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의 숨겨진 트릭들

폴리곤의 기사를 봤다. 제니퍼 슐르(Jennifer Scheurle)라는 개발자가 트위터에 “헤이 게임개발자들, 플레이어게 특정한 느낌을 주는 기발한 숨겨진 트릭을 좀 알려줘”라고 트윗을 하며 해쉬태그를 열었고, 다른 개발자들이 응답했는데, 난 아래 두 개가 특히 흥미로웠다.

폴 헬퀴스트(Paul Hellquist)는 바이오쇼크는 플레이어가 죽기 바로 직전에 1~2초의 무적 시간을 줘서 ‘죽을 뻔 한’ 순간을 만들어 줬다고 했는데, 모르도르의 그림자(Middle-Earth: Shadow of Mordor)를 만든 릭 레슬리(Rick Lesley)도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모르도르의 그림자는 무적 시간이 아니라 숨겨진 HP를 추가해 줬다고 한다.

이런 식의 간단한 트릭, 플레이어를 좀 더 오래 살게 해주는 방식은 꽤 여러 곳에서 쓰인다. 시각적으로는 거의 죽을 것 같은 순간으로 HP를 붉게 깜빡거리는 등 긴박하게 표시하지만, 실제로는 일시적으로 방어력을 높여 준다든지, 데미지 저항을 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좀 더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이 순간 안에 적을 처치하고 위기를 벗어나면 ‘겨우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임의로 만든) ‘간당간당하게 살아난 경험’이 상황을 타개한 성취감을 제공한다.

인디 개발자(인듯 하다) 쉐비 레이 존슨(Chevy Ray Johnston)은 플랫포머 게임을 만들 때, 플레이어가 점프 타이밍을 늦게 잡아서 플랫폼 밖에서 점프를 하는 경우를 보정해, 그래도 그냥 점프가 되도록 하게 해줬다고 한다. (물론 이건 적당한 거리 설정이 중요하겠다.)

게임 안에서 보통 이런 ‘조작 실수’는 특히 플레이어의 좌절과 분노가 자신에게 쌓이는 지점인데, 이걸 줄여 주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플레이어의 좌절은 가능한 줄이는 것이 옳고, 분노는 적절한 대상에게 쏟아지게 유도하는 것이 좋다.

특히 자신의 실수로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경우는 이 분노가 플레이어 본인에게 향해서, ‘빡쳐서 게임을 끄는 순간’을 만든다. (물론 이 임계치는 플레이어 개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플레이어는 좀 더 오래 참지만 어떤 플레이어는 쉽게 좌절한다. 그리고 이게 임계치를 넘으면 게임을 다시 안 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또 이 분노가 게임으로 향할 경우, 이 게임이 ‘짜증나는 게임’이 되어 버린다.

이 해쉬태그는 뒤져보면 재미있는게 더 많이 나올 것 같다.

게임 개발의 숨겨진 트릭들

내가 플레이하고 싶은 게임

From its core, it was just something that we ourselves wanted to play. Which I think is a great reason for its success, but also the cause of a lot of the bad elements of design that I would consider in it.”

We had no idea that people would like this game,” Ma recalled. “We thought that we were making something that was just entirely for us, people who are very masochistic. This game is just brutal, intentionally. There was no way to win it, for the longest time.”

– Game developer Justin Ma, speaking about the process of making FTL

게임을 만들 때, ‘내가 플레이하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것은 확실히 장점이 있다. 독창적이고 도전적이기 때문이다. 난 게임을 만드는 것은 도전적인 것을 만들 때 가장 즐겁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단, 그런 게임이어야만, 내가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어떤 부분을 살려야 하는지, 어떤 부분이 필요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내가 즐겨하는 게임이 아닌 종류의 게임을 만드는 건 처음 들어선 어두운 방에서 전등 스위치를 찾는 기분이다. 그 스위치가 여기 어딘가 이 쯤 있을 것 같지만 그건 확실치 않고, 그렇게 더듬더듬 찾아서는 빈 벽을 더듬을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하다. 결국 스위치를 못 찾는 경우가 더 흔하다.

