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화에 이은 RPG화 흐름

2003년 한 잡지에 ‘콘솔의 온라인화에 대한 짧(지 않)은 생각’이라는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콘솔 게임기들이 온라인과 연결되거나 온라인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어떻게 좀 더 유기적으로 다른 플레이어들과 소통하게 만들까 하는 것이 당시의 화두였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져 5년 가량 흘렀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싱글플레이 게임이 어떻게 온라인으로 발판을 옮길까 하는 그런 고민을 한 결과 지금과 같은 모든 게임이 온라인으로 옮겨오기 시작하는 상황이 된 게 아닌가 싶다.

보고 있자면, 이제는 이 온라인화가 거의 마무리 단계이고, 그 온라인화된 게임들이 어떻게 플레이어들의 시간을 휘어잡느냐에 대한 고민들을 하고 있는 단계인듯 하다.

대표적으로 달성도(achievement)라고 부르는 시스템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간 것을 들 수 있다. 처음 시작이 뭐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배틀필드2가 아닌가 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플레이 성과에 따라 일정한 조건이 되면 달성도에 따라 훈장 같은 것을 획득할 수 있고 이건 배틀필드2의 간판 시스템인 장비 제한 해제(unlock)로 연결된다.

이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또 다른 대표 게임들이 아바와 팀포트리스2다. 아바는 달성도가 게임 전반에 유기적으로 녹아있는 경우는 아니지만 달성도의 상황에 의해 플레이어는 스킬을 획득하거나 게임 머니를 받는 것으로 RPG에서 퀘스트가 그렇듯 플레이어에게 동기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팀포트리스2는 이 달성도가 게임하던 중 즉시즉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표시되고, 스팀 메신저나 또는 이와 연동되는 웹 페이지를 통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달성 상황을 언제나 열람할 수 있다. 스팀 메신저는 게다가 게임중에도 웹 브라우징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이런 것이 훨씬 쉽다.

이 달성도와 장비 제한 해제 같은 요소들은 처음 FPS들이 RPG의 동기부여 요소들을 흉내내 도입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MMORPG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요소이기도 하다.

SOE(Sony Online Entertainment)는 이 흐름에서 꽤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처음 에버퀘스트에 전투정보실을 도입한 것에서부터 뱅가드에 달성도를 만들어 게임 진행에서 처음 발견한 지역, 처음 발견한 아이템을 계속 표시했다. 그리고 이 지역, 이 아이템을 가장 처음 발견한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몇 번째인지를 보여주므로 플레이어의 경쟁심을 자극한다.

뱅가드만이 아니라 SOE에서 최근 공개한 자유로운 왕국들(Free Realms)도 이런 달성도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경우이다. MMORPG 공간에 수십 개의 미니 게임들을 유기적으로 넣어놓은 미니 게임 포털식과 MMORPG의 기존 형식을 잘 결합했다. 플레이는 계속 달성도 상황과 레벨이 연동되어서 표시되고 플레이어는 뭔가를 얻고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다른 게임들보다 강하게 받게 된다. 상대적으로 플레이어들의 체류 시간이 짧긴 하겠지만, 어차피 부분유료를 채택하고 있는 캐주얼 MMORPG 지향이니 별 상관은 없어 보인다.

워해머 온라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식의 책(Tome of Knowledge)이라는 것을 만들어 플레이어에게 현재 퀘스트(public quest)나 달성도 같은 것들을 게임의 분위기에 훨씬 잘 어울릴뿐 아니라 좀 더 효과적으로 표시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달성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웹으로 나갈 필요도 없고 게임 안에서 버튼을 하나 누르는 것으로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FPS에서 장비 해제나 달성도의 기록을 훈장으로 표시하는 등의 것이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나자 다시 MMORPG로 요소가 역 도입되고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활용은 앞으로 각종 장르로 퍼져나갈 것이 틀림없다. 콘솔 게임들이 게임 플레이 시간을 억지로 늘이기 위해 사용하던 방법들이 온라인에 적응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가까운 몇 년 이내에 많은 게임들이 온라인화되면서 이를 도입하게 될 것이고, 점차 퍼즐, 스포츠, 레이싱, 전략 게임 등으로도 확산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하자면 모든 게임의 온라인화 흐름에 이은 RPG화인 것이다.

