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ver

보통 격투 게임은 플레이어의 숙련을 기반으로 한다. 모든 플레이어는 똑같은 캐릭터를 가지고 플레이를 하고,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지만, 캐릭터의 기술(move)을 변경하거나 자신 만의 류파(style)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일반적인 격투 게임은 커맨드의 입력 타이밍, 반응 속도, 기술 이해 등을 기반으로 하는 숙련을 싸우는 게임이 된다. 일반적인 경우, 플레이 시간이 누적되면 플레이어는 게임 메카닉에 익숙해지고 더 잘하게 된다.

Screen-Shot-2017-06-16-at-3.03.34-PM-e1497650714657
Absolver의 무술 편집(출처: http://thekoalition.com)

Absolver는 이 전의 글에서 잠깐 언급을 했던 것처럼, 검호(劍豪)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게임으로 이런 격투 게임의 ‘성장’을 기술 수집으로 표현한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맵을 돌아다니면서 기술들을 직접 맞으며 새로운 동작(move)을 익히고, 이걸 다른 동작들과 엮어서 자신만의 류파(style)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편집해 만든 자신의 동작들로 다른 플레이어와 대전 결투를 하거나, 맵을 공유하는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할 수 있다.

스크린샷 2017-08-31 오후 2.32.29.png
검호의 무술 편집(출처: 유튜브)

말하자면, 검호가 그랬던 것처럼, 플레이어는 상당한 반복을 통해서 동작을 수집하며 자신의 캐릭터를 키워야 한다. 물론 검호처럼 폭포수를 맞으며 수련을 한다거나 촛불, 볏단을 벤다거나 하는 개인 훈련이 없이, 쌩으로 맵을 돌아다니면서 두서넛 떼로 나오는 ‘NPC들’과 싸우며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게 이 방식에서의 숙련과 성장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개의 컨셉 충돌이 발생한다. 기본적으로 이런 형태의 전투 설계는 일대일의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 상대의 동작을 막거나 받아치거나, 타이밍을 뺏거나 하는 식의 전투이기 때문에, 일대다의 전투가 되면 이 일대일의 전투에서 빛을 발하는 설계가 퇴색한다. 이건 포아너의 전투도 사실 비슷하고, 마비노기의 전투도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고 본다.

아마도 이건 일대일로만 연속될 경우의 지루함이나 난이도 조절의 어려움 때문에 이렇게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반복을 통해서 상대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불필요한 난전이나 (나를 해당 기술로 때리면서 가르쳐야 하는) 타겟이 죽어버려 짜증이 발생하는 구조로 흘러가게 된다.

또 하나는, 싱글플레이가 이렇게 기술 수집과 편집, 반복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이 싱글플레이 공간을 2~6인 멀티플레이어가 공유하는 방식으로 했다는 것이다. (서버 연결이 없으면 플레이를 할 수 없다.) 맵이 꽤 넓고, 플레이어들이 각자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필요한 몹을 붙들고 반복하는 작업만 하면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되니 한 쪽에서 몹 하나 붙들고 기술을 배우는 걸 다른 플레이어가 방해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이렇게 ‘기술 수집(시도+좌절) → 성장(도전) → 다양한 기술(보상)’로 이어지는 성장 구조와 보상 구조가 여기저기서 자꾸 충돌하기는 하는데, 어쨌거나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게임은 전체적으로 꽤 잘 만들어져 있다. 동작을 편집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고, 이걸 가지고 다른 플레이어와 대전을 하는 것도 꽤 인상적이다.

Absolver는 검호에서 차용한 기술 수집과 편집이라는 핵심 컨셉을 가지고 전체 게임을 끌고가는 게임인 만큼, 이게 매우 충실하게 되어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해서 $30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과거 검호를 플레이하면서 재밌어 했던 요소를 즐기는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동접이 1만 8천을 넘었다고 하니, 인디 게임으로써는 충분히 상업적 성공을 확보한 상황으로 보인다. 동접이 대략 2만 정도라고 보면 콘솔의 판매량은 20만~30만 정도까지 추정할 수 있을 것이고, $30 중 한 30~50%를 소니와 나눈다면, 대략 200만~300만불 매출은 나왔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이후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개선하느냐 그걸 좀 봐야할 것 같다. 혹은 이 성공으로 속편의 개발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고.

개인적으로, 포아너가 이런 식이었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주먹질로만 되어 있는 것이 칼질에 비해서는 매력이 좀 떨어지기도 하고.

마비노기 듀얼

TCG(Trading Card Game)류의 카드 게임은 기본 플랫폼만 만들어 두면 카드를 추가/변화 하면서 다양한 기술적 실험/도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올드한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들이 상당히 좋아하는 일종의 ‘로망’ 같은 게임 방식이다. 문제는 디자이너들이 일일이 카드마다 각각 발동 조건이나 기능 등등 프로그래밍을 해야한다는 것, 텍스트 작업이 상당히 까다롭고 작업량도 상당하다는 것이 대표적인 문제랄까.