내가 아는 게임의 영역에서, 내가 가장 재밌어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럴려고 하고 있다.

내가 플레이하고 싶은 게임

직업으로서의 게임 개발

게임 개발 커리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고, 나도 여기저기 여러 번 글을 쓴 적이 있다. 게임 개발을 하는데 뭐뭐를 배워야 하고, 뭐뭐하는 기술들이 필요하고, 또 뭐뭐하는 기술을 배우면 좋더라 뭐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여전히 게임 개발자가 되려는데 부모가 반대한다거나 이 직업이 좋으냐거나 하는 글들은 꾸준히 올라오고 답변도 반복된다. 매년 젊은이들이 자신의 인생 진로를 고민하면서 반복해서 묻고 있으니까.

그래서 기획자(게임 디자이너) 관점에서 게임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글을 한 번 써 봐야겠다고 상당히 오래 벼르다가 이제서야 착수를 한다.

게임 개발 커리어 시작

일단 게임 개발에 관련이 있는 파트는 다양하다, 기획(게임 디자인)도 이미 마케팅적 관점이나 사용자 편의 관점, 내러티브 중심이나, 부분유료화 등의 사업화 관점, 게임 메커니즘에 대한 관점이나 기술적 관점을 가진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활동하고 있고, 작은 회사에서는 올라운드(all-round)를 하지만, 좀 큰 회사가 되면 각자의 장단점에 따라서 업무가 갈리기도 한다.

이런 ‘관점’은 결국 각 디자이너의 배경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본다. 대학에서 전공했던 것에 의해서 갈리기도 하고, 개발을 하다가 관심 가는 분야를 공부하다가 갈리기도 한다. 애초에 ‘난 뭐를 좋아하니 뭐를 해야겠다’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살다보니 그거 말고 더 잘하는게 발견된다거나 해보니 내가 생각보다 소질이 없다거나 해서 더하고 빼고 하다가 나중에 남는게 내 분야가 되는 식이다.

그래서 게임 개발에서 대학 전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전공이 컴퓨터든, 게임 개발이든, 미술이든, 역사든, 철학이든, 경영이나 마케팅이든, 심지어 법학이나 회계학 같은 것도 괜찮고, 생물학이나 화학 수학, 물리 같은 자연과학도 아주 쓸모가 있다. 게임 개발을 진로로 선택하는데 아아무 관계가 없다.

‘게임 개발 전공을 하고 싶어요’라는 것도 그래서 장단점이 있다. 게임 개발 방법을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확실히 개발 실무에 대해서 일찍 접하고, 같은 신입이라도 바로 쓸모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장점이 된다. 반면 자신의 특수한 고유의 분야가 아직 확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똑같은 판타지 배경에서 싸움질하고 공성전하는 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디자이너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묘사가 달라질 수 있는데, 그런 개발 철학을 만드는 건 개발 기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개발자로 살면서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copy & paste) 컴퓨터든, 게임 개발이든, 미술이든, 역사든, 철학이든, 경영이나 마케팅이든, 심지어 법학이나 회계학 같은 것도 괜찮고, 생물학이나 화학 수학, 물리 같은 자연과학도’ 게임 개발 일을 하면서 계속 배워야 된다. 요즘은 거의 모든 IT가 비슷하지만, 게임 개발은 공부 안 하면 도태되는 업종이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기술은 영어다. 공부를 하려면 일단 뭘 배우려든지 영어가 가장 중요하다. 영어로 읽고 들을 수 있으면, 영어로 된 강좌는 검색만 하면 전세계에서 쏟아져 나온다. 동영상, 문서, 논문, 책 부지기수로 쏟아진다. 한국어로 된 문서는 그 중 5%도 안 된다. 최근 가장 범용 기술인 유니티만 해도 ‘unity tutorial’은 126만 개가 검색되는데, ‘unity 강좌’는 20만 개가 나온다. 아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구현 부분의 궁금증을 찾을 때는 특히 더 심각해진다, 찾는 내용이 한국어 문서로는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전공은 취업을 할 때 별로 차이가 없다. 신입을 뽑는데는 딱히 어떤 특별한 기준이 있지 않다고 본다. 공채가 있는 회사들은 내부 기준이 일단 뚜렷해서 뭐라 말하기 어렵고, 회사마다 학벌/학력을 보기도 하고, 실무적 활용을 요구하기도 하고, 또 어떤 회사는 그냥 ‘열정만 있으면 뽑아서 가르치면 되지 뭐’라는 생각으로 뽑기도 한다.

