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게임의 전성시대는 언제나 올까

오손 웰스는 말했다. “영화감독은 우연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한 쇼트에 들어간 수많은 요소 – 연기, 의상, 대사, 앵글, 음악 등을 보통 감독이 선택한다. 그것들이 모여 우연의 조합이 되고 영화가 된다. 그렇다면 질문. 꼭 감독의 선택이어야 하나? 대답.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누가 말했는지 모를 그 빤한 말보다 증거가 있다. 아주 오랫동안 영화가 스스로 쌓아온 이름은 대부분 감독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예술적 성취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압도적인 흥행 기록은 두 감독의 이름을 영화판 밖에도 알렸다. 언젠가 이준익 감독에게 영화감독은 대체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감독은 제작자가 준 여러 개의 시나리오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골라. 의상팀이 의상을 준비해오면 그중에서 예쁜 옷을 골라. 옷을 입고 배우가 연기를 해. 연기를 잘하려고 노력할 것 아냐? 그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를 골라. 그리고 말해. 오케이! 어때? 감독이란 직업이 얼마나 쉽냐고! 그냥 골라. 그게 다야.”(그의 말투를 살리고자 존댓말을 생략했다.) 영화감독은 오직 선택만으로 창조하는 유일한 예술가가 아닐까?

A는 말한다. “들어오는 시나리오의 수준이 형편없어요. 어디서 우라까이(베낀다는 일본말, 영화계 은어)한 이야기예요. 이런 시나리오를 주고받는 건 의미 없어요. 우리가 왜 영화를 하는지, 왜 영화를 시작했는지 모두 잊어버린 것 같아요. 돈만 벌려고 영화 시작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우리 모두 ‘좋은’ 영화에 감동을 받았으니까 영화를 시작한 거 아닌가요?” 감독에게 선택권을 줄 때 좋은 영화가 나올까? 견고한 시스템으로 만들면 흥행에 성공할까? 좋은 영화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나?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일화. 그는 칸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이 예술성을 보장하는 위대한 작품들인지 의심했다. 정성일은 <리베라시옹>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의 답. “영화가 자기 돈을 들여서 예술을 하면 그건 별로 존경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지. 그러나 여기 온 감독들은 돈밖에 모르는 제작자를 꼬이고, 재미밖에 모르는 대중들을 홀리면서, 기어이 자기 이야기를 찍어서 우리들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든 거야. 그건 위대한 일이지. 그리고 그게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승리지.” (정성일, 정우열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 이다> 바다출판사) 영화에 기대하는 건 이해와 논리가 아니다. 선택의 일관성, 그것을 위한 투쟁, 끝내 쟁취한 합의로 만든 황홀한 이야기와 이미지. 그런 것이 가득한 ‘좋은’ 영화를 봤을 때 영화는 꿈이 된다. 그때서야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지금 한국영화는 만들고 싶은 꿈인가? 새로운 꿈이 없다면 좋은 영화도 없다.

– 망한 감독 전성시대, GQ Korea

게임업계에서는 흔히 ‘남의 돈으로 예술하면 안 된다’고들 이야기하며 게임이 치열하게 상업화로 달려가는 것에 합리화를 하고는 하는데, 영화는 오히려 남의 돈으로 예술을 하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며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승리라고 이야기를 한다.

투자자에게 은행 이율보다 높은 이율을 갖다 바치기 위해서 게임 회사는 직원들을 닦달하고, 이에 개발자들은 게이머들을 쥐어 짜서 매출을 만든다. 결국 재주를 부려 돈을 버는 것은 자본가와 투자자들이고 게임은 갈수록 형편없는 내용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 처음의 시작 어딘가에서 잘못 꼬인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본의 일반 속성

우연히 배달앱, 알고보니 배다른 민족? 해외 자본 투자의 두 얼굴이라는 글을 읽었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앱 회사에 해외 자본의 투자가 있었고, 요기요의 경우는 해외 자본의 국내 지사가 됐다며 해외 자본의 투자에 우려를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는

해외 자본의 경우 상당히 ‘공격적인’ 투자와 수익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낮은 가격으로도 팔고 치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안정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낮은 가격으로도 팔고 치우는 경우’가 마치 해외 자본의 문제처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1) 해외 자본의 국내 지분을 걱정한다면 삼성의 경우는 이미 50%가 넘었고 하이닉스도 넘었고 IMF 이후 지속 증가해서 이제 국내 대기업의 대부분은 최소 30% 이상이 외국인 투자자라는 걸 이야기 해야한다. 물론 배달앱의 경우 단일인의 투자이므로 좀 더 직접 판단이나 정책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겠지만, 2) 결국 저 이야기는 해외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일반 속성이다.