간단한 역사

처음 TCG는 코팅 종이로 된 수집 카드 게임(CCG, Collectable Card Game)에서 마케팅 목적으로 만든 용어이다. CCG의 초기 형태인 야구 선투 카드나 농구 선수 카드도 서로 교환하고 경매도 하고 그랬기 때문에 트레이드라는 것이 없는게 아니었으니까. 이후 매직이 나온 이후로는 대체로 TCG나 CCG나 같은 개념이라고 사용하고 있다.

과거에 TCG가 위자드(Wizard of the Coast, WotC)의 등록상표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확인해보니 (현재) 등록상표인 것은 아닌 걸로 보이고, 매직(Magic: The Gathering)의 게임 방식에만 특허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시대의 TCG

매직도 그렇지만 TCG를 컴퓨터로 옮기려는 시도도 상당히 오래되었다. 격투 느낌으로 만들기도 했고, 행성을 공략하고 방어해 나가는 전략 방식으로 나온 것도 있었고, 나도 모바일 초창기에는 칼싸움을 카드 게임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 카드게임의 디지털화(digitalize)에서 문제는 생각보다 화면이 매우 좁다는 것이고, 덱 구성을 하는 과정이 복잡하다는 것, 뽑기(draw)-사용하기(play)-무덤(graveyard)의 개념과 매직 특유의 끼어들기(interupt, intercept), 턴(turn)과 페이즈(phase)의 개념 등이 매우 난해하다는 것 등이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매직의 온라인 버전은 상대가 카드를 쓰거나 공격할 때마다 ‘끼어들래?’라고 묻는 절차가 있기도 하는 등 시행착오가 매우 많았다.

오프라인에서 꽤 활발한 TCG가 온라인(디지털)에서는 비인기 장르이기도 했고, 결국에는 쿨드셉트(カルドセプト, Culdcept)처럼 카드의 개념만 가져와서 사용하거나 최근의 모바일 게임들이 가챠를 응용한 카드 게임 방식으로 변형되는 방식처럼만 활용되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와중에 작년 블리자드에서 하스스톤(Hearthstone)이 나오면서 ‘대중적 TCG’라는 시대가 열렸고, 변형된 카드 형태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들이 TCG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덱(deck)과 뽑기(draw)의 개념

TCG가 어렵고 플레이어들이 쉽게 좌절하게 되는 이유는 덱을 구성하는 부분과 카드의 조합 중 일부만 손에 들고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플레이어는 수백 장의 카드 중에서 20~40장 정도로 되는 덱을 구성해야 하고, 이 덱을 가지고 들어가서 4~8장만 손에 들고 게임을 할 수 있다. 매 턴 새로운 카드를 뽑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전체 게임에서 20장 정도만 사용하기 때문에, 원하는 카드를 뽑지 못하고 지는 경우가 상당히 잦다.

이런 문제는 덱 구성과 사용(play) 단계에서는 전략성이 매우 높지만, 뽑기 단계를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졌을 때, ‘내가 부족하다’고 인정하지 않게 되는 포인트가 되고 또 반대로 ‘그러니까 다시 한 번 하면 이길 수 있다(이 카드만 나오면)’고 믿게 되어 반복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게임을 전혀 전략적이지 않게 만드는 요소였다.

  • 물론 이건 아날로그 시대의 개념을 디지털화 하지 못하고 유지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그리고 이 뽑기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처음 뽑은 후에 핸드 일부 교체(다시 뽑기)할 수 있게 하거나 전체를 다시 뽑게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이는 게임 디자인에서 뽑기라는 개념을 유지한 채로는 나올 수 있는 한계선이었기 때문이다.

마비노기 듀얼

데브캣은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비노기 듀얼(이하 듀얼)에서는 뽑기 단계를 아예 제거해버고, 덱을 줄여 게임을 순수하게 전략으로만 구성하게 만들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카드들에 명확한 전략적 상황과 목표를 설정하고 구성할 수 있게 되고, 턴의 순서에 따라서 사용할 카드들을 미리 셋팅할 수 있다.

이전의 카드 게임 중에서 뽑기가 없는 게임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어반 라이벌즈(Urban Rivals)는 넉 장의 카드만 들고 들어가서 서로 코인을 전략적으로 쓰는 방식으로 게임에서 랜덤 자체를 제거했다.

문제는 랜덤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완전히 버릴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아날로그와 다르게 디지털화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예로는 판타지 마스터즈의 코인 방식에서 엿볼 수 있는데, (조금 과했다는 문제가 있지만) 훌륭한 활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듀얼의 덱 구성

듀얼은 이 랜덤을 자원에 밀어 넣었다.

