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시장의 성장과 규제

5월 30일 BBC 보도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이 34개 게임을 금지했다고 한다.

주요 게임은 ‘GTA: 산 안드레아스’, ‘매스 이펙트’, ‘데드 스페이스’, ‘마피아2’, ‘콜 오브 듀티: 블랙옵스’, ‘케슬베니아’(악마성), ‘어쌔신크리드: 브라더후드’, ‘폴아웃: 뉴 베가스’, ‘모탈컴뱃X’, ‘레프트 4 데드1-2-3’, ‘둠3-4’, ‘히트맨’, ‘바이오하자드4’, ‘사일런트힐’, ‘언틸 던’, ‘심즈3-4’ 등이다.

우즈베키스탄, ‘GTA 포함 34개 게임’ 수입 금지 조치, 중앙일보

금지의 이유로 ‘폭력과 섹스를 조장하고, 안보와 사회-정치적 안정을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느 나라에서나 한 번 쯤은 시도했거나 하고 있는 그런 대체로 비슷한 이유다. 게임이 기존 질서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되고 게임 시장이 급격하게 퍼지면서, 사회의 ‘어른들’은 이를 일종의 위협으로 받아들여 폭력적인 게임을 금지한다거나 게임으로 인해서 아이들의 정서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혹은 학업에 지장이 생기거나 중독을 초래한다는 등의 이유로 일부 혹은 전체 게임을 금지하려는 시도들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게임 내용을 검열하기도 했고, 출시를 제한하기도 했으며, 심야 플레이를 제한하거나, 중독 물질로 지정하려고 하기도 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부들은 게임이 이런 우즈벡의 예처럼, 사회를 위협한다느니 폭력을 조장한다느니 풍기문란하다느니 등의 이유로 게임을 금지해 왔다.

2015년 호주는 220개 게임을 금지한 적이 있다. 그리스는 2002년 카지노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 카지노기계와 오락 및 내기게임을 금지했으며, 추가로 모든 오락실 등을 포함해 돈을 넣어 게임을 하는 기계들을 전부 금지시켰다. 이후, 모든 오락실 및 전자게임방들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으며, 대신 볼링장, 당구장 및 인터넷카페들이 오픈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위헌으로 판정되어 해지되었다. 브라질 정부도 폭력성 게임 금지 처분을 한 적이 있다. 유명한, 태국(2003년)과 중국(2007년), 베트남(2010년)의 게임 셧다운 사례도 있다.

이런 규제 사례들은 한결같이 기성사회의 꼰대들이 아무런 과학적 검증도 없이, ‘위험해 보인다’는 이유로 금지한 것이다. 이 맥락은 TV가 급격하게 퍼질 때 TV를 금지했던 것과, 헤비메탈이 부흥하던 시절에 헤비메탈을 금지했던 것과, 비키니 수영복, 포르노 등에 대한 규제들과 완전히 같은 맥락이다.

이런 극단적 조치들은 대체로 종교가 그 밑바닥에 있다. 사회의 보수성을 빨아 먹고 사는 이 2천 년 전의 세계관은 현대의 미디어가 그들의 세계관을 침범하는 것에 대해 실질적인 공포나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예의 우즈벡은 90%가 수니파 무슬림인 사실상 종교 국가이고, 우즈벡의 게임 시장이 빠르게 크고 있는 것이 이 규제의 배경이고 핵심이다. 한국은 종교 국가가 아니라 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저 규제들을 추진한 단체들은 전부 직간접으로 개신교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지만, 아직 저개발 국가들에서는 충분하지 않다. 이들 국가에서 IT가 보급되고 그 선두에서 확산되는 게임이 퍼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건 개발 과정에서 한국이 그랬고, 중국이 그랬고, 태국, 베트남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이번에 우즈벡에서 보이는 것처럼, 규제를 겪는 것이 일종의 통과 의례가 되고 있는 것 같다. IT가 확산되기 시작하면 당연히 한 번 쯤 사회에서 이런 신매체(뉴미디어)에 대한 공포로 규제를 한 번 겪고, 상식 수준에서 규제를 타파하고 나야 개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모양새다.