문제는 ‘열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내보이고 증명하느냐 하는 것과 열정이라는게 있는게 좋으냐 하는 부분이다. 열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신입도 있고, 열정이 있으니까 월급을 적게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장도 있다. 난 둘 다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근무 시간에 열정적으로 일 하고, 일찍 퇴근해서 공부를 하든 데이트를 하든 하는게 좋다고 본다.

하지만 게임 개발은 결국 직업이다.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부를 많이 해야하는 직업이다. 항상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하고, 최신 기법/기술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게임도 해보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배우고 걸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게임을 좋아하느냐 아니냐는 게임 개발자로써 성공하느냐 아니냐와 관계가 없다. 일단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게임 개발에 관심을 가질 확률이 높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게임 개발을 좋아하는 쪽이 더 이 직업에 유리하다.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깨닫지만, 게임을 즐기는 것과 개발을 즐기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구현이 안 되는 부분을 풀어냈을 때 희열을 느낀다거나, 다른 개발자들이 하지 못한 것을 성취했을 때 즐거운 사람들. 성취와 달성이라는 관점에서 ‘완성’이라는 큰 목표보다 더 세부적이고 미시적인 부분에서 성취를 느끼는 사람들은 게임 개발에 재미를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직업적으로도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게임 개발에 대해서 기성 세대들은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젊은 세대들은 부러워하는 직업인 경우가 많다. 외부에서 보면 마치 놀면서 돈을 버는 직업이라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뭔가 일을 하는게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혼자서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게 아니라면) 일단 조직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하는 스트레스는 일반 회사나 크게 다르지 않고, 업무 성과나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결과를 뚜렷하게 보여낼 수 없는 부분도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조직에서 직업인으로 생활하게 되면 다른 직장 생활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일반 기업처럼 보수적이고 경직적인 면은 덜하겠지만, 어쨌거나 직장은 직장이라는 걸 염두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게임 개발이 다른 직업에 비해서 장점이라는 것은, 요약하면,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냥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월급을 받는 직업이다.

간혹 착각하는 것

게임 회사는 출퇴근이 자유롭다거나 일이 안 되면 놀 수 있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1. 요즘의 대부분 회사들은 출퇴근을 엄격하게 지키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쪽이 훨씬 생산성이 높다는 공감대가 생기고 있다.
  2. 일이 안 되면 자유롭게 늘어지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데드라인이 옮겨지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 업무에 대한 결과물이 확실히 나올 수만 있다면, 자기 시간을 좀 여유롭게 쓸 수는 있을 것이다.
  3. 컴퓨터를 사용하니 업무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2로 수렴한다. 노는 걸 보고 뭐라지는 않지만, 마감은 변하지 않는다.
  4. 양복은 입지 않아도 된다, 면접에서든 출근에서든. 공채 면접의 경우에는 양복을 입는 경우가 있고, 이게 좀 더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에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출근 복장을 강제하는 회사는 내가 알기로는 없다. 작은 회사들은 이런 부분에서 좀 더 자유로워서 반바지나 슬리퍼도 괜찮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통상적으로’ ‘사회가 용인하는 선’이라는 건 지켜야겠다.
  5. 게임이 대박 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뒤에 설명하겠다.

명백한 단점들

최근 크런치에 대해서는 크게 논란이 되었으니, 게임 업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많은 회사에 크런치가 있다. 크런치로 인해서 건강이나 인간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번아웃하거나, 과로로 쓰러지거나, 애인과 헤어지게 되거나… 한다.

