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ver

보통 격투 게임은 플레이어의 숙련을 기반으로 한다. 모든 플레이어는 똑같은 캐릭터를 가지고 플레이를 하고,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지만, 캐릭터의 기술(move)을 변경하거나 자신 만의 류파(style)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일반적인 격투 게임은 커맨드의 입력 타이밍, 반응 속도, 기술 이해 등을 기반으로 하는 숙련을 싸우는 게임이 된다. 일반적인 경우, 플레이 시간이 누적되면 플레이어는 게임 메카닉에 익숙해지고 더 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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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olver의 무술 편집(출처: http://thekoalition.com)

Absolver는 이 전의 글에서 잠깐 언급을 했던 것처럼, 검호(劍豪)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게임으로 이런 격투 게임의 ‘성장’을 기술 수집으로 표현한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맵을 돌아다니면서 기술들을 직접 맞으며 새로운 동작(move)을 익히고, 이걸 다른 동작들과 엮어서 자신만의 류파(style)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편집해 만든 자신의 동작들로 다른 플레이어와 대전 결투를 하거나, 맵을 공유하는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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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호의 무술 편집(출처: 유튜브)

말하자면, 검호가 그랬던 것처럼, 플레이어는 상당한 반복을 통해서 동작을 수집하며 자신의 캐릭터를 키워야 한다. 물론 검호처럼 폭포수를 맞으며 수련을 한다거나 촛불, 볏단을 벤다거나 하는 개인 훈련이 없이, 쌩으로 맵을 돌아다니면서 두서넛 떼로 나오는 ‘NPC들’과 싸우며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게 이 방식에서의 숙련과 성장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개의 컨셉 충돌이 발생한다. 기본적으로 이런 형태의 전투 설계는 일대일의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 상대의 동작을 막거나 받아치거나, 타이밍을 뺏거나 하는 식의 전투이기 때문에, 일대다의 전투가 되면 이 일대일의 전투에서 빛을 발하는 설계가 퇴색한다. 이건 포아너의 전투도 사실 비슷하고, 마비노기의 전투도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고 본다.

아마도 이건 일대일로만 연속될 경우의 지루함이나 난이도 조절의 어려움 때문에 이렇게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반복을 통해서 상대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불필요한 난전이나 (나를 해당 기술로 때리면서 가르쳐야 하는) 타겟이 죽어버려 짜증이 발생하는 구조로 흘러가게 된다.

또 하나는, 싱글플레이가 이렇게 기술 수집과 편집, 반복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이 싱글플레이 공간을 2~6인 멀티플레이어가 공유하는 방식으로 했다는 것이다. (서버 연결이 없으면 플레이를 할 수 없다.) 맵이 꽤 넓고, 플레이어들이 각자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필요한 몹을 붙들고 반복하는 작업만 하면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되니 한 쪽에서 몹 하나 붙들고 기술을 배우는 걸 다른 플레이어가 방해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이렇게 ‘기술 수집(시도+좌절) → 성장(도전) → 다양한 기술(보상)’로 이어지는 성장 구조와 보상 구조가 여기저기서 자꾸 충돌하기는 하는데, 어쨌거나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게임은 전체적으로 꽤 잘 만들어져 있다. 동작을 편집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고, 이걸 가지고 다른 플레이어와 대전을 하는 것도 꽤 인상적이다.

Absolver는 검호에서 차용한 기술 수집과 편집이라는 핵심 컨셉을 가지고 전체 게임을 끌고가는 게임인 만큼, 이게 매우 충실하게 되어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해서 $30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과거 검호를 플레이하면서 재밌어 했던 요소를 즐기는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동접이 1만 8천을 넘었다고 하니, 인디 게임으로써는 충분히 상업적 성공을 확보한 상황으로 보인다. 동접이 대략 2만 정도라고 보면 콘솔의 판매량은 20만~30만 정도까지 추정할 수 있을 것이고, $30 중 한 30~50%를 소니와 나눈다면, 대략 200만~300만불 매출은 나왔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이후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개선하느냐 그걸 좀 봐야할 것 같다. 혹은 이 성공으로 속편의 개발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고.

개인적으로, 포아너가 이런 식이었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주먹질로만 되어 있는 것이 칼질에 비해서는 매력이 좀 떨어지기도 하고.

진단 기획(diagnostic game design)

하우스(House M.D.)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조금 사이코로 보이는 하우스라는 의사가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 증상들을 종합해서 어떤 병인지를 찾아내는 내용이다. 하우스는 환자의 증상이 진단을 내리기에 부족한 경우에는 일부러 이런 약을 주고 저런 약을 줘서 상태를 더 악화시키기도 하며, 의외의 곳에서 환자의 진짜 숨은 병명을 찾아내 처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걸 진단 의학이라고 한단다.)