MMOG의 MMO

1.
MMOG란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Game의 줄임이고 최근 우리말로는 ‘다중 접속 온라인 게임’ 정도로 사용하고 있다. ‘다중 접속’이라는 말은 그런데 multi connection이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고, 원래의 Multiplayer를 옮겼다고 보기 어렵기도 해서, 난 이 우리말 해석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2.
MMO-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게 2000년 쯤이었는데, 그 전에는 MMPOG(Massively Multi Player Online Game)를 썼더랬고 또 그 전에는 MUD(Multi User Dimension)의 그래픽 버전이라는 뜻으로 MUG(Multi User Graphic)라는 괴상한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3.
초창기만 해도, Multiplayer의 multi-는 수백 명 이상의 플레이어를 뜻했다. 2000년 당시 (MMORPG가 아닌) 온라인 게임이라고 하면 주로 퀘이크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네트워크 게임이었고 2의 n승 플레이어가 참가하는 2인, 4인, 8인, 16인 정도가 한계였으니까 여기에 비해 수백 명은 엄청난 접속이었다. 사실 MUD의 MU-도 일부 MUD들을 제외하면 수백 명 단위가 기껏이었기도 했다.

4.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네트워크 게임’들이 16인의 제한을 넘기 시작하는데, 그 대표적인 게임이 다이나믹스(Dynamix)의 부족들(Starsiege: Tribes, 1998)이 32까지 접속할 수 있었고, 속편인 부족들2(Tribes2, 2001)는 64인 플레이어가 접속할 수 있었더랬다. 그리고 사실상 이 접속자 숫자 제한은 이제 붉은 관현악단(Red Orchestra: Ost Front) 같은 게임에서 128명까지 접속할 수 있는 서버도 나오면서 깨지게 된다.

이렇게 되고 보면, Massively Multi-라는 단어는 이제 그 의미가 퇴색하게 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더 이상 ‘매우 많은 플레이어가 접속한 공간’이라는 건 MMOG만의 독점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니까. 게다가 ‘매우 많은(massively)’은 명확한 기준이 없는 이상 네트워크 게임들과 중첩되는 부분들이 생기기도 한다.

5.
불과 10년 전, 대마법사(Archmage, 1997)라는 국산 게임이 웹게임(webgame)의 첫 시작을 만든 이후로 웹게임은 꾸준히 발전해서 – 단지 페이지뷰(Page View, PV)를 이용한 광고 모델만으로 서비스하던 것이, 플레이어가 턴을 소모해서 실시간 흉내를 내던 것이 발전해서 – 실제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게임들이 나오게 되고, 이제 ‘(기술적으로는 아니지만) 동시에 접속해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해지고 있고 MMO 게임으로 보기도 한다.

6.
MMOG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이라는 세계의 ‘항구성(persistence, 영속성, 지속성)’이라는 것도 처음 MMOG를 정의했던 그 의미에서 많이 변화되고 있기도 하다. 플레이어가 접속을 끊더라도 세상은 존속한다는 의미의 ‘PW(Persistant World)’도 오히려 ‘플레이어가 변화시킨 월드가 다른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준다’는 형태로 바뀌어야 하지않나 싶을 때도 있다. (우리말 ‘항구성’은 permanency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해서 조금 다른듯하기도 하고.)

게다가 부분적으로는 PW를 사용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아닌 게임들은 또 어떻게 정의를 할 것인가도 분명치 않다. 게임은 계속 변화되고 발전하는데 개념들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느낌이다. 처음 정의에서 너무 불분명하게 설정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안되네…

대상이 없는 전투 방식

MMORPG에서 정해진 대상만을 선택해서 공격하는 방식이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했던 건지, 아니면 대상 없이 영역을 공격하는 방식(non-target combat system)이 훨씬 리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2009년의 화두는 마치 (MO와 함께) 논타겟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많이 나온다.

사실 논타겟이라면 코난의 시대(Age of Connan)가 이미 있었다. 타겟 창이 있고 타겟을 선택할 수 있지만 공격은 영역 공격이라 활의 궤적 중에 있는 장애물, 다른 NPC 등이 공격을 방해하기도 하고 칼질의 영역 안에 다른 몹들이 있으면 같이 공격을 받던 걸로 기억한다. 문제는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였나?’ 싶을 정도로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것.

