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표절

2005년엔가 KGDA가 KGDS라는 개발자 컨퍼런스를 할 때 “창작과 표절의 범위 판단과 게임 디자인의 발전”이라는 주제로 글을 하나 냈더랬다. 나름 딴에는 배운 적도 없으면서 논문 흉내를 내서 되도 않는 레퍼런스 몇 개를 가지고, 아이디어니 표현이니 하는 말을 써가며 게임 업계에는 표절이라는게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뭐 그런 내용을 썼던 것 같다.

지난 주 와일드카드에서 주최한 GNS(Game Next Summit) 2014에서 구태언 변호사가 발표한 “게임 표절 판단의 원칙과 한계“라는 내용을 보면서 저 옛 글이 생각났다. 얼굴이 화끈거리게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게이머들은 자신들이 접한 게임 경험에서 유사한 게임들을 표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대표적으로 발표 자료 중 크레이지아케이드(BNB)나 카트라이더의 경우가 표절 게임이라는 집중 공격을 받는 편인데, 사실 크레이지아케이드의 경우는 넥슨이 허드슨에 표절 아니라는 소송을 내 승소했고, 카트라이더의 경우 일반에는 소송이 진행됐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어느 쪽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게이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게임 업계에서 ‘표절’을 주제로 소송해서 이긴 사례는 별로 없다. 테트리스의 경우가 있고 명백히 표절이라고 보였던 트리플타운(Triple Town)과 예티타운(Yeti Town)도 결국 합의로 끝났다. 사실 페이스북 게임들의 무수한 클론 게임들이 서로 표절이네 아니네 진흙탕 싸움을 해봐야 얻을 것도 없다는 것이 정설이고, 관례적으로 암묵적으로 게임은 이런 클로닝으로 발전한다는 합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임의 표절 문제는 항상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슈지만, 사실 답이 없다. 게임의 규칙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않으며, 소스코드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단지 표현(그림)이나 표현 방법(애니메이션)만이 표절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라, 이는 아주 약간의 기교 만으로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베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완벽하게 베낄 수 있는데, 그렇게 한다고 게임의 성공 확률이 더 올라간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는 건 또 아니라는 것에 있다. 결국 베끼든 아니든 (양쪽 다 미지수이기 때문에) 같은 확률이라고 한다면 베꼈다고 욕을 먹으면서 실패하느니 안 베끼고 개발하는 쪽이 더 이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멍청한 초보 게이머 경영자들은 베끼면 혹여 더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게임에 표절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소송하는게 또 이익인가? 글쎄. 이 영화 포스터들은 서로 소송을 했을까 안 했을까.

게임과 표절

유사 게임들의 범람에 대해서

어떤 게임이 하나 흥행을 하고 나면 비슷한 게임이 쏟아져 나오는 세태를 보고서 한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리니지가 나온 이후로 한국에 MMORPG가 범람하던 때부터 시작해서 WOW가 나오고 나자 리니지풍 게임들이 일거에 WOW풍 게임으로 바뀌게 되던 때에도 그랬고, 또 이제 스마트폰 게임들이 밀리언아서풍 카드 게임들과 퍼즐&드래곤풍 게임들로 도배되는 것을 보면서도 한 동안 그랬다.

그런데 한참을 돌아서 과거로 가 보면, 1997년 스타크래프트가 나왔을 때 수 많은 RTS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고, 그 전으로 올라가서 1995년 DOOM이 나왔을 때도 이거나 저거나 비슷한 FPS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생각을 해보면, 이런 흐름은 게임의 역사에서 꽤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심지어 갤러그가 나왔던 시절에도 갤러그의 수 많은 짝퉁들이 오락실에 깔렸고 테트리스가 나왔던 시절에도 테트리스의 짝퉁들이 수 없이 나왔더랬으니까. 그리고 그 와중에 독보적인 게임성을 가진 게임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DNA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는 실망하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흐르는 냇물은 잠깐 틀어 막는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이 되면 흘러 넘쳐 새로운 흐름을 만들게 마련이니까. 그저 지금은 그런 시기구나 하고 기다리며, 특히 나는 게임 개발자로서 다음은 어떤 게임이 될런지는 모르지만 나의 게임을 만들면서, 시간을 즐기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하면서 마침내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유사 게임들의 범람에 대해서

한국 게임사상 대표적인 표절 관련 소송들 정리

  • 이전 블로그에 썼던 글을 구글 캐시에서 복사해 옮김

1. 건바운드(소프트닉스, 넥슨) VS 포트리스(CCR), 2002년

CCR에서 포트리스를 개발한 강모씨가 소프트닉스로 옮겨 자신의 노하우를 이용해 건바운드라는 신작을 개발했고 넥슨에서 퍼블리시를 했다. CCR은 넥슨에 저작권 위반을 내세워 서비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에서는 이를 기각했다.

2. 비엔비(넥슨) VS 봄버맨(허드슨), 2007년

허드슨에서 2003년 봄버맨을 표절했다며 소송하겠다고 했고, 넥슨은 매우 적은 금액의 합의금을 줬으나, 계속 표절 시비에 휘말리자 넥슨이 오히려 허드슨에 저작권 침해금지 청구권 등 부존재확인 소송(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음을 증명해달라는 뜻)을 제기해 승소했다.

반면, 넥슨은 중국 텐센트에서 서비스하던 큐큐탕을 표절로 제소했으나 청구 기각됐다.

참고 – 게임콘텐츠 저작권 침해대응을 위한 표절기준 마련 기초연구.pdf

3. 카트라이더(넥슨) VS 마리오카트(닌텐도)

일반에는 소송이 진행됐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어느 쪽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참고 – 2005년 정영석 실장 인터뷰

4. 신야구(네오플) VS 실황야구(코나미), 2006년

코나미는 네오플에 캐릭터의 유사성 등을 이유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결.

참고 – 게임 표절의 범위는 어디까지?

5. EZ2DJ(게임세상, 어뮤즈월드) VS 비트매니아(코나미), 2007년

코나미는 EZ2DJ가 국내에 출시되기 전, ‘음악연출 게임기, 음악연출 게임용 연출조작 지시시스템 및 게임용 프로그램이 기록된 컴퓨터 판독 가능한 기억매체’라는 특허를 한국과 일본에 냈고, EZ2DJ는 이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판결. 117억 원을 배상하고 게임을 폐기 및 생산 중단하도록 명령.

반면, 코나미가 낸 EZ2DJ 게임기기의 의장권 침해 금지 청구 소송에서는 패소했다.

6. 펌프잇업(선도엔터테인먼트, 안다미로) VS 댄스댄스레볼루션(코나미), 2001년

코나미가 의장 모방 및 의장권 침해 이유로 청구소송을 냈고, 발판 등 게임기의 유사성이 인정된다며 코나미 승소 판결.

참고 – 게임 특허 분쟁의 레전드 – 펌프잇업 VS DDR의 비하인드 스토리

이 소송들은 모두 표절 소송인가

EZ2DJ의 경우는 ‘특허 침해’이며, 이것은 표절과는 다른 개념이다. 또한 코나미의 또 다른 소송인 펌프잇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의장권 침해지 게임이 표절이라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1~4의 경우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표절’이라는 믿음과는 달리 법원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결했고, 카트라이더의 경우도 승소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거나 별도 합의를 했거나)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게임사상 대표적인 표절 관련 소송들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