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 노동의 특수성

게임개발자연대가 3년을 공을 들여서 여러 정당 및 단체들(정확히는 정의당, 노동건강연대, 한국IT노동조합)과 연합해서 드디어 넷마블 및 게임 업계의 노동 실태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공론화를 하는데 성공했다. 개발자들의 갈수록 더 열악해지는 노동 상황 뿐만 아니라 산업의 실태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졌고, 이제 가장 기본적인 ‘노동법 준수 필요’라는 공감대는 만들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저항하는 기사들이 나오는데,

아직 일부 게임회사들은 개발자들을 채용할때 프로젝트 단위로 채용한다. 개발자들이 특정 회사에 직원으로 고용되기 보다는 팀 단위로 특정 프로젝트 별로 회사를 옮겨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 개발자들의 근무태도나 중간성과를 관리하지 않는다. 근무를 몇시간 했는지도 회사의 관여사항이 아니다.

정해진 기간에 결과물을 내면 된다. 결과물의 질이 근무태도나 근무방식에 대한 평가다.
실제로 게임회사에서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요시한다는 이유로 갑자기 조기퇴근하겠다는 개발자, 오늘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다는 개발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조기퇴근에 대해서 얼마나 큰 책임을 졌을까. 그들이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면 회사는 그 시간만큼 월급을 주지 않았을까. 꼬박꼬박 월급을 주면서도 약속한 기간에 결과물을 받지 못하는 회사의 속은 얼마나 쓰릴까. (중략)

9시 출근-6시 퇴근이라는 일반적인 룰을 ‘창작자’인 개발자들에게 모두 적용하는게 맞는지, 그게 맞다면 개발자들은 그 룰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지, 그것이 개발자들의 창의력을 오히려 떨어뜨리지는 않는지…먼저 따져볼 일이다.

게임업계 근로관행, 개발자들도 변해야 바뀐다, 파이낸셜 뉴스

이런 식으로 게임 개발 노동의 특수성을 운운하는 기사들이다.

이재홍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게임은 종합 문화예술로 불릴 만큼 예술적 창작 요소가 많은 제품”이라며 “개발 과정에서 몰입이 굉장히 중요하고, 이 때문에 고정된 근무 시간에만 일을 하라고 강제하는 것도 다소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에선 노동 환경을 개선하되, 게임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훈 교수는 “지나친 야근이나 촉박한 일정은 당연히 개선돼야 하겠지만, 근무 시간을 획일적으로 정하는 식의 감독은 게임 산업에 맞지 않는다”며 “게임 개발자의 문화를 이해하고 유연하게 정책을 집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툭하면 밤샘 게임업계 ‘크런치 모드’ 언제까지, 중앙일보

저 분들이 이야기하는 저런 개발자들은 2002~2005년 쯤에 온라인 게임 개발 붐이 일었을 때, 게임 개발에 환상을 가지고 업계에 들어 온 개발자들이 하던 이야기다. 요즘 게임 개발 저렇게 하는 곳은 거의 없다. 다들 오전에 출근해서 (회사가 강요하지 않으면) 저녁에 퇴근하(고 싶어하)고, GIT 등을 통해서 업무를 체크한다.

게임 개발을 자꾸 종합 예술이니 창작이라느니 갖다 붙이면서 ‘노동’을 일부러 지우려고 하는데, 예술이니 창작이니 할 수 있는 사람은 솔까 산업 전체에 5%도 안되는 최상층부의 디렉터급에나 해당하는 소리일 뿐, 매일 매일 일정 소화해내는 하층 개발자들은 그런 거 별로 없다. 게다가 게임을 예술이라고 칭할 때는 게임 자체를 말하는 것이지, 그 (개별 작업자들의 작업인) 특정 캐릭터 한 명의 생김이라든지 대사 한 마디, 기능 하나 가지고 요소라고 하는 거였나? 생각해봐라.

심지어 요즘은 한국의 인디 게임도 이젠 창작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보다 하루하루 생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특히나 매일 밤을 새면서라도 일정을 당기지 않으면 생활비를 만들 수 없는 인디 개발자들에게 창작이니 예술이니 하는 소리는 배 부른 소리다. 이번 게임 망하면 개발 접고 외주를 뛰든 노가다라도 뛰어야 되는 상황인데 지금 창작이니 예술이니 하고 앉아 있다.

저렇게 산업 현장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나가서 업계 사람들이 전하는 소리만 듣고는 특수성이니 운운하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게임 개발 과정은 노동이고 결과가 (낮은 확률로) 예술이 되는 거다. 게임이 예술이 되는 건 결과일 뿐이다.

특히나 현재 한국 게임 산업에서 예술이라고 불릴만한 게임이 일 년에 몇 개나 나오나. 연간 손에 꼽히는 사례를 가지고 마치 나머지 게임들이 전부 예술인 것처럼 확대하고 호도하는 것은 또 무슨 짓인가. 볼쌍사납다.

  • 어디에서나 ‘특수성’ 운운하면서 ‘일반성’을 부정하고 지우는 사람들이 있다.