논타겟 전투 시스템이라는게 좀 멋져보이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이런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건 ‘리얼리티’와 연관돼 있다. “왜 내 칼질에 쟤들은 닿았는데 피해를 입지 않을까”라는 기본적인 생각에서 출발하는 건데, 이 리얼리티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이냐가 이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

막말로,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은 원초적으로, ‘그럼 플레이어 캐릭터는 왜 영역 안에서 피해를 입지 않는가’라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절충선으로 ‘NPC(mob)에는 적용, PC에는 미적용’이라고 한다면 역시나 시스템의 목적에 별로 부합하지 않게 되고, 진삼국무쌍의 학살 게임에나 어울리는 방식이 되는데, 이건 결국 리니지에서 몹몰이를 한다는 소리 밖에 안된다. 그 ‘몰아 맞아야 하는 몹들’은 결국 필드에 바글바글 널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되고.

PC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코난의 PVP 서버 꼴이 발생한다. FFA(Free For All). 소위 무한 PK라고도 할 수 있는, 같이 파티 사냥을 하는 동료들도 피해를 입게 되고, 수 없는 분쟁과 수 없는 아우성 난장판의 도래.

합리적인 선에서, 몹에만 적용한다고 해도, 이 방식은 MO에서나 가능한 방식이고, MO라는 건 기본적으로 ‘다른 플레이어에게 내 사냥이 방해받지 않음’이나 ‘여러 마리 몹을 전략적으로 사냥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상호작용이 크게 감소’한다는 게 단점으로 작용한다.

내가 보는 온라인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옆 플레이어를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옆 플레이어가 엄청난 컨트롤 고수라면 감탄하면서 그의 예술적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을테고, 허접스러운 칠랄레 팔랄레 삽질하며 돌아다니는 플레이라면 ‘병신, 저게 뭐하는 짓이야’라며 우월감을 느끼는 그 상황. 이 상황은 사실 PVP가 가능한 시스템에서 ‘저기 다가오는 플레이어가 적인가 아군인가’에서 극대로 발현된다. 서로 긴장하면서 행동을 주시하는 상황. WOW의 필드에서 비선공 성향의 플레이어가 상대 진영의 플레이어를 만났을 때 느끼는 심리적 상황과 같다.

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플레이어 내적으로 발생하는) 상호작용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감정을 발생하게 하고, 온라인 게임 안에서 도전 욕구와 우월감을 제공하면서 (일종의) 중독적인 플레이를 만드는 핵심인데, MO가 되면 이걸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게 된다. 함께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은 일반적인 MMORPG의 파티와 같이 ‘아군’이기 때문에 “고수와 함께라면 뭍어가기, 병신과 함께라면 잽싸게 킥(kick out) 또는 짐 덩어리”가 되는 양상이 되어 병신 플레이어는 결국 게임에서 도태된다. (아마 그 ‘병신 플레이어’는 부던한 노력으로 실력을 쌓거나, 계속 민폐를 끼치다가 게임을 관두겠지.)

말하자면 MMORPG에서 논타겟 전투라는 건 일종의 MMO의 기본적인 게임성과 상충하는 디자인이라는 뜻이다. 시스템에 일관적으로 디자인을 하자면 플레이어는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몹들을 한 군데 몰아서 사냥하는 방식으로 플레이를 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광역 몰이 사냥’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사냥 영역’을 침범받기를 꺼리게 된다. “내 몹 왜 건드리냐”는 분쟁이 발생하게 되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서로간에 암묵적인 룰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계속 분쟁으로 남게 된다. (물론 이것도 플레이어의 내적 갈등을 발생시키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분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오히려 부정적이다.)

이게 개발의 난이도가 높다 낮다와는 전혀 상관 없이, MMORPG에서 ‘우리 게임의 목표는 리얼리티이고 또한 PVP를 전역으로 가능하게 한다’는 목표가 있다면 꽤 쓸만한 시스템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플레이어들은 ‘(다른 플레이어가) 전투 영역 안에 들어와서 맞는 건 어쩔 수 없다’면서 PK를 변명하게 될테고, 아수라장이 되는 결과가 나타나겠지만.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플레이어들이 자체적으로 PK에 대한 제재를 합의할 수 있는 시스템, 즉 게임 공간의 입법 및 사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아직 MMORPG에서 초기 단계로 발도 못 떼고 있다.)

논타겟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는 게임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플레이어들은 어디까지를 수용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