고 표현하든 어쨌든 그간 동고동락한 (아니 다른 말로 표현해할지도 모른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직원들을 내보낸다는 뜻이다.

두산은 이 과정에서 입사 1~2년차인 직원들마저 ‘구조조정’에 포함시켰다는 것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 와중에 빽이 있는 ‘낙하산’들은 (블라인드에)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도 올라온 걸 보면 결국 ‘우리는 살고 너희는 죽는다’를 답습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나는 살고 너는 죽는다’는 IMF 이후로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경영 실패의 책임을 져야할 경영자들과 소위 ‘오너’들은 책임을 제대로 진 적이 없다. 책임을 지기 전에 사면되었고, 금전적으로 배상을 하기 전에 해외 도피했다. 결국 책임을 지기보다는 ‘다음에는 잘 해주기를 바란다’면서 면책과 사면을 받아왔고, 끝에는 그들이 실패한 결과들은 항상 그 회사의 직원들이 감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됐다.

인간은 누구나 책임을 면하고 싶어한다, 누구라도. 하지만 자본이 있는 만큼 그게 더 쉬워진다는 것을 가르쳐준 적은 없기에, 종국에는 실망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만들어진 구조는 항상 반복된다.

구조조정과 구조개선, 정리해고

집값 하락의 충격을 채무자와 채권자가 나눠 감당한다? 시장경제 원리와 어긋난 주장으로 들린다.
“반(反)시장적이지 않다. 오히려 시장 친화적인 대책이다. 주요 국가의 주택금융 시장 자체가 시장 원리에서 벗어나 있다.”

무슨 말인가.
“정부가 주택금융 시장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에 대해선 세금을 깎아주고 있다. 정부 개입으로 조성된 시장인 셈이다.”

아티프 미안 교수 인터뷰, 중앙 Sunday (인용 주: 강조, 밑줄은 내가 했음)

정부에서 경기부양이라는 목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려고 하고, 가계에는 부동산을 사라며 계속 대출을 권장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는 면에서 미안 교수의 지적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집값 하락의 충격을 나눠 감당하자는 말은 한국에서 ‘빨간 생각’이지.

과실은 같이 먹고 고생은 너만 하라는게 한국식 자본주의 아닌가, 대기업 입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