그래서 간단한 가정을 해보면, IT 기기의 보급률과 게임 시장의 성장이 규제와 상관 관계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하프라이프와 등급 분류의 추억

2000년에, 한창 한국에서 카운터스트라이크(Counter Strike)가 유행하던 시절, 한빛소프트에서 하프라이프(Half-Life)를 재출시했더랬다. 원본 하프라이프는 국내에서 워낙 안 팔려서 재고가 잔뜩이었는데, 갑자기 카운터스트라이크 붐이 몰아치면서 판매량이 급증하자, 새로 패키징을 해서 출시를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등급분류에 따르면 게임에서 ‘피’가 나오면 18세 분류를 받게 되는데, 당시 하프라이프(카운터스트라이크)를 즐기는 플레이어들 중 상당수가 19세 이하였기도 하고, 이전 스타크래프트의 출시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PC방에서 게임을 할 수 있게 하려면 18세 분류를 받아서는 안 되었다. 해서 나온 묘안이 먼저 출시한 독일 버전을 약간 개조해서 15세 버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독일은 당시 한국과 매우 비슷한 등급 분류 기준을 가지고 있었고, 후반부 연구소를 진압하러 등장하는 적을 군인이 아니라 로봇으로 바꾸고 총에 맞으면 볼트가 튕겨나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었는데, 한국 버전 15세에서는 아마 이것을 사람은 유지하고 볼트가 튕겨나오는 것으로 절충을 했던가 그랬다. (잘 기억은 안 난다. 우유가 튀게 했던가…?)

오늘, 그 하프라이프의 독일 버전이 19년 만에 피가 튈 수 있게, 규제가 풀렸다고 한다.

요즘 한국 게임에서 등급 분류에 이 기준이 좀 약해졌는지 아니면 내가 더 이상 미성년자 등급을 신경쓸 필요가 없어서 못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19년 만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17년 전 유통사에서 일 했던 기억이다.

게임 산업과 규제

대통령 선거 시즌이 되다 보니, 게임 업계인들에게는 (이미 망해버린) 산업을 진흥하는 방법이 이것이다 저것이다 말도 많고, 또 이 기회를 틈타 유력한 당선권에 있는 사람 눈에 들어 차기 정부에서 한 자리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토론회를 주최하고 참석하고 그러는 것도 보이고 그런 상황이다. 그런데 게임 산업의 진흥을 원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하나 같이 두 가지만 이야기하고 있다. 정부 지원과 규제 철폐.

특히나 정부 지원의 경우는 각 지자체들이나 기관들이 연간 예산을 얼마 책정해서 지원자들의 순위를 매기고, 거기에 일시적으로 수천만 원에서 1억 원 내외 개발 지원금을 주는 것인데, 이 방법은 지난 십수 년간 써왔던 것이지만 사실 이게 정말 진흥이 되는 것인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1년 내에 성과(매출이든 출시이든)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이 지원금의 사용처가 (부정 이용을 막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건비나 기자재 구입 등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각론이니 넘어가고.

또 규제 철폐라고 하는 것을 보면, 크게는 셧다운제와 결제 한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일단 셧다운제가 온라인 게임 산업에는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 확실하지만 (실제로 매출이나 접속량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 이미 많은 온라인 게임에서 검증된바 있다) 모바일 게임 개발이 한국내 게임 회사의 주력 품목 90% 쯤 되는 상황에서도 같은가는 확인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모바일에는 아직 셧다운제가 유예되어 있는 상태라 셧다운제에 필요한 ‘미성년자 셧다운 기능’을 구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셧다운제를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게이머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가족이나 일반 인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검증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게임산업에 대한 학부모나 일반 인식 조사를 제대로 한 자료가 없는 것 같고, 이런 ‘부정적 인식’이 산업(주로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가는 또 객관적으로 검증이 안 된다.

