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병역거부를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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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홍정훈 활동가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지지합니다.

얼마 전, 임재성 변호사의 양심적병역거부 무죄 판결문(2016고단5123 판결) 요약을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고, 그 내용을 이 블로그에 포스팅한 바 있습니다. 저는 해당 판결문의 모든 문장에 동감하였고, 그 중 특히 법관의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라는 부분에서 크게 감명을 받아 인용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해방 이래 양심적병역거부자가 만 명이 넘도록, 대체복무제도를 준비하지 않고 방기하고 있는 국가의 국민으로써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공익이나 법질서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체복무라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음에도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피고인과 같은 병역거부자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희생할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되므로 법익 균형성도 갖추지 못하였다.”

판결문 요약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홍정훈에 대한 징역 판결의 부당함을 피력하며, 저의 지지를 표합니다.

양심적병역거부를 지지합니다

“우리 법관은 국민에 의한 선거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다. 이것은 제도적인 허점 내지 방치도 아니고, 법관을 선거로 선출한다는 것이 사회적 낭비이기 때문도 아니다. 다수결 원리에 따른 선거에 의해 재판권이 주어지는 경우, 여론에 의한 재판 등으로 진실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할 수 있다는 나름의 성찰에서 나온 것이다. 법관이 여론으로부터 독립하여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함으로서 다수의 힘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보호하라는 사회적 사명을 가진다.”

서울북부지방법원 2017. 4. 6. 선고 2016고단5123 판결
임재성 변호사의 판결문 요약 중

양심적 병역 거부 무죄 판결문을 임재성 변호사가 요약해서 페이스북에 올린 것 중 이 부분이 참 흥미롭고 인상 깊다. 법관이 (법관으로서) 양심에 따라 다수결이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권리를 (소수자에게도) 지켜줘야 한다는 그런 당위와 책임감에 대한 부분이다.

인용

인권은 의무를 동반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말에, 종종 어떤 사람들은 슬쩍 ‘의무’를 끼워 넣는다. 이를테면 ‘여성은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한다’라는 식으로.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권리’는 ‘인권’에 대한 이야기다. 시민으로써나 국민으로써나 혹은 누군가의 엄마로써나 아내로써의 권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써의 권리다. 이 인간의 권리는 심지어 범죄자든 여성이든 아동이든 노인이든 흑인이든 동남아계 이주민이든 장애인이든, 모두 인간으로 태어난 자 모두가 동등하게 갖는 권리이다. (물론 그 ‘인권’의 발생이 태아의 단계 언제부터냐 하는 식의 논쟁은 아직도 있나보다만.)

그래서, 인권이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인간과 범죄자가 동등한 인권을 갖고, 한국에서 태어나 국적을 가진 인간과 해외에서 태어나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인간이 동등한 인권을 갖고, 장애가 없는 인간과 장애가 있는 인간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돈이 많은 인간과 돈이 없는 인간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아주 간단한 개념이다.

인간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백인과 흑인이 동등한 투표권을 갖게 됐고, 누구나 취업할 때 생김새나 성별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됐으며, 미디어에 자신의 의사에 반하게 얼굴을 노출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됐고,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존엄을 갖고 죽을 권리를 갖게 됐으며, 법치국가라는 개념을 세운 국가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게 부당한 재판에 항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고… 등등 그런 거다.

그래서 (요즘 특히 논란이 되는) 이자스민 의원의 아동 보호에 관한 법안이 현대 국가라면 어디에서나 보호해야할 아동의 ‘인권’에 대한 내용이기에 반대하는 것이 어처구니 없는 짓이 되는 것이고, 인권을 이야기하는데 국방의 의무를 꺼내어 들이미는 짓이 멍청한 짓이 되는 것이고, 범죄자의 얼굴을 왜 공개 안 하냐는 소리가 미개한 소리가 되는 것이고, 범죄자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세계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국방의 의무’에 대해서도 덧붙이자면: 국민들도 국가로부터 ‘국민으로써의 권리’를 당연히 (국적을 획득하면서 동시에) 갖는다. 여기엔 앞에 이야기한 것보다는 좀 더 좁고 다양한 권리들이 추가된다. (각 국가 시스템에 맞는) 재판을 받을 권리라든지, 자신의 재산을 보호받을 권리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또한 이 권리들은, 세금을 체납했거나 국방의 의무를 안 했다거나 하는 등 국가에 의무를 하지 않았다고 사라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써의 권리, 국민으로써의 권리는, 의무를 동반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구성원으로써의 의무를 수행해야만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같은 헛소리들이 참 많다.

태어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인권은 갖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인간이든.

  • 이게 다 도덕시간에 ‘권리와 의무’를 엮어서 교육해서 마치 대칭처럼 보이게 한 교육의 문제다.
인권은 의무를 동반하지 않는다

인식

사람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실과 마주쳤을 때 대개 자기가 이해하는 범위에서 그것의 ‘진의’를 파악하고 싶어한다. (중략)

답변은 최대한 ‘통속’적이어야 한다.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이 충격적이면 충격적일수록 그 이면에는 자신들이 일상생활에서 한 번쯤 가져봄직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폭로’가 있어야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중략)

‘시민인권헌장’이라는 커튼 뒤에 바로 이런 통속적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드라마틱한 도식 덕분에 이들은 비로소 안도하고 가열찬 반격에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보편적 인권 이해 없는 그들은 통속적 답에 안도감을 느낀다, 미디어스

인식은 언제나 인식 주체의 범위를 한계로 한다.

쉽게 말하면, 이해 못 하는 것은 이해 못 하는 네가 문제인 거지 사건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장님 눈에 세상이 안 보인다고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더 쉽게 말해서, 이해를 못 하겠으면 판단을 하지 말고 공부해라.

인식

세계인권선언

제 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며 서로 동포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제 2조

1.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국민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이들과 유사한 그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도 차별을 받지 않고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2. 나아가 개인이 속하는 국가 또는 지역이 독립국이든 신탁통치 지역이든 비자치 지역이든, 또는 어떤 주권제한 하에 있든지, 그 국가 또는 지역의 정치적, 사법적 또는 국제적인 지위에 근거하는 어떤 차별도 받지 않는다.

세계인권선언, 엠네스티

서울시와 시민인권헌장 관련해서 트위터에서 며칠 째 난리다.

성소수자 만이 아니라 장애인, 외국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차별’에 대해서, 보편적 인권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소위 스스로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양분되고 있다. 심지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을 까지 말라거나 지지해야 한다거나 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인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은, 범죄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을 비교하기도 하고, 여성의 인권과 남성의 인권을 비교하기도 한다. 인권은 모든 인간이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남성, 여성, 성 취향, 성 지향, 장애, 피부색, 부모, 국적, 범죄 여부 등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선언’은 의지를 담는 것이다,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노예 해방, 여성 참정권 같은 것들이 그렇게 되어 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수십 년 전에 선언되고 어떤 나라들은 법이 제정되었음에도 여전히 미국에선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하고, 한국에선 흑인이라는 이유로 교사가 되지 못하기도 한다.

인터넷의 흔하디 흔한 조선계 중국인 차별, 이주 노동자 차별, 고용 차별, 성 차별 내용들을 보면서 서울시의 인권 선언 관련 관련 이 사건이 새삼 쓰게 다가온다.

세계인권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