업무를 너무 사랑해서 – 이것은 절대로 권하지 않는다 – 자기의 여유 시간을 전부 업무에 쏟아 붓는 경우도 간혹 있다. 퇴근해서 집에서 일을 한다거나 회사에서 명시적으로 야근을 금지하거나 수당을 제공하지 않는데 남아서 일을 한다거나 한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회사는 별도의 보상을 챙겨주지 않는다. 그리고 개발중인 프로젝트가 엎어지거나 뒤집어지거나 하는 것은 이런 노력과 아무 상관이 없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서 심신을 망치거나 한 것에 대해서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산재 처리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다. 스스로 인생을 망치지 말기를 바란다.

게임 업계의 급여 수준은 최근 5년 사이에 빠르게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는 경쟁적으로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작은 회사의 신입 연봉은 보통 2000만 원 수준을 주는 경우도 있다.

최저임금이 2017년 기준 6,470원이고, 연봉으로 계산하면 1630만 원 정도다. 최저임금 1만 원이 되었을 때 연봉이 2508만 원이다. 신입 연봉은 현재 기준으로 2500만 원이 최소한 되어야 하고, 3000만 원은 되어야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50인 이하 중소기업의 경우는 대부분 재무 구조가 열악해서 고용 자체를 줄이는 분위기가 있기도 하다.

보편적으로 포괄임금 계약을 한다. 포괄임금제로 연봉을 3000만 원 책정했을 경우, 48시간 정도(최대치)의 초과 근로를 포함했다고 보면, 실제 연봉은 2000만 원 수준이 된다. 초과 근로는 1.5배를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월 72시간분의 임금이 연봉에 포함된 것이므로, 월 250만 원 급여는 총 281시간의 시급이라고 계산할 수 있다. 즉, 연봉 3000만 원의 포괄임금은 8900원 시급을 받는 것이 된다. (포괄임금이 아닐 때는 3000/12/209 해서 시급이 1.2만 원이다.)

따라서, 포괄임금제 계약에서 초과근로는 자신의 연봉을 깎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포괄임금제를 하지 않거나, 계약에 포함되는 기본 초과 근로 시간을 줄이거나, 포괄임금제로 계약된 경우 가능하면 초과 근로를 하지 않는 쪽이 좋다. 포괄임금 계약은 회사 쪽에서는 피고용자의 성실을 의심하는 것이고, 노동자는 이를 가능하면 회피하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불신을 조장하게 된다. 결국 회사나 개인이나 매우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제도이기 때문에, 업계와 정치계에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폐지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연봉제 계약을 하거나, 프로젝트의 취소에 따라 정리해고가 쉽게 발생한다. 연봉제 계약은 마치 성과에 따라서 연봉이 크게 인상될 것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연봉의 인상 상한이 정해져 있고, 게임의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도 명시적으로 지급 약속을 하는 일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구두로 약속을 한 경우도 자의적으로 기분에 따라 지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전년의 개발 성과가 탁훨하다고 해도 연봉이 +50%, +100% 되는 일은 절대 없다.

반면, 개발중이던 게임의 프로젝트는 쉽게 취소된다. 시장의 방향이 달라지거나 예상 매출이 기대만하지 못하거나, 게임이 경영진의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팀장이 경영진에 개겼다거나 하는 등의 알 수 없는 객관적이지 않은 이유로도 프로젝트가 취소될 수 있다. 개발중이던 팀원들을 흡수해 줄 다른 팀이 있는 경우는 옮겨 갈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해고(권고사직으로 처리)를 한다.