사실 잘못된 게임 디자인도 사람이 걸리는 병(病)과 같다. 플레이어들은 잘못된 목표 설정이나 인터페이스, 이동 경로들에 의해서 게임 안에서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이상 행동 특성들을 나타내며 특히 집단 행동을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하나의 요소가 게임 전체에 영향을 미쳐 급기야는 게임이 재미없게 되고, 결국에는 게임을 망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던전앤파이터에서 플레이어들의 플레이 시간을 조절하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그런 의도로 만든 ‘피로도 시스템’이 그 한 예가 된다. 플레이어들은 제한된 던전 출입 회수 때문에 1) 던전을 최대한 단거리로 통과하려고 하게 되고, 2)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높은 효율을 찾으려고 한다. 던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님들아 스겜*요.”라는 말은 이런 결과인 거다. 그리고 이런 행동의 궁극적인 결과로 플레이어들이 고레벨이 해주는 쫄쫄이 버스를 타려고 한다. 직접 사냥을 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에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고, 저레벨 플레이어가 위험을 무릅쓰고 몹을 잡으면서 직접 코인*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이런 ‘편한 길’을 찾으려는 수요가 넘쳐나기 때문에 고레벨들은 저레벨 플레이어들에게 돈을 받고 – 마치 아르바이트를 하듯 – 자기 피로도(시간)를 판매해서 저레벨들을 데리고 던전을 돌아준다. 각 던전 입구에 “XX 던전 스겜 YY골드”하는 식의 간판을 걸고 수십 명이 줄줄이 서서 ‘고객’들을 기다린다. 게다가 저레벨들은 이 버스를 타기 위해서 구걸을 하거나 현질을 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MMORPG가 가지고 있던 구걸이나 현질, 플레이어들의 버스 행동보다 ‘비정상적으로 과다한 상태’가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피로도 시스템’은 던전앤파이터가 의도했던 플레이어들의 플레이 타임을 조절한다는 명분 외의 부작용들을 얻게 됐다. 그리고 게임 전체에도 영향을 미쳐서 플레이어들이 게임의 컨텐츠 이모저모를 둘러보고 게임의 재미를 느끼기 보다는 최종 단계, 고레벨이 되기 위해서만 컨텐츠가 존재하는 것으로 전락시킨다. 말하자면 던전앤파이터의 1~30레벨 컨텐츠는 재미를 위해서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40레벨 50레벨이 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경로일 뿐인 것이다.

  • 주1: 스겜 – 스피드 게임의 줄인 말로 ‘게임을 빨리빨리 진행하자’는 뜻이다. 보통은 PC방에서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이 시간이 곧 PC방 이용료이므로 사용했던 말이고, 던전앤파이터에서는 저연령층의 PC방 이용 시간과 피로도 시스템의 연계로 작용한다.
  • 주2: 코인 – 캐릭터가 던전 안에서 죽게 되면 코인을 넣고 새 라이프를 받아 이어야 한다. 이는 옛 오락실의 동전 넣는 것을 모사한 것이다.

이런 예는 잘 팔린 게임에서나 잘 팔리지 않은 게임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플레이어들이 게임 내에서 이상한 플레이 행태를 보이는 경우에는 더더욱 눈에 띄는 잘못된 요소가 존재한다.

마비노기의 전투 시스템이 또 그렇다. 공격-방어-반격으로 구성된 전투 방식은 말하자면 일견 가위바위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자체로 완전한 설계라 추가의 밸런싱이 불가능하다. 플레이어는 상대의 캐스팅이나 동작을 보고 상태를 예측할 수 있고 거기에 합당한 카운터 액션을 하면서 전투를 수행한다. 그리고 이건 인공지능으로 플레이어를 기만하려고 해도 특정 행동에 완벽한 카운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몬스터의 크기나 스피드나 생김이나가 전혀 관계가 없이 플레이어가 언제나 우위에 있다. 그래서 초창기 마비노기는 티르코네일 주변에서 늑대 사냥법을 알게 되면 어디나 가서 전투를 할 수 있었다.

결국 마비노기에서는 이 전투 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오토 디펜스라는 괴상한 시스템을 덧붙인다. 플레이어와 몬스터의 대결에서 항상 우위에 있는 플레이어를 짓누르기 위해서 플레이어에게는 없는 몬스터만을 위한 ‘일정 확률로 무조건 방어’가 되는 기술인 거다. 플레이어는 카운터 액션을 하러 접근하고 공격하지만 – 이건 이미 완벽한 플레이어의 승리였다 – 오토 디펜스라는 ‘플레이어는 무조건 공격 실패함’이라는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결국 플레이어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토 디펜스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공격 방법 – 윈드밀이라고 부르는 – 을 연마하고 던전 안에서 죽어라고 브레이크 댄스*만 추게 만들었다.

  • 주3: 브레이크 댄스 – 윈드밀을 시전하면 플레이어 주변의 몬스터를 모두 공격할 수 있는데, 이 동작이 브레이크 댄스 춤 동작과 비슷하다.

이런 잘못된 게임 디자인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발자들의 게임 경험 부족이 문제인 거다. 어떤 개발자는 PC 게임만 플레이하고 어떤 개발자는 온라인 게임만 플레이하며, 어떤 개발자는 게임을 아예 안한다. (물론 개발자들이 개발하느라 게임할 시간이 없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참신한 게임을 만든다는 만족감을 줄 수는 있겠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게임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게임 설계는 이미 80~90년대에 시도된 것들의 재탕이나 변형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하는 사람들 특히 디자이너(기획자)들이라면 옛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최근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진단 기획’이라는 걸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말하자면 QA보다 좀더 공격적인 품질 관리라고 할 수도 있다. 개발자들이 저렇게 많은 게임들을 플레이할 수 없다면, 플레이해봤고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저런 역할을 대신 해주는 거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여기에 있고 이렇게 개선해야 한다’는 걸 짚어주는 역할이다. 게임을 만든 디자이너 입장이라면 이런 사람이 왠지 자기 개발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것 같겠지만, 어차피 게임을 혼자 만들고 게임 개발 경력을 소수의 사람이 독점하던 시대는 지나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