규제 철폐의 또 한 축인 ‘결제 한도 상향’은 그냥 개소리라는 느낌 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당시 한게임, 네오위즈 같은 회사들이 고포류(고스톱 + 포커 등) 게임들을 웹에서 서비스하면서 사행성 논란이 꾸준히 일어 규제 필요가 대두되었고, 이와 함께 온라인 게임에서 미성년자들이 부정 결제하는 경우의 항의가 많아 월 결제 한도를 설정한 것이다. 이후 전자는 이 한도를 늘리는 것이 말하자면 월 매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므로 계속 늘리자고 주장해 왔고, 후자는 학부모들의 항의를 차단하는 일종의 방어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있는 쪽이 나쁘지 않은 그런 상황이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큰 틀(지원과 규제 철폐)에서 보자면 현재 플레이어들은: 1) 지원을 바라는 중소 개발사들과 2) 한도 증대를 바라는 고로류를 주로 영업하는 대기업이 크게 각 축에서 정책을 바라고 있고, 이외에 3) (사실상 셧다운제 철폐를 하거나 말거나 크게 영향 없는) 온라인 게임 사업자와 4) (셧다운제가 모바일로 확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바일 게임 사업자들 정도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산업의 육성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단지 이 ‘지원과 규제’ 두 가지 뿐인가 생각해봐야지 않나 싶다.

이를테면, 게임 산업을 자동차 산업이라고 생각을 해보자. 먼저 자동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쪽의 지원은 대충 위와 같을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규제들을 줄여주고 생산을 용이하게 해주거나 생산에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자동차가 시내를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자동차를 용이하게 이용하게 하려면, 시내에 주차장도 많아야 하고, 자동차 안전에 대한 검증이 확실해서 어느 차를 타고 다녀도 안전하다는 것이 보장되는게 좋을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과 보행하는 사람들이 양쪽 모두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도로 시스템과 건널목, 음주 운전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신뢰가 만들어져야 하고, 새로운 자동차를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산업 시스템과 그런 차량들을 만드는 사업자들이 기존의 사업자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차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관광 명소도 필요할 것이고, 그런 관광지를 다닐 수 있는 여가 시간도 어느 정도 있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동 조건도 이 산업이 유지되는데 중요한 몫을 할 것이다. 이런 거다.

다시 게임으로 돌아오자면, 게임에 대한 일반의 신뢰는 꽤 높지 않은 편이다. 게임을 하는 것이 한국의 경쟁 중심 체제에 상당히 방해가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고 – 즉 게임을 하면 공부해서 경쟁에 승리할 기회를 뺏기고 -, 게임을 하는 사람과 그 주변인들(가족)의 갈등이 언제나 미디어에 등장하며 회자될 뿐 아니라, 게임의 과금 정책에 대한 부분에도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대형 기업들이 중소 개발사들의 약점을 쥐고 비틀어 후려쳐서 싸게 인수하는 상황이나, 투자-개발-퍼블리싱-유통을 혼자 다 해먹는 수직계열화 문제, 출시한 게임이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보상이 되지 않는 문제, 망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밥은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안전망의 문제 등이 있을 것이다.

특히, 게임 산업이라고 하는 것이 주로 40대 이하의 젊은 층이 주로 소비하는 문화 산업이다보니, 젊은 세대들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를 살피고 여가 시간이 확보되는 것도 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할 시간이 없으니 오토를 돌리게 되고,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해서 경쟁하기 보다는 돈으로 시간을 구매하는 형태의 시스템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 단지 개발 사업자들이 악독하기만해서 그런 것인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게임은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방식’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구조이다. 이건 마치 생물의 진화와 비슷하다. 시장 상황에서 생존(진화)의 압력은 항상 존재하고, 후발 주자들은 이 생존 압력에서 ‘기존에 가장 많이 선택받은 방식’을 모방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일정 시간이 흐르면 게임들은 대체로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고, 여기서 경쟁은 새로운 압력이 되어서 변화를 요구한다. 지난 20년 간의 게임 시장의 역사는 이렇게 흘러 왔다.