최근 게임 업계도 중국발 투자로 인해서 많은 우려가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은 더 공격적이고 일본 기업은 덜 공격적이고 한국 기업은 안 그런가?라는 질문에는 셋 다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쪽이 맞다. 오히려 이 ‘공격적’이라는 표현에서 ‘누구에게 공격적인가’를 따져야 한다.

이건 주로 해외 기업이 국내 경영자를 밀어내는 경우 국내 경영자가 ‘쫓겨났다’는 식으로 ‘한국 회사를 중국에 뺏겼다’는 식으로 틀을 짜는데, 사실 시장의 입장, 소비자의 입장,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별로 달라지는 상황이 아니다. 회장이 낙하산으로 사장을 바꾸는 것과 한국인 경영자가 중국인으로 바뀌는 상황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국 회사는 정리해고를 하지 않고, 중국 회사는 정리해고를 하나? 독점에 의한 문제가 해외 자본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가? 그냥 자본의 문제다. 자본이 탐욕스러운 것이고 자본이 공격적인 것이고 폭력적인 것이다.

 

Telegram은 어느 나라 메신저인가

며칠 전 대통령께서 인터넷 유언비어가 도를 넘었다고 한 이야기가 있은 후, 곧바로 사법부는 “서울중앙지검에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만들고 포털사이트, 카카오톡 등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방침을 천명”했다는 뉴스가 났다. 그리고 과거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뒤져서 범인을 잡은 사례나 구원파 등이 보안을 이유로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다는 등 여러차례 유사한 건으로 신뢰성이 떨어져 있던 차에, 사람들의 반응은 ‘뭐? 정부가 카톡을 검열한다고?’라고 흘러갔고, 결국 수혜자는 텔레그램(Telegram)이 됐다.

그런데 여러 언론에서 이 ‘현상’을 보도하면서, 텔레그램이 어느 나라 제품인지를 오락가락하는 현상이 보여 특이하다 생각이 들었다. 머니투데이에서는 러시아라고 하고, 블로터는 러시아 출신이 개발했다고만 하며, 전자신문은 독일산이라고 한다.

트위터에서 이걸 궁금해했더니 많은 분들이 멘션을 주셨는데, 결론은 공식 사이트의 FAQ에 있다. 개발자가 러시아 출신이지만 러시아와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생각이 이어졌다. 네이버의 메신저 Line은 어느 나라 메신저인가. 한국에서는 한국산이라고 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일본산이라고도 한다. 한국에 본사를 둔 네이버의 일본 지사에서 만든 앱이므로, 한국산이다 일본산이다 사실은 많이 애매하다.

그럼 다시 일본에 인수된 (라그나로크를 만든) 그라비티는 어느 나라 회사인가. 직원들은 한국인들이었고 회사의 경영권과 자본은 일본 회사에 넘어갔다. 한국회사일까 일본 회사일까. (게임계에서는 대개 일본 회사라고 한다.) 또 흔히 일본 주식 시장에 상장했다는, 넥슨은 어느 나라 회사일까. 한국에서 설립하고 한국에 본사와 거의 모든 지사와 거점이 있지만, 일본에 상장한 지주회사 NXC가 넥슨 일본 지사를 통해 지배하고 있다.

자본은 원래 국적이 없다. 거점으로 두고 있는 나라야 명확하긴 하지만, 회사의 국적을 따지는 것처럼 멍청한 일은 없다. 국가가 위기 상태(소요나 전쟁 등)가 되면 가장 먼저 떠나는 것이 자본이고 기업이다. 기업이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거나, 심지어는 자국 기업이니 애용해야 한다는 건 가장 멍청한 짓이다.

어쨌거나 내가 이걸 왜 따지고 있었나 싶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