단일 컬러의 덱에서는 자원에 랜덤이 전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의 ‘의도대로 카드의 사용 순서와 조건을 (마치 프로그램처럼) 짤 수 있다’. 첫 턴에는 어떤 카드를 사용하고, 둘째 턴에는 어떤 카드를 사용하고, 셋째 턴은 넘기고 하는 식으로 시나리오를 짜고 상대의 카드 사용에 따라서 전략을 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카드 게임이 그렇듯이, 컬러는 카드들의 어떤 일관적인 특성이나 테마가 있게 마련이고, 단일 컬러 덱은 매우 전략적이지만 이런 적응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최대 3개의 컬러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컬러가 여러 개가 되면 자원이 랜덤하게 들어옴으로써 ‘적응력이 좋고 변화가 다양하지만 상황 변수가 큰 덱’ 구성이 된다는 단점을 부여해준 것이다. 브라보.

물론 이런 덱 구성도 앞에 이야기 한 것처럼, ‘뽑기를 제거한 것’이 기존 관념을 파괴하는 파격적 수준의 놀라운 것은 아니며, 게다가 컬러의 상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면에서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카드 게임이라는 특성상 이는 다음 시즌의 카드들이 나오면서 보강이 될 것으로 보이므로 큰 문제는 아닐듯 하다.

아레나

요즘 모바일 게임의 가장 큰 도전 중의 하나는 수명(lifetime)이다. 대체로 아무리 잘 나가는 게임이라고 해도 70일 전후로 해서 무너지기 시작하고, 평범한 게임들은 일주일을 넘기기도 쉽지 않다. 다운로드 순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신규 유입의 개념이고 결국에는 매출 순위를 지켜내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서 가장 핵심은 유저의 잔존율(retention rate), 즉 게임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실행하는 유저의 숫자가 된다.

아레나는 자신이 만든 덱을 등록해놓고 다른 등록해 놓은 플레이어의 덱과 대전을 하는 방식이다. 등록을 해 두면 한 시즌(며칠)간 승률과 랭킹이 산정되는데, 이건 별로 특이하지 않은 개념이다.

그러나 이렇게 덱을 등록해 둔 유저는 자신의 성적을 꾸준히 노티(notification)받게 되고, 시즌이 끝나면 성적을 리뷰함으로써 재방문을 계속 자극하는 요소로 매우 훌륭하게 동작할 것으로 보인다. 좋은 디자인이다.

아레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덱이 ‘묶인다’는 부분이다. 아레나에 덱을 넣은 플레이어는 그 덱을 플레이어간 대전이나 다른 아레나에 등록할 수가 없다. 결국 카드를 다른 곳에서 사용하려면 같은 카드를 더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덱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이는 카드 구매로 연결이 되고, 플레이어가 뉴비 아레나에서 열심히 달렸다면 이를 다시 베테랑 아레나로 보내서 더 많은 행동력과 더 많은 덱을 사용하게 만든다. 게임에 열정적일수록 더 많은 돈을 쓰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욕심을 내면 낼수록 지불 자극은 더 강해진다. 역시 좋은 디자인이다.

트레이드

트레이드는 데브캣이 이 ‘디지털 TCG’를 오프라인 커뮤니티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보이게 하는 요소다. 듀얼은 다른 플레이어와 카드를 교환하려면 GPS상으로 근처에서 기기(폰이나 패드)를 마주 놓으라고 권하고 있다. 말하자면 20년 전에 카페에 모여 매직을 하는 것처럼, 모여서 게임을 하고 카드를 교환하라는 뜻인데.

이 부분은 내가 명백한 착오, 컨셉의 충돌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20년 전 아날로그 시대의 관점으로 디지털 TCG를 플레이하라고 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넥슨과 데브캣은 공격적인 이벤트로 오프라인에 트레이드 거점을 만들거나 파티를 주최해서 이를 촉진할 수도 있고, 이게 게임 이용자들의 충성도를 ‘확인’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지만, 게이머는 시간이 없다.

게이머들은 모바일 기기가 콘솔의 대체품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실제로 진득허니 붙잡고 노상 게임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이제 아니다. 트레이드를 위해서 플레이어가 약속을 잡고 만나게 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며, 지인들 커뮤니티 사이에 카드를 교환하는 것은 TCG의 T가 가지는 목적성에 어긋나는 발상이다. ‘카드가 있는 사람’과 만날 것이냐, ‘만난 사람의 카드’를 교환할 것이냐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총평

듀얼이 시나리오를 채용한 부분은 일종의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마비노기 특유의 뺑뺑이(노가다)와 유치한 대사 구성, 소위 ‘시나리오를 즐기는 유저들’의 행동력을 까먹으려는 부분 등은 특히 데브캣의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다른 게임 요소들과 연관되는 부분도 매우 적고, 디자인의 맥락에서도 동떨어져 있어 뭐라 말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나름의 10년 이상 묵은 설정들이 카드들의 배경을 풍성하게 해주는 효과는 휼륭하겠다만.

전반적으로, 듀얼은 데브캣의 고집과 디자인 관록, 철학을 집대성한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고민에서 나온 변화와 파격은 (이미) 좋은 응답으로 나타나고 있고, 다른 TCG를 만들려는 디자이너들에게도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 분명하다만,

매출 요인에서는 생각보다 그렇게 공격적이지 않다.

뭐, 어쩌면 이것이 결국, 어떤 게이머들에게는 이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독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