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에서 두 개의 흥미로운 기사를 냈다.

어뷰징 낚시기사 써봤더니 15분만에 10만원라는 기사는 언론사들이 품질 낮은 낚시 기사를 왜 쓸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설명인 기사이다. 요약하자면 그게 돈이 된다.

  • [2017년 4월 추가] Amanda Warner라는 사람이 Fake it To Make it이라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을 소재로 한 시리어스 게임을 만들었다.

또 다른 기사인, 힘들고 위험한 일은 ‘물량팀’에… 얼마나 죽는지도 몰라는 금속노조에서 발표한 조선 업계의 ‘물량팀’에 대한 기사다. 법적인 보호 장치(산재 등 사대보험) 밖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급히 처리해야 하는 물량을 쳐내는’ 긴급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는 산재를 신청하지 못했다. 그는 “산재처리를 못하게 했다. 회사 총무가 차를 갖고 와 병원 직접 데려다줬다”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일하다 다친 물량팀 노동자 10명 중 9명(94.3%)가 산재 처리를 받지 못했다. 또 다른 노동자도 “죽지 않는 이상은 공상처리라고 봐야한다”며 “자재차로 몰래 싣고 나간다. 걸리면 난리가 나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산재를 신청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블랙리스트에 오를까봐”(59.5%) “해고될까봐”(31.0%)라고 답했다. 3개월 혹은 6개월로 계약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이 건강권과 고용권을 두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이미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힘든 40대에서 50대라는 점도 이런 상황을 강제하는 요소 중 하나다.

물량팀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덕을 보는 건 결국 원청이다. 물량팀은 힘들고 위험한 일을, 정해진 안전 수칙까지 무시해가며, 빠른 시간 내에 해내기 때문이다. 원청이 특히 덕을 보는 건 산재다. 원청은 재해율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데 물량팀 노동자의 산재는 대부분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조선소 내에서 노동자가 다쳐도 없는 일이 된다.

가령 지난해 현대중공업 재해율(노동자 100명 중 재해자 수)는 0.66으로 조선업 평균 재해율(0.69)보다 낮았다. 덕분에 현대중은 지난 해 1월~8월 산재보험료를 101억여원 감액 받았다. 그러나 하청업체의 재해율까지 포함하면 현대중의 재해율은 0.95까지 높아진다. 연구팀은 “물량팀의 산재까지 통계로 잡힌다면 지금의 재해율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 지적했다.

시스템 안에서 어떤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생명이 ‘어떤 확률(위에서는 약 1%?)’에 의해서 잃을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서 알면서도 ‘나는 아니겠지’로 버틸 수 밖에 없는 상황. 그 확률에 걸리면 난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고 죽는 걸로 끝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그런 일자리.

노동자의 날

노동절에 어울리는 기사 하나.

우선 왕과 신하, 채권자와 채무자, 공무원과 민간인, 교사와 학생 등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신분관계 내지 갑을관계의 주체의 명칭은 그 실질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가치중립적이고 대등한 곳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정상이다. 노동자(勞動者·laborer)는 일을 통해 상품이나 용역을 생산하는 사람으로 노동력을 제공받는 쪽을 사용자라고 하는 점에서 대등한 개념으로 지칭된다. ‘근로자(勤勞者·worker)’는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의 대가로 받는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용자에게 종속된 개념의 근면한 노동자를 이른다.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인 사용자의 갑질을 정당화해주는 ‘근로자’를 공식 용어화함으로써 자신한테 필요한 ‘모범 근로자’ 양성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종속적인 의미를 지닌 근로자라는 용어는 사용자에게 갑질을 유발하는 격이다. 진정 사용자는 기계와 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근로자만 진정한 노동자로 취급하는가. 그래도 사용자와 근로자를 고수하고 싶으면 갑측도 마음씨 좋은 사용자라는 뜻의 호업주(好業主)로 바꿔, ‘호업주와 근로자’로 불러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근로’라는 용어 자체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을 강제노역에 동원하면서 조직한 ‘근로정신대’에서 유래했다. ‘근로자’라는 한자어는 중국과 대만은 물론, 일본 노동법에서도 삭제된 지 오래된 일제강점기의 유물이다(단, 일본 헌법 제28조에만 잔류하고 있을 뿐이다. 강희원 <노동헌법> 참조).

–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로잡아야, 경향신문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라는 단어를 불편해 한다. 사용자의 논리가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날

게임업계에서 적대적 M&A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적대적 M&A는 회사의 경영을 주도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라, 이걸 ‘적대적’이라고 말하는게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걸 뺏기는 거니까 적대적인게 맞지.

그런데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경영자가 누구든 그게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 적대적 M&A를 해서 회사를 쪼개 팔기 위해서 감원과 투자 축소 등을 하는 ‘사냥꾼’들만 아니라면, 노동자에게는 이 경영자나 저 경영자나 별로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중세 판타지 세계를 생각한다면) 영지의 영주가 누가 되든 농노에게는 별로 영향이 없을 수 있다는 거다.

게임업계에서 이런 ‘적대적’ M&A는 좀 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잘 아는 경영자가 온다면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할만 하니까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영 능력이 나빴거나 지분 관리를 제대로 못 했거나 복합적이겠다만, 어쨌거나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 건덕지가 생길 수 있다. 기존 경영자가 게임에 대해서 몰이해를 했을 경우는 개선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기존 경영자가 나름 합리적이었다면 (힘들겠고 슬프겠지만) 설득을 해볼 여지는 있다.

게임을 잘 모르는 경영자라면, 게임 내용을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할 능력이 못 된다. 어차피 개발은 개발 라인에서 하는 것이고, 그 주도권은 라인에 있다. 라인에서 이게 아니라는데 우기는 경영자라면, 그냥 ‘월급이라도 잘 받다가 망하면 옮기자’ 자세로 설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일종의 ‘회사의 성장이 내 성장’이라는 관념은 사실 말이 안 되는 거다. 게임이 성공한다고 해도 개발자가 받는 인센티브는 대체로 팀 전체가 30% 이하이고 (30%? 이것도 어처구니 없게 많은 수준이다) 직급별로 뚝뚝 잘라먹는 걸 생각하면, 말단의 작업자는 전체 매출의 0.001%나 먹을까 말까 하는게 현실이다. 100억 매출이 나도 말단 개발자가 1억을 가져갈 거라고 믿나? 천만 원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인 정도인데.

요는 이렇다, 회사가 너의 생존과 생계를 보장해주는 일은 없다. 개발자는 자기 스스로 ‘월급이 잘 나올 때만’ 회사에 굽신거리는 자세가 가장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업계에서 적대적 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