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ki, Kengo and Absolver

아주 옛날에 겐키라는 회사에서 만든 검호(劍豪)라는 게임이 있었다. 풋내기 무사에서 시작해서 동네 깡패 처리하는 잡일을 하다가 각 류파를 돌아다니면서 기술을 배우고, 폭포를 맞으며 수련을 하거나 촛불, 볏단을 베는 등 연습을 해서 검의 달인(검호)가 되는 그런 게임이다. 시리즈는 3편까지 나오다가는 더 이상 속편이 없다. (겐키는 이제 이런 마이너한 게임을 만들지 않고 수도고배틀에만 올인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게임에서 기억나는 것이 꽤 많은데, 대표적으로는 각 류파에서 수집한 동작들을 편집해서 자신만의 류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갈고 닦은 기술로 각 류파의 도장을 돌아다니면서 깨고, 나중에는 어전 시합도 하고 뭐 그런 식이었는데, 이게 이후에 풍운 신선조라는 게임으로 계승되던가 하더니 이후 비슷한 기능을 보지 못 했다.

오늘 올 8월에 나온다는 ‘Absolver’라는 게임의 무술 편집 기능을 보니 검호 생각이 났다. 이런 편집 기능으로 무술(martial arts) 기반 RPG를 만든다고 하면 아무래도 검호와 비슷한 스타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오히려 기대가 된다.

다만 문제라면, 출시 예정일인 8월 29일 바로 전 주 22일에 미들어스 속편(Middle-earth: Shadow of War)이 나온다는게 이 게임 흥행의 최대 문제겠다.

그런데 사실, 이런 식의 무술 게임이라고 하면 이젠 엔씨의 블레이드&소울이 워낙 훌륭하게 나와서, 막기~회피~흘리기~쳐내기 같은 동작이나 타이밍은 거기서 참고하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흘리기 동작(영상에는 absorb라고 나옴)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네.

  • Absolver는 면제하다, 사면하다(absolve)에서 나온 ‘사면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에 맞는 우리말이 뭐가 있을까. ‘면제자’, ‘사면자’하면 면제된 사람, 사면 사람이라는 뜻이라 좀 애매하다.
Genki, Kengo and Absolver

미들어스와 위쳐3의 전투

며칠 전에 술자리에서 문득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미들어스: 모르도르의 그림자의 적과 위쳐3의 적이 가지는 인공지능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 두 게임의 인공지능 철학에 대한 부분이다.

모르도르의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개체(적)들 전체를 총괄하는 상위 인공지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플레이어를 둘러 싼 10마리의 오크들은 모두가 개별적인 공격 기회를 갖는 것이 아니라 한두 마리가 적극적인 공격 태세를 취하는 동안 나머지 오크들은 플레이어와 일정 거리를 두고 둘러싸고만 있게 하고 공격권을 일부 오크에게만 분배해주는 것이다. 이는 10마리 전체를 총괄해서 공격 기회를 나누는 상위 인공지능이 있거나 혹은 오크들 자체에게 공격 조건 자체를 매우 낮은 빈도로 설정해 둔 것일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플레이어가 전투를 매우 단조롭게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흐름 외에 장거리 투창 공격을 하는 오크라든지, 동급의 오크 중에서도 훨씬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는 오크를 만들어 두는 식으로 단조로운 전투를 깨는 방식을 취했다.

게임적으로 볼 때, 플레이어에게 이는 굉장히 훌륭한 경험을 제공한다. 수십 마리 오크에게 둘러싸였다고 하더라도 이들 중 공격하는 소수의 오크를 △로 반격하면서 다른 오크들을 차분히 썰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마치 리듬 게임의 노트처럼 차분하게 썰다가 간간히 등장하는 △로 반격을 하고, 위험한 순간에 굴러서 회피를 하면 된다. 즉 반복되는 패턴(플레이어의 공격 의지)가 있고 거기에 간간히 비정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다른 노트를 눌러주면 되는 구조이다.

반면 위쳐3의 전투는 모든 전투 참여 개체의 인공지능이 개별적으로 돌아간다. 10마리의 구울(ghoul)이 전투에 참여한다고 하면, 구울들은 각각의 공격 판단과 공격 타이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전장 전체의 상황을 신경써야 한다. 혹여 한두 마리가 카메라 밖으로 도망을 가서 공격 타이밍을 가지고 들어온다고 하면 이는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런 설계에서 여러가지 공격 타입을 가진 인간 적은 매우 위협적이다. 근접 거리에서 플레이어의 공격에 방어 동작을 할 뿐 아니라, 특히 방패가 있는 적은 1:1에서도 공격 타이밍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주변 다른 개체들의 공격 상황까지 신경쓰다 보면 전투 진행이 매우 어려워진다. 게다가 여기에 장거리에 활을 든 적이 몇 추가가 되면 근거리의 적들을 신경쓰느라 날아오는 화살에 농간 당하는 일도 잦게 발생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쳐3의 전투가 플레이어에게 아주 어렵지는 않은 것은, 방어 키(L2)가 거의 완벽하게 인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방어 키를 누르고 있는 상태를 항상 유지하고 공격 키(☐)를 가끔 눌러주는 것 만으로도 할만한 전투가 되고, 게임의 설정상 초인인 위쳐는 사인(sign)이라고 마법 공격을 활용하면 훨씬 쉬운 전투를 끌고 갈 수 있다.

