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집단에서 여성의 위치

이 내용은 넷플릭스의 <She’s Beautiful when she’s angry>라는 다큐멘터리 중 발췌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60년대 형성하기 시작한 당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당시 활동가들이 직접 구술로 회상하고 있다. (관련 기사, 영문)

Fran Beal: 그 당시에 있었던 모든 사회적 변화 운동은 결국 여성 운동으로 귀결됐어요. 그들은 여성의 의식화를 높이고자 했죠. 동등한 환경에서 활동하기 위한 필요성이요.

Ruth Rosen: 시민권 운동의 일원으로 반전 운동의 큰 부분을 맡았어요. 버클리 대학원 시절이었죠. 뉴레프트 조직 여성은 직접 느끼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Susan Griffin: 상대적으로 여성은 상당한 차별을 받고 있었죠. 남자들은 이름이 알려졌고 연사가 되기도 했죠. 우린 편지 봉투 풀칠 같은 걸 했죠. 고된 일은 우리가 했어요. 우리가 실제 일(ground works)은 다 했죠. 종종 실제 조직화하는 일도 했어요.

Heather Booth: 전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 연합(SDS) 집회에서 토론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조직의 리더였죠. 조직의 한 남자가 ‘닥치고 찌그러져’ 이러는 거예요.

Marilyn Webb: 우린 SDS 내에서 여자로서의 고유 역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왜 우린 지도자 위치에 있지 않은 거야? 그때부터 모든 사람에게 인식의 스파크가 일어났어요. (아하)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도 불안하구나.

닉슨의 선거를 저지하는 반전 데모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여성 자체적으로 집단을 만들기로 했죠. 그리고 자체 운동을 선언했어요.

Ellen Willis: 마릴린 웹이 무대에 올라 수많은 뉴레프트(주: 신좌파) 남자들 군중 앞에서 연설을 시작하려고 했어요.

Marilyn Webb: 제가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군중들이 미쳐 날뛰었죠.

Ellen Willis: 남자들은 휘파람과 야유를 퍼부었어요. 그리고 ‘무대에서 끌어내려 떡이나 쳐라(Take her off the stage and fuck her)!'(같은 소리를 질렀죠.(자막 누락))

Marilyn Webb: 군중들이 소리쳤죠 ‘구석에 데려가 떡 쳐라(Fuck her down at dark alley)!’ 그건 마치 미친 군중들이었어요.

Ellen Willis: 우린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어이가 없었죠… 뭐야?

Marilyn Webb: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할 거라 생각도 못 했어요. 충격받았죠. 흑인 조직도 있고, 저소득층 부녀 조직도 있고, 우린 여성을 조직했는데 다들 이걸 전체 운동의 또 다른 줄기로 봤죠. 하지만 우리는 대접받지 못했어요. (09:20~11:50)

저기서 나오는 60년대 당시 미국 ‘신좌파’들의 행동과 이후 모습은 80~90년대 한국 운동권 진영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다큐멘터리 뒷 부분에는 신좌파들이 페미니즘 운동에 어찌할바를 모르는 모습들도 비춰진다.) 그리고 저 모습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변한게 전혀 없다고 보인다는게 슬픈 지점이다.

심지어 이제 한국에서 좌파 운동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망해버린 상황에서, 자칭 진보라고 싸돌아다니는 혹은 진보 정당의 지지자라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저와 같은 것이 똑같이 드러나고 있다. 20년 만에 운동권의 모습이 일반에 다시 나타난 것인가! 하면 그게 아니라, 그 때 그 인간들이 386에서 지금 586세대가 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개선된 것이 없이 그대로 내리 계승되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를 고치려 하지 않았고 페미니스트 활동에 귀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좌파 & 진보 진영 안에서 여성 활동가들과 동지들에게 일어났던 사건들, 그 후속 처리들 등을 보면 특히 변한 것은 없다.)

2016년 5월 현재 페이스북과 클리앙을 위시한 온갖 자칭 진보들이 ‘일베나 메갈이나’하며 페미니즘 활동에 ‘무대에서 끌어내려 떡이나 쳐라(Take her off the stage and fuck her)!’ 같은 소리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도 공부 안 하고 말만 많던 386들이 지금 상당 수 현실 정치인이 되어 있고, 지금도 여전히 공부 안 하고 말만 많은 인간들이 진보랍시고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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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ll Street Ogle-In Of 1970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지금 페미니스트 진영 일부에서 ‘미러링’이라고 부르는 것 비슷하게) 그 당시 ‘추파의 날(Ogle day in Wallstreet)’이라는 걸 만들어서 남성들이 여성에게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들을 던지는 걸 그대로 되돌려주는(same kind of double-edged sexualized compliments) 활동을 기획했다고 한다.

  • ‘미러링’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의에 논란이 있지만, 그 개념이 저 때부터 있었다고.
운동 집단에서 여성의 위치

얼터너티브 중독

나는 진보 특유의 반권위주의가 비주류·얼터너티브에 대한 무조건적 선호로 넘어갈 때가 있다고 느낀다. 이게 심하면 반지성주의가 된다. 이 세계관에서 ‘주류’ ‘강단’ ‘과학’은 거의 욕설로 통용된다. 예방접종 강요는 글로벌 제약회사의 음모, 암 환자를 수술하자고 하면 주류 의학계의 음모, 원전을 지지하는 주장은 모조리 원전 마피아 로비의 결과…. 편견의 힘과 돈의 힘이 과학 연구를 왜곡시킨 실례도 제법 있어서(인종 간 지능 격차 연구와 담배의 유해성을 부정하는 연구가 우선 떠오른다) 이런 성향에 힘을 실어준다.