그런데 이런 생존과 진화의 기반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 특히 실패했을 경우의 안전망이 매우 중요하다. 이외에 다양한 취향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도 중요하다. 게임을 하는 것을 스스로 죄악시하게 만들고, 게임을 하는 것을 손가락질 하는 사회라면 누가 게임을 하겠는가. 게임을 하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과 책을 읽는 것, TV를 보는 것이 모두 같은 ‘미디어의 소비’인데, 왜 어떤 것은 천하고 어떤 것은 귀하게 받아들여 지는가.

게임 산업에 대한 진흥과 육성, 규제 철폐 같은 일차적인 관점에서의 정책들도 좋지만, 그것이 정말 효과적인지, 그 규제를 유지하는 것이 나은지 철폐하는 것이 나은지, 어떤 정책이 외부적으로 이차적으로 필요한지 그런 고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과 게이머의 삶과 개발자들의 삶이 모두 서로 그물처럼 얽혀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않는가.

그냥 일단 돈만 주면, 돈만 벌게 해주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그런 식인 것 같아서 씁쓸하다.

게이머의 정치 참여

게임메카에서 지난 주(5일) 나온 미국 게임 협회(ESA)의 자료를 인용해 골방에서 게임만 한다? 게이머 ‘정치참여’ 더 높다라는 기사를 냈다. ESA의 보도자료는 이것인데, 작년에는 게이머가 비게이머에 비해서 더 진보적이라는 기사가 나온바 있어 내용이 조금 배치된다.

이전 기사에 게이머는 게임 안에서 선택과 결과, 잘못된 것을 보면서 바로잡는 시도를 직접 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진보적으로 훈련된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반대로 이번 조사에는 지지 정당에 대한 항목이 있었나본데, 민주당(38%)이 공화당(48%)에 비해 더 낮다.

게임메카의 댓글들은 이 내용에 대해서 그러니까 게임 규제를 막을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하고 있나본데, 오히려 규제론 측에서는 (물론 한국의 게이머 성향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같은 보수당이라고 본다면) 유리하게 해석하고 규제를 강화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정치 참여’를 각자 ‘우리 편에 유리한 참여’라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인듯.

다시 원론으로

세계 무대에서 한국 게임 산업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다, 좋은 게임을 만들고 그게 좋은 평을 받고,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 그 때에 따라오는 것이 세계 게임 산업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의 한국 게임 산업은 마치 우리가 온라인 게임에서 강국이었는데 그 주도권을 잃게 되었으니 회복해야 한다고, 그리고 이를 위해서 게임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형국이다.

게임 산업의 성장은 국가의 지원으로 이뤄지는게 아니다. IMF 이후에 게임이 산업이 되던 그 시절에도 국가가 지원한 것은 없었다, 젊은 청년들이 재밌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것이 인기를 끌었고, 그 게임이 유행하니 유사 게임들이 ‘시장’을 만든 것이었다. 수천 개의 온라인 게임이 연간 쏟아졌지만, 그 중에서 세계적이라고 할만한 게임은 (좋게 말해서) 거의 없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게임 산업이 흥해서 인력이 쏟아져 들어오고 국가의 성장을 주도하는 주요 산업이 되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게임이 중요하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게 중요한 거다. 본질 밖에서 산업의 위축이나 걱정들 하고 있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데 뭐가 필요한지, 그걸 먼저 물어봐주면 좋겠다.

윌 라이트가 2006년에 본 게임의 미래

하지만 사회는 부정적인 면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세대 구분의 저편, 장년층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게임을 바람직하지 못하게 (폭력적, 중독적, 유치, 무가치하게) 본다. 이 중 몇 가지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선지 게임의 긍정적인 측면(창조성, 커뮤니티, 자존감, 문제 해결)은 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는 게임 하는 사람을 관찰하는 일과 컨트롤러를 직접 쥐어 플레이하는 경험이 다르다는 데 일부 원인이 있다고 본다. 무지막지하게 다르다.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극장에 앉은 관객을 관찰해서 알아낸 것 뿐, 직접 영화를 본 적은 없다고 상상해보라. 영화는 무기력증과 정크푸드 소비를 유발한다 결론지을지도 모른다. 그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닐 수 있지만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

– 꿈 기계(Dream Machines), Will Wright

윌 라이트의 2006년 기고글을 밝은해님께서 페이스북에 인용하셨길래.