  • 여담이지만 이 방어 상태에서 십자패드를 좌우로 움직여 사인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방어의 유지는 위쳐3의 전투에서 아주 중요한 설계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인간 플레이어와 인공지능 개체 사이의 능력을 놓고 봤을 때, 인간의 행동이 (게임이 설정한) 제한적인 능력(기능)을 가지고 있고 정보 수집과 판단에서 인공지능보다 못하다는 면에서 보면, 위쳐3의 주인공은 인간 적보다 훨씬 강하고 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구도가 이를 보정해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위쳐3의 인공지능은 기능의 제약과 정보 수집, 판단 모두에 제한적이고 부족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면에서 게임의 인공지능이 가져야할 기본 자세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전투 방식의 차이가 있고 게임 경험에서 어떻게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는, 게임이 무엇을 제공하려고 하느냐 하는 의도의 부분에서 갈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르도르의 전투는 플레이어에게 수십 수백 마리 오크들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이를 난도질하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였던 것이고, 위쳐3의 전투는 플레이어에게 각각의 전투가 충분히 치명적이도록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플레이어에게 다수와의 전투를 가능하면 피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지게 하고, 전투보다는 드라마에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원한게 아닌가 싶다.

미들어스와 위쳐3의 전투

미들어스: 모르도르의 그림자

screenshot

플레이스테이션4를 샀던 목적 중의 하나가 이 게임, <미들어스: 모르도르의 그림자(Middle-earth: Shadow of Mordor)>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예약 구매하고 기다리다 드디어 이번 주말에 엔딩을 봤다.

이 게임을 기대했던 이유는 배트맨 시리즈에서 만들어진 전투 방식으로 일대다 칼싸움을 구현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네메시스 시스템(nemesis system)이라는게 아주 인상적이었기 때문인데, 기대 만큼 양쪽 모두 흡족했다. 배트맨 시리즈처럼 전투하고 어새신크리드처럼 잠입 암살하는 느낌이 대단히 아름다운 게임이다.

베고 막으면서 모은 콤보로 마무리(combat finish: execution)를 하는 장면의 호쾌함은 정말 아름다운 수준. 그리고 전투 중 우루크(Uruks)에게 당해 마지막 순간(last chance)에 기사회생하는 느낌도 훌륭하다. 이건 특히나 긴박감이 넘치는 상황인데다가 실패하면 우루크가 더 강해진다는 부담이 있어서 플레이어게 ‘실패의 두려움’을 만드는데도 뛰어나다.

‘마지막 순간’에 실패하면, 나를 죽인 그 우루크가 제들의 계급 사회에서 승진을 하면서 비웃는데 이 장면이 플레이어에게 분노와 짜증과 동기부여로 아주 좋은 장치였다. 게다가 같은 보스에게 계속 죽으면 ‘아까 죽였는데 또 왔냐! 또 죽여주지!’하는 식의 대사들을 하는 부분도 설정에 몰입시킨다.

우루크들이 가진 약점이나 강점 같은 특성들, 현재 위치 같은 것을 돌아다니면서 정보(intel)를 수집해 알아내고 보스를 공략할 전략을 짜게 만들고 이 과정들이 반복적이고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전투에 아무리 익숙해지고 능숙해져도 특성을 모르는 상태를 만났는데 전투 달인(combat master) 같은 속성이 붙어 있으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메인 미션 후반부가 되면 낙인(brand) 기술을 익히면서부터 게임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하락한다. 게다가 마무리 기술로 전투 낙인을 하기 시작하면 우루크 숫자가 별로 부담이 안 되기 시작하는게 좀 흠이고, 오픈월드라고 하기엔 맵이 좀 좁다는 것도 안타까운 부분. 게다가 맵을 두 개로 쪼개놔서 특히나 더 좁게 느껴진다.

우루크들이 제들끼리 계급 안에서 서로 분쟁을 하면서 계급 싸움을 하는데, 이게 실시간으로 벌어지는게 아니라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 변하거나 플레이어가 죽었을 때 결과가 반영된다는 부분은 좀 아쉽다. 이게 시간이 정해져 있고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선택 강제 요소로 작용하는 쪽이 나았을듯 한데.

어쨌거나 하던 데스티니를 제치고 하기에 좋았다. 더 하고 싶은데 뭔가 더 하기에는 아쉬운게 있고 묘한 그런 느낌이 있다.

  • 우루크가 군장(warchief)이 되면 등장 씬에서 군장의 이름을 연호하는 BGM이 나오는데, 각 이름마다 있는게 굉장히 신기하다. 이름 DB를 상당히 많이 만들어 둔 것으로 보이는데 각 이름들을 다 만들어 둔 것인지, 아니면 어떤 꼼수(TTS 같은?)가 있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 처음에는 플레이어를 ‘Ranger!’라고 부르다가 후반부에는 ‘Gravewalker’라고 부르는게 묘하게 모욕적이다.
  • PS4의 패드에 스피커가 있는 걸 처음 알았는데, 이걸 정말 잘 쓰고 있다. 깜짝 놀랐네.
미들어스: 모르도르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