인센티브라는 걸 기대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게임의 성공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대박’은 0.1% 수준의 확률로 발생한다. 그리고 이렇게 대박이 났을 경우의 인센티브 보상은 대부분의 회사가 명시적으로 계약에 포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게임은 정보재(information goods)라서 12개월간 천억 매출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마케팅비와 인건비를 뺀 대부분이 순이익인데, 인센티브를 10억도 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직급과 업무 참여율에 따라 차등적이므로, 대리급이나 말단급에서는 연봉의 100%는 커녕 월급의 100%를 받기도 쉽지 않다. 기대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게다가 게임 업계는 소위 ‘고용유연성’이 매우 높은 업종이다. 이 말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파리 목숨이라는 뜻이다. 2000년대 초반, IMF 이후로 처음 연봉제 계약이 도입되었을 때 IT 업계에서는 ‘능력이 있으면 다른 회사에 갈 수 있다’며 합리화를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보면 재취업은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맥이나 시장 상황에 영향을 가능성이 더 높다. 지금처럼 게임 업계의 고용이 매우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유연성’은 ‘자유로운 해고’이고 ‘어려운 재취업’이라는 말과 통한다. 아주 악마적인 기업이라면, 인센티브를 지급하기 직전에 해고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만성적 시간 부족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불안정한 고용이 가장 위협되는 부분이 된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자녀를 양육하는데는 돈이 꾸준하게 드는데, 불안정한 고용은 불안정한 수입이라는 뜻이고, 가족의 생계가 항상 위협되는 부분이다. 큰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아서 오래 다닐 수 있겠지만, 이것도 온라인 게임 시절의 이야기지 모바일 게임에서는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팀이 해체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또 달라졌다.

한정적인 시간을 일과 공부와 가족과 휴식으로 잘게 쪼개서 관리해야 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부족한 시간을 이렇게 쪼개 쓰다 보면 피로가 누적되고 건강이 악화되기가 일쑤다. 그래서 가능하면 야근은 하지 않는 쪽이 좋다.

난 야근을 하는 것보다 가족이나 친구과 시간을 쓰는 쪽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인생 마라톤

어차피 인생은 길다. 게임 개발자나 IT 종사자들의 최대 연령이 현재 40대 후반 수준이기 때문에, 그런 장기적인 관점에서 게임 개발이라는 커리어를 보는 이야기들을 거의 드물다. 예를 들어서, 게임 개발자의 노후나 은퇴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뭐 그런 것은 아직 생각할 때가 안 되었기 때문에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터널에서, 게임 개발은 하나의 선로에 불과하다. 게임 개발은 하나의 직업일 뿐이고, 내가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없는 때도 있는 것처럼, 내가 아무리 게임 개발을 하고 싶다고 해도 계속 게임을 만들 수 없는 때도 언젠가는 온다.

게임 개발이 정말 좋다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좋은 것을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자신의 건강이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된다. 맛있는 반찬을 초반에 다 먹어버리고 나중에 맨밥만 먹게 되는 수도 생기니까, 심지어는 반찬 그릇이 엎어질 수도 있으니까.

게임 개발을 30년, 40년,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 건강해야 하고, 생계가 안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게임 업계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젊은 개발자들을 싸게 착취해서 능력을 뽑아내고는 다 쓴 휴지심처럼 내팽겨친다. 그리고 새로운 휴지를 달고 열심이 뽑아 먹는다. 팔팔한 신입 개발자는 항상 넘치니까.

직업으로써의 게임 개발업이라는 것은 그래서 아직은 문제가 많다, 이것들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게임 개발자로써의 내 삶도, 후배들의 삶도 불안정하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자면, 게임 개발은 장기적 열정 착취를 토대로 성장해왔고 그렇게 가고 있다.

결코 직업으로써 좋은 선택이 못 된다.

직업으로서의 게임 개발

게임 개발 노동의 특수성

게임개발자연대가 3년을 공을 들여서 여러 정당 및 단체들(정확히는 정의당, 노동건강연대, 한국IT노동조합)과 연합해서 드디어 넷마블 및 게임 업계의 노동 실태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공론화를 하는데 성공했다. 개발자들의 갈수록 더 열악해지는 노동 상황 뿐만 아니라 산업의 실태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졌고, 이제 가장 기본적인 ‘노동법 준수 필요’라는 공감대는 만들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저항하는 기사들이 나오는데,

아직 일부 게임회사들은 개발자들을 채용할때 프로젝트 단위로 채용한다. 개발자들이 특정 회사에 직원으로 고용되기 보다는 팀 단위로 특정 프로젝트 별로 회사를 옮겨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 개발자들의 근무태도나 중간성과를 관리하지 않는다. 근무를 몇시간 했는지도 회사의 관여사항이 아니다.