게임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문제를 꼬집는 이 부분은 특히 요즘 한국 상황에 적당한 비유겠다. 글 전체에 라이트의 비전이 드러나고 있다. 또 마지막 부분의 ‘개인화된 게임’은 특히 2012년 이후 페이스북 게임들이 했던 그 내용을 생각하면 이 예측에 대해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얼마지 않아 게임은 플레이어에 대한 모형을 구축하기 시작할 것이다. 플레이어가 무엇을 자주 하고, 무엇을 잘 하고, 무엇에 흥미를 가지고, 무엇에 도전을 느끼는지 게임이 배우게 된다. 게임은 우리를 관찰할 것이다. 우리가 내린 결정을 기록하고, 우리의 문제 해결 방식을 고려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보이는 솜씨를 평가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게임들은 각 개인에 “맞춰서” 스스로를 수정할 것이다. 즉석에서 난이도를 조절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가져오고, 스토리라인을 만들 것이다. 그걸 위한 재료의 많은 부분을 다른 플레이어가 만들 것이며, 시스템은 그걸 가장 잘 즐길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게임 규제와 탄압은 어느 정권 어느 부서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의원이 스팀에 있는 게임들이 등급 분류를 받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돌리면서, “미국, 유럽, 독일, 일본 등에서는 등급분류를 받으면서 한국정부의 등급분류를 받지 않겠다는 스팀사의 이중플레이는 한국 법체계만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게 언론에 올라가면서 난리가 났다.

박주선 의원은 보도자료 안에서 ESRB, PEGI, USK, CERO 등 해외의 등급 분류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에서만 등급분류를 받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저 등급 분류 시스템들은 모두 민간이 하는 시스템으로 자발해서 등급 분류를 받는 것이고 등급 분류를 받지 않는다고 법으로 판매를 금지하는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 미국의 ESRB는 자율적으로 등급 분류를 받고, 시장의 유통 제한 또한 자율적이며 합의에 의한 것이다.
  • 유럽의 PEGI 또한 자율 규제이며, 법률적 강제가 되지 않는다.
  • 독일의 USK 역시 자율 규제이며, 독일 청소년보호법(Jugendschutzgesetz, JuSchG)에 과태료 규정이 있을 뿐이다.
  • 일본의 CERO도 자율 규제이며, 규제 위반시의 제재도 없다.

사실, 까놓고 말해서, 박주선 의원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게임이 뭔지도 스팀이 뭔지도 모르는게 문제고, 그게 박주선 의원만이 아니라 보도자료를 작성한 보좌관들도 저 등급 분류 시스템들이 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기나 하겠나. 그리고 또 이게 국회 안만의 문제이겠나, 이 나라에서 부모를 자처하는 세대의 총체적인 문제이지.

모든 인터넷의 커뮤니티가 난리가 났는데, 이 문제를 자꾸 일반 정치논리(새누리당 vs 새정치민주연합 또는 보수 vs 진보)로 해설들을 하고 있다. 아니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이나 둘은 모두 (적어도 이 문제 만큼은) 이해가 같은 집단이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좌우도 없고 이념도 없다. 심지어 여러분이 ‘진보적’이라고 믿는 전교조 같은 단체(전교조의 어디가 도대체 진보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도 아주 적극적으로 게임을 규제해야 한다고 믿는 집단이다.

게임을 바라보는 부모 세대들의 컴퓨터와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과 SNS에 대한 이해 부족이 지금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이다. “우리 아이들이 게임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그냥 헛소리가 아니라 저들의 시각으로는 정말인 거다. 내 아이가 나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빠져 헤메고 있느라고 공부도 안하고 친구도 안 만나고 있다는 거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는 시간이 한 10년 쯤 지나면 대충 풀어질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10년을 게임 업계가 버틸 수 있느냐는 별개의 이야기이고, 한국어로 된 게임은 앞으로 나오지 않을 거라는게 우리가 감수해야할 문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