의심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그것은 과학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학이 내놓는 (언제나 잠정적인) 결론이 나의 세계관과 맞지 않는다고 곧바로 어떤 음모의 그림자를 떠올리지는 말자. 이건 의심하는 자세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이런 태도를 나는 ‘얼터너티브 중독’이라고 부른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진보주의자일수록 경계해야 할 태도가 이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얼터너티브 중독, 천관율, 시사IN

그렇다, 주류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그런 경향. 있다.

얼터너티브 중독

시사인에서 지난 번의 일베 분석에 이어서 흥미로운 글을 하나 내놨다. 네이버 댓글을 분석한 기사다.

이 시기에 보수는 몇 가지 무기를 정교하게 벼려낸다. 이중잣대론, 무임승차론, 선동론 등이다. 하나같이 진보에 붙이는 딱지다. 온라인 보수의 눈에 비친 진보는 “노무현이 한 건 뭐든지 업적, 이명박이 한 건 뭐든지 죽일 일”로 간주하는 이중잣대를 쓴다. 진보는 “세금을 축내 제 앞길만 챙기는” 무임승차자들이고, “선동꾼들의 말에 휘둘려 습관처럼 정권 퇴진을 외치는 뇌가 없는” 이들이다. 한때 진보가 갖고 있던 지적·도덕적 우위는 철저하게 해체된다.

인위적 개입의 가능성을 고려한다 해도, 이 시기 야당과 진보 엘리트가 대항 담론 생산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네이버에서 야당 성향 누리꾼은 네이버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저 여론전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손에 쥔 무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3기의 여론 지형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소위 진보-보수 구도로 세상을 분석하는 쪽에서는 네이버의 댓글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미 보수 쪽으로 넘어갔다고 판단하면서, 그에 대한 분석들을 나름 해왔는데, 이번 시사인의 분석은 (베스트 댓글들만 일부를 분석한) 한계가 있긴 해도 어느 정도 의미있는 접근을 하고 있어 보인다.

일단은 이 마지막 문단이 모든 내용의 핵심 부분이다.

여론전이라는 전투에서 누리꾼은 보병이다. 이들이 전장에 나가려면 설득력 있고 매력 있는 담론이라는 군수품이 필요한데, 그것을 생산해줘야 하는 야당과 진보 엘리트가 지독한 기능장애에 빠져 있었다. 군수품을 보급받지 못한 보병들은 2년 동안 몰살당하다시피 하다가, 급기야는 군수품을 자체 조달하기에 이르렀다.

여론을 형성하는데는 일단 어떤 담론을 형성해서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이 필요했는데, 이를 소위 ‘진보’라는 그룹에서는 제대로 하지 못했고, (다시 첫 인용문으로 돌아가서) ‘보수’ 그룹에서는 (‘인위적’이라고 언급하는 어떤 집단이) 해냈다는 이야기다.

좀 더 요약해 말하자면 시사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보수는 일베와 국정원이 조직적인 담론과 논리 형성에 개입했고, 진보는 자중지란으로 이를 하지 못해 네이버 댓글에서 밀려 지금의 (여론전에 밀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겠다.

뭐 여기까지는 시사인이 가질 수 있는 의견의 한계이자 적절한 상황 파악 정도일 것이고, 이제 ‘진보’라는 그룹들은 어떤 담론을 누가 형성해서 제시할 것인가 고민을 할 때이겠지만, 한국에서 진보라는 그룹은 너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게 그 한계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기엔 너무 ‘입’들이 많다.

다시 내 쪽 이야기로 돌아와서, 배울 점이라면, 게임 업계에서도 어떤 방향성을 가지려면 이런 ‘담론’들을 만들어서 제시하는 그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런 사람들을 계속 모아야 한다는게 숙제라면 숙제랄까.

진보주의자는 진보적인 철학, 진보적인 정치 성향, 혹은 진보적인 활동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권력을 직시하며,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양심에 어긋나는 일에는 복종하지 않는 것, 그게 진보의 참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를 다시 생각하다

최근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진보적 가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

최규석의 송곳에는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사람들에게 노무사 구고신이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는 명대사를 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사실 그렇다. 진보를 자처한, 8~90년대 운동권 청년들이 사회의 주류층이 되어서 지금 어떻게들 하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예의 글에서도 나오지만, 소위 진보 정당이라는 곳을 지지하고 당원으로 가입하고 각종 이슈에 대해서는 활발하게 진보 흉내를 내지만, 정작 노동조합이나 사내 성희롱의 문제 같은 것들이 눈 앞에 닥치면 입장이 달라지고는 한다.

창업한 게임 개발자들은 어떤가. 자칭 지유주의자들이고 커뮤니티에서 흔히들 대통령이 어떻고 국회의원이 어떻고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자신의 회사에서 발생하는 불법이나 부조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심지어는 체불, 부당해고, 성희롱 등의 문제가 쏟아지는 회사의 경영진도 40~50대가 아닌가.

요는 ‘거시적’인 부분에서의 진보 어쩌구보다 눈 앞의 현실에 더 충실해야한다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고 행동 하나하나를 반성하는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