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 이어서, 게임화(게이미피케이션, gamification)도 생각해볼 수 있을듯하다.

기본적으로 게이미피케이션에 대해 진중권은 “비게임 분야에 관한 지식 전달, 행동 및 관심 유도, 마케팅 등에 게임의 메커니즘과 사고방식 등을 접목시키는 것”이라고 했고, 내가 봐온 바로는 게임이 아닌 것을 게임화해서 행동을 재미있게 하고 지속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해외는 아마존이 있고, 한국의 경우는 게임 웹진들이 댓글, 글 쓰기 등에 점수-레벨을 표시하거나 점수를 아이콘 등을 구입하도록 하는 것을 게임화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운동 기록이나다이어트, 독서 기록 같은 것을 게임화하고 지속적으로 유도해서 사용자의 삶을 좀 더 낫게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최근 3~4년 사이에 크게 유행 중이다.

이전 글에서 고민을 ‘RPG라면’에 한정했다면, 이제 게임화의 관점으로 보자면 보상을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잘게 쪼개 주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사용자의 행동을 보상으로 유도하고 반복 행동의 성취를 만들겠다는 의도에서는 이게 충분히 필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문제는, 게임으로 다시 돌아와서, 플레이어에게 반복 행동이 필요한 부분(특히 콘텐츠 기근에 시달리는 MMO 게임에서 엔드게임)이라면 시도, 행동 자체, 성취를 각각 잘라서 보상을 줌으로써 반복 행동을 꾸준히 유도하는 의도에서는 필요할 수 있겠지만, 게임 안에서 선택과 스토리 진행 등 행위 과정의 성취를 보상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은 접근이냐 하는 것은 여전히 고민되는 부분.

어쨌든 이게 게임화와 게임 사이를 가르는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도 든다.

밝은해님의 번역 글 중

제가 좋아하지 않는 생각은, 플레이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마다 자그마한 보상을 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게임플레이가 실제로 재미있으면 뇌물을 줄 필요가 없죠! 그냥 고되기만 해지는 게임플레이가 단순히 그 고통을 완화해줄 보너스를 받으려는 욕구로 진행되는 거라면, 저는 그게 게임 디자이너로서 실패라고 봅니다.

– 옵시디언의 RPG 디자이너 조쉬 소여(Josh Sawyer), 2008년 인터뷰(원문)

게임디자인은 분명히 ‘동기부여와 보상’의 반복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보상을 제공하는 지점이 어디냐는 별로 논의된 적이 없는듯 하다. 물론 나도 소여의 주장처럼 행동 하나하나에 보상을 주는 것보다는 성취 자체에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쪽이지만, 이 보상이 어떤 형태일 것이냐는 또 다른 이야기.

말하자면 RPG에서는 경험치(xp)도 보상이고 번쩍이는 갑옷도 보상이 되는데, 예를 들어 어떤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사악한 마법사에게 들키지 않고 장농을 뒤져 마법 구슬을 훔쳐 나오는 미션이라면, 이 문을 여는 방법의 선택(자물쇠따기, 열쇠 훔치기, 문 부수기 등)에는 보상이 있을 필요가 없나.

만약 여기서 방법의 선택에 보상의 차등이 있다면 (예를 들어 자물쇠따기는 50점, 훔치기는 100점, 문 부수기는 10점) 플레이어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만약 각각의 난이도(자물쇠 따기는 숙련도가 필요하고, 훔치기는 어렵고, 문 부누기는 쉽다)를 반영한 보상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결국 보상의 문제는 플레이어에게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선택을 유도할 수도 있고, 그 선택의 결과를 학습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대화와 보상의 비중이 꽤 있는 스타워즈: 구공화국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플레이어는 자신이 생각한 목표(goal)에 따라서 대화의 지문을 선한 선택과 악한 선택으로 나눠 진행하게 된다. 대화의 각 상황에 따른 판단 보다는 결과의 보상으로 편향되게되고, 이 목표(빛의 진영, 어둠의 진영의 단계에 따라 보상이 있음)에 게임의 진행이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면 이런 ‘지향 목표에 따른 선택의 결과’가 롤플레잉 게임의 방향성으로 옳으냐는 질문에 대한 고민에서 답을 내는데 도움이 될듯 하다.

 

요즘 다이노스가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서 오랫만에 야구에 푸욱 빠졌더니, 야구 게임이 갑자기 또 당겨서 MLB 2K12를 꺼냈다. 작년 초에 사서 마이플레이어를 좀 키우다가 말았던 게임이었다.

알다시피 마이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자기 캐릭터를 하나 만들고 AA리그에서 AAA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들어가 커리어를 쌓는 방식이다. 야수를 선택하면 수비 포지션에 따라 그 수비 위치로 날아오는 공을 잡아 대처하는 방식이고, 타순에는 타격하고 그렇다. 난 삼진 잡는 맛이 꽤 좋아서 마무리 투수를 선택해서 하고 있다.

상황의 종류에 따라서 스킬들이 투수 능력, 타자 능력, 수비 능력, 주루 능력으로 나뉘어 있고, 해당 분야에서 성과를 내면 보상 점수(Skill Point)를 50~100점 정도 받아 계열 능력에 투자해 점점 성장하는 그런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투수라는게 공을 던지고 나면 1루 커버를 해야하는 등 수비도 해야하고 또 특히 MLB의 내셔널리그는 투수가 타석에서 공도 쳐야 한다. 하지만 공을 던지는 기회는 투수니까 늘상 있지만 수비라든지 타격이라든지는 기회가 그렇게 자주 오지 않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능력치도 낮은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능력 포인트(SP)를 얻기가 쉽지 않다.

결국 잘 하는 능력에는 계속 보상을 받아 성장을 시킬 수 있고, 원래 못 하는 능력에는 애초에 보상을 받을 기회도 적고 성공할 확률도 낮기 때문에 보상을 받을 수가 없다. 여기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다른 게임에서, 특히 FPS를 생각해보자, ‘잘 하는 플레이어’는 전체 플레이어의 10~20%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그러면 잘 하는 플레이어는 상대를 쏴 죽이면서 잘 했다고 계속 보상을 받고 성취감 만족감을 느끼며 플레이를 할 수 있겠지만, 못 하는 플레이어 혹은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이 성취감을 얻고 보상을 얻는 부분을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 것인가. RPG의 경우라고 하면 플레이어들은 정해진 루트를 따라감으로써 완료 보상만으로 되어 있지만, FPS나 대전형 게임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말하자면 게임 시스템 전체의 보상 체계가 상위 그룹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면 이 시스템을 어떻게 해야 전체 플레이어가 모두 만족스럽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나. 성취의 빈도가 잦은 플레이어와 드문 플레이어의 밸런스.

생각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