정해진 기간에 결과물을 내면 된다. 결과물의 질이 근무태도나 근무방식에 대한 평가다.
실제로 게임회사에서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요시한다는 이유로 갑자기 조기퇴근하겠다는 개발자, 오늘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다는 개발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조기퇴근에 대해서 얼마나 큰 책임을 졌을까. 그들이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면 회사는 그 시간만큼 월급을 주지 않았을까. 꼬박꼬박 월급을 주면서도 약속한 기간에 결과물을 받지 못하는 회사의 속은 얼마나 쓰릴까. (중략)

9시 출근-6시 퇴근이라는 일반적인 룰을 ‘창작자’인 개발자들에게 모두 적용하는게 맞는지, 그게 맞다면 개발자들은 그 룰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지, 그것이 개발자들의 창의력을 오히려 떨어뜨리지는 않는지…먼저 따져볼 일이다.

게임업계 근로관행, 개발자들도 변해야 바뀐다, 파이낸셜 뉴스

이런 식으로 게임 개발 노동의 특수성을 운운하는 기사들이다.

이재홍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게임은 종합 문화예술로 불릴 만큼 예술적 창작 요소가 많은 제품”이라며 “개발 과정에서 몰입이 굉장히 중요하고, 이 때문에 고정된 근무 시간에만 일을 하라고 강제하는 것도 다소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에선 노동 환경을 개선하되, 게임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훈 교수는 “지나친 야근이나 촉박한 일정은 당연히 개선돼야 하겠지만, 근무 시간을 획일적으로 정하는 식의 감독은 게임 산업에 맞지 않는다”며 “게임 개발자의 문화를 이해하고 유연하게 정책을 집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툭하면 밤샘 게임업계 ‘크런치 모드’ 언제까지, 중앙일보

저 분들이 이야기하는 저런 개발자들은 2002~2005년 쯤에 온라인 게임 개발 붐이 일었을 때, 게임 개발에 환상을 가지고 업계에 들어 온 개발자들이 하던 이야기다. 요즘 게임 개발 저렇게 하는 곳은 거의 없다. 다들 오전에 출근해서 (회사가 강요하지 않으면) 저녁에 퇴근하(고 싶어하)고, GIT 등을 통해서 업무를 체크한다.

게임 개발을 자꾸 종합 예술이니 창작이라느니 갖다 붙이면서 ‘노동’을 일부러 지우려고 하는데, 예술이니 창작이니 할 수 있는 사람은 솔까 산업 전체에 5%도 안되는 최상층부의 디렉터급에나 해당하는 소리일 뿐, 매일 매일 일정 소화해내는 하층 개발자들은 그런 거 별로 없다. 게다가 게임을 예술이라고 칭할 때는 게임 자체를 말하는 것이지, 그 (개별 작업자들의 작업인) 특정 캐릭터 한 명의 생김이라든지 대사 한 마디, 기능 하나 가지고 요소라고 하는 거였나? 생각해봐라.

심지어 요즘은 한국의 인디 게임도 이젠 창작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보다 하루하루 생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특히나 매일 밤을 새면서라도 일정을 당기지 않으면 생활비를 만들 수 없는 인디 개발자들에게 창작이니 예술이니 하는 소리는 배 부른 소리다. 이번 게임 망하면 개발 접고 외주를 뛰든 노가다라도 뛰어야 되는 상황인데 지금 창작이니 예술이니 하고 앉아 있다.

저렇게 산업 현장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나가서 업계 사람들이 전하는 소리만 듣고는 특수성이니 운운하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게임 개발 과정은 노동이고 결과가 (낮은 확률로) 예술이 되는 거다. 게임이 예술이 되는 건 결과일 뿐이다.

특히나 현재 한국 게임 산업에서 예술이라고 불릴만한 게임이 일 년에 몇 개나 나오나. 연간 손에 꼽히는 사례를 가지고 마치 나머지 게임들이 전부 예술인 것처럼 확대하고 호도하는 것은 또 무슨 짓인가. 볼쌍사납다.

