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이다’에 대한 헌재의 의견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11월 헌법연구관들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1년 가까이 초중고교 사회 교과서 15종 30권을 검토했다.

그 중 한 교과서가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사례라며,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악법도 법이다‘의 예를 실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을 냈다.

실질적 법치주의와 적법절차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헌법체계에서는 준법이란 정당한 법, 정당한 법집행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 일화는 준법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사례로서보다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형식적 법치주의의 비교토론을 위한 자료로서 소개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우리는 헌법에 있는 기본권, 평등권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여전히 아웅다웅하고 있다. 하지만 그 헌법적 가치 – 평등 – 를 지키지 못 하면서 경제니 정치니 하면 무엇하는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악법도 법이다’에 대한 헌재의 의견

게구리 논란과 게임계의 성 차별

여성 게이머는 원래 게임 안에서 잘 해도 욕을 먹고 못 해도 욕을 먹는다. 아니 플레이를 잘 한다 잘 못한다를 논하기 이전에 여성 게이머는 ‘보호의 대상’이거나 ‘뒤에서 힐이나 해’야하는 존재이고, 또 게임 플레이와 관계 없이 ‘누가 봤다는데 존나 예쁘더라’로 소비되는 대상일 뿐이다. 원래 그렇다.

대체로 여성 게이머들은 그래서 게임 안에서 성별을 밝히는게 좋은 일로 연결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성별을 밝히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전체 MMORPG 플레이어의 3~40% 가량은 여성이다. 하지만 게임 안에서 ‘명백히 여성인 플레이어’를 30%나 보고 있나? 아닐걸. 여성이라는 걸 밝혀봐야 인기가 있으면 여왕벌이 되고, 인기가 없으면 남자 꼬시려고 게임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이게 성 역할론, 성적 대상화로 연결된다.

게임 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전사라든지 미드라이너라든지)은 당연히 남성이 하는 것이고, 여성은 뒤에서 힐이나 마법을 쓰면서 1234 누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처음 롤을 시작하는 여성이 있다고 하면 의례껏 서폿을 시키는 것이고, 처음 MMORPG를 시작하는 여성은 의례껏 사제를 하게 한다. 이런 게이머들의 편견이 게구리 논란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여자가 이렇게 잘 할리가 없다’, ‘여자인데도 잘 한다’.

대체로 ‘~에도 (불구하고)’는 척박한 조건이라든지 환경에 대해서 붙이지만, ‘여자임에도 불구하고’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여자인 것이 척박한 조건이나 환경이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여자는 원래 게임을 못 하는 존재이지만, 넌 잘한다’는 말이다. 칭찬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구나’라는 말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상대보다 못 하는 것을 납득하는 말이다. 롤의 ‘Faker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선수라서 내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게 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선수이므로 내가 너보다 못 하는 것을 납득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건 현실의 성차별에서도 같다. ‘여자는 약하다’ 하지만 훈련 받은 군인이나 선수들은 나보다 강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존재라서 인정한다. 그리고 ‘어차피 걔들도 남자 군인한테는 진다’ 같은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여성 군인’이고 ‘남성 군인 보다는 약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성차별적인 사고는 어떻게 보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문화적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여자 애한테 무슨 공부를 가르쳐’라는 부모들이 6~70년대 결혼한 내 부모들이었고, ‘여자는 결혼이나 잘 하면 되지’라는게 지금의 부모들이다. 달라진게 없다. 지금의 청년들은 이걸 그대로 물려받아 ‘여자들은 취집이 있잖냐’는 말을 흔하게 내뱉는 상황이다. 어쩌면 더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체화되어 있는 성차별적 사고를 어떻게 인지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사회는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이게 무슨 성 차별이냐’고 반발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이런 충돌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사실 이 세계는 ‘남성이 만든 것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만들어 왔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남성의 성취만 기억할 뿐, 여성의 성취에 대해서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기억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에서 여성의 이름은 사라진다.

여성은 흑인보다도 투표권을 늦게 가질 정도로 노예에 가까웠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지금도 편견들에 의해 사회의 진출을 제약당하고, 성취를 약탈당하고, 무시당하며 멸시당하고 있다. 그러지 말자. 여자가 게임을 잘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여성이 게임 안에서 편하게 게임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또한 페미니즘이다. 그리고 그건, ‘게임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남성들이 해야할 일이다.

마치 거실에 혼자 앉아 게임을 하다가, 여자친구에게 앉으라며 옆으로 살짝 비켜 앉는 것처럼.

게구리 논란과 게임계의 성 차별

조직 문화와 여성의 비율

이들이 전하는 낙관적인 메시지는 바로 여성의 참여가 전통적으로 저조한 분야에서 여성의 수가 임계점(critical mass)에 도달하면 그때부터 여성의 참여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카포위츠와 멘델버그 교수는 책에서 여성의 수가 조직에서 특정 수준 이상이 되고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면 남성들의 행동이 틀에 박힌 남성적 특징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중략)

우리는 비슷한 현상을 법조계나 의대, 혹은 학계와 같은 분야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IT와 같이 다른 경제 분야로도 확산 될 것입니다.

– 왜 경제적 남녀 격차는 좁혀질 수 밖에 없는가

결국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고 남성 위주로 구성되었던 집단에서 일정 비율을 넘기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 문제는 이 비율이 얼마인가 궁금해져서 언급된 내용의 연구자와 논문을 검색해봤다.

임계점(critical mass)은 Why Women’s Numbers Elevate Women’s Influence, and When They Don’t라는 논문에서 찾았는데,

Once women pass approximately 30% of group membership, they experience significant reduction in men’s aggression and negative stereotyping.  And where they reach an even balance with men, women’s status improves to the point of equality.

30%?

Under majority rule, critical mass theory finds vindication: women’s influence relative to their numbers rises as the group’s gender composition tilts in their favor. When women are heavily outnumbered by men, they experience a severe inequality of influence.

But what is bad news for the theory of critical mass is good news for social equality. Numbers are not the only route to equality – where numbers lag, rules and their attendant norms can step in. A consensus process neutralizes the authority deficits of women when women are few. Though they may seem deceptively neutral or arbitrary, rules thus carry profound consequences for equality.

아… 더 읽어보고 글을 마무리 할랬는데 요즘 너무 바빠서 대충 여기까지만…

조직 문화와 여성의 비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