망한 게임의 전성시대는 언제나 올까

오손 웰스는 말했다. “영화감독은 우연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한 쇼트에 들어간 수많은 요소 – 연기, 의상, 대사, 앵글, 음악 등을 보통 감독이 선택한다. 그것들이 모여 우연의 조합이 되고 영화가 된다. 그렇다면 질문. 꼭 감독의 선택이어야 하나? 대답.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누가 말했는지 모를 그 빤한 말보다 증거가 있다. 아주 오랫동안 영화가 스스로 쌓아온 이름은 대부분 감독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예술적 성취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압도적인 흥행 기록은 두 감독의 이름을 영화판 밖에도 알렸다. 언젠가 이준익 감독에게 영화감독은 대체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감독은 제작자가 준 여러 개의 시나리오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골라. 의상팀이 의상을 준비해오면 그중에서 예쁜 옷을 골라. 옷을 입고 배우가 연기를 해. 연기를 잘하려고 노력할 것 아냐? 그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를 골라. 그리고 말해. 오케이! 어때? 감독이란 직업이 얼마나 쉽냐고! 그냥 골라. 그게 다야.”(그의 말투를 살리고자 존댓말을 생략했다.) 영화감독은 오직 선택만으로 창조하는 유일한 예술가가 아닐까?

A는 말한다. “들어오는 시나리오의 수준이 형편없어요. 어디서 우라까이(베낀다는 일본말, 영화계 은어)한 이야기예요. 이런 시나리오를 주고받는 건 의미 없어요. 우리가 왜 영화를 하는지, 왜 영화를 시작했는지 모두 잊어버린 것 같아요. 돈만 벌려고 영화 시작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우리 모두 ‘좋은’ 영화에 감동을 받았으니까 영화를 시작한 거 아닌가요?” 감독에게 선택권을 줄 때 좋은 영화가 나올까? 견고한 시스템으로 만들면 흥행에 성공할까? 좋은 영화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나?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일화. 그는 칸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이 예술성을 보장하는 위대한 작품들인지 의심했다. 정성일은 <리베라시옹>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의 답. “영화가 자기 돈을 들여서 예술을 하면 그건 별로 존경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지. 그러나 여기 온 감독들은 돈밖에 모르는 제작자를 꼬이고, 재미밖에 모르는 대중들을 홀리면서, 기어이 자기 이야기를 찍어서 우리들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든 거야. 그건 위대한 일이지. 그리고 그게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승리지.” (정성일, 정우열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 이다> 바다출판사) 영화에 기대하는 건 이해와 논리가 아니다. 선택의 일관성, 그것을 위한 투쟁, 끝내 쟁취한 합의로 만든 황홀한 이야기와 이미지. 그런 것이 가득한 ‘좋은’ 영화를 봤을 때 영화는 꿈이 된다. 그때서야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지금 한국영화는 만들고 싶은 꿈인가? 새로운 꿈이 없다면 좋은 영화도 없다.

– 망한 감독 전성시대, GQ Korea

게임업계에서는 흔히 ‘남의 돈으로 예술하면 안 된다’고들 이야기하며 게임이 치열하게 상업화로 달려가는 것에 합리화를 하고는 하는데, 영화는 오히려 남의 돈으로 예술을 하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며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승리라고 이야기를 한다.

투자자에게 은행 이율보다 높은 이율을 갖다 바치기 위해서 게임 회사는 직원들을 닦달하고, 이에 개발자들은 게이머들을 쥐어 짜서 매출을 만든다. 결국 재주를 부려 돈을 버는 것은 자본가와 투자자들이고 게임은 갈수록 형편없는 내용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 처음의 시작 어딘가에서 잘못 꼬인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정말 오래된 질문이 있다. 가장 간단한 해답은 ‘어떤 게임은 예술적이고 어떤 게임은 아니’라는 정도겠다.

이 내 대답은 ‘게임이 예술인들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개발자가 게임이 예술이라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지금 예술적인 게임을 만들고/하고 있는지 묻고 싶고, 또 예술이 아니라면 예술적인 게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묻고 싶다. 물론 최근의 모뉴먼트밸리(Monument Valley)는 예술적인 게임 중의 하나라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예술적인 게임, 예술을 본듯한 경험이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중요한 가치인가. 지금 게임 시장은 그런 가치에 준하게 흘러가고 있나? 결국 게임이 예술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것은 특정 게임을 체험한 플레이어의 주관적인 결정일 뿐이다. 게임이 예술의 지위를 차지하든 아니든 그건 게임 자체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시장에 범람하는 일반적인 상업 게임들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게임은 예술이다’라고 주장한들 그게 받아들여질까. 60~70년대 락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던 집단에게 ‘음악은 예술이다’라며 재즈와 클래식을 아무리 들이밀어도, 그들에게 락은 그냥 소음일 뿐인 것이다. 그들은 재즈와 클래식을 소음이라고 공격하던게 아니라 락을 공격하던 것이다. 특히 헤비메탈은 악마의 음악이라며.

내가 보기에 게임은 그냥 경험일 뿐이다. 게임이 제공하는 어떤 경험이 예술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고통스럽거나 환상적이거나 하는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눈을 돌려서 보면, 어떤 사람은 프로그램 구조에서 예술적인 감동을 느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포르노에서 그런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관적인 경험들로 그 매체 자체가 예술이 되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결국 게임에 대한 탄압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게임을 탄압하는 것은 게임이 예술이거나 아니거나 아무 상관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에 대한 저항은 게임이 예술적이라거나 게임의 산업적 가치가 높다거나 하는 것으로 되는게 아니다.

미디어를 탄압하는 그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