  • 어디에서나 ‘특수성’ 운운하면서 ‘일반성’을 부정하고 지우는 사람들이 있다.
게임 개발 노동의 특수성

워렌 스펙터가 말하는 것

“첫 번째는 플레이어의 힘입니다.” 스펙터는 설명했다.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말할 힘을 플레이어에게 주는가? 그 다음으로, 이 게임에 그동안 누구도 보거나 하지 않았던 것 한 가지가 있는가? 세 번째로 플레이어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했는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있게 했는가? 그리고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게임을 만들었는가? 플레이어를 생각하게 했는가? 제게는 이 네 가지가 성공을 규정합니다.”

“The first is player power,” he explained. ” Are you epowering players to tell a new story in collaboration? Next, have I delivered one thing in the game that nobody has ever seen or done before? Thirdly, have I allowed the player to see the world through the eyes of someone different to themselves – have I let them walk in someone else’s shoes? And have I made a game about something beyond what’s on the surface? Have I made them think? These are the four things which define success for me.”

– Warren Spector: “I couldn’t care less about maximising profitability”

그렉 코스티키얀(Greg Costikyan)이라든지, 피터 몰리뉴(Peter Molyneux)라든지, 이번에는 워렌 스펙터라든지 이 업계에서 수십 년을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항상 게임 메카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게임의 규칙이라든지 이야기라든지 하는 마이크로한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혜안이 있고 직관을 보여주지만,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야할 길이나 개발자로서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 네 가지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이 게임에 그동안 누구도 보거나 하지 않았던 것 한 가지가 있는가?”이고, 최근 가장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게임을 만들었는가? 플레이어를 생각하게 했는가?”라는 부분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면서 현실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게임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게임의 재미로 성공을 규정합니다.저는 재미가 쓸모없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제 스튜디오에서는 그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합니다. 의미가 없고 게임을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단어니까요.

라는 문단에 주목하는데, 사실 이게 왜 쓸모 없는 말이냐면, 재미는 게임의 가장 기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사는데 무엇이 중요합니까: 밥을 먹는게 중요합니다’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밥을 먹는 것은 일단 기본으로 치고 그 다음 것을 이야기 해야지, 밥 먹는 것에 집중을 하면 되겠는가 하는 뜻이다. 그건 다들 알고 있는 거니까 넘어가고, 다음 스텝을 이야기하자는 뜻이다.

워렌 스펙터가 말하는 것

다시 원론으로

세계 무대에서 한국 게임 산업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다, 좋은 게임을 만들고 그게 좋은 평을 받고,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 그 때에 따라오는 것이 세계 게임 산업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의 한국 게임 산업은 마치 우리가 온라인 게임에서 강국이었는데 그 주도권을 잃게 되었으니 회복해야 한다고, 그리고 이를 위해서 게임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형국이다.

게임 산업의 성장은 국가의 지원으로 이뤄지는게 아니다. IMF 이후에 게임이 산업이 되던 그 시절에도 국가가 지원한 것은 없었다, 젊은 청년들이 재밌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것이 인기를 끌었고, 그 게임이 유행하니 유사 게임들이 ‘시장’을 만든 것이었다. 수천 개의 온라인 게임이 연간 쏟아졌지만, 그 중에서 세계적이라고 할만한 게임은 (좋게 말해서) 거의 없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게임 산업이 흥해서 인력이 쏟아져 들어오고 국가의 성장을 주도하는 주요 산업이 되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게임이 중요하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게 중요한 거다. 본질 밖에서 산업의 위축이나 걱정들 하고 있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데 뭐가 필요한지, 그걸 먼저 물어봐주면 좋겠다.

다시 원론으로

기획서는 왜 쓰는 걸까

페이스북에 기획서를 가지고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김성욱 대표가 ‘기획서는 왜 쓰는 걸까‘라고 포스팅을 한 걸 보고 생각을 했다. 본문에는 다들 농담으로 댓글을 달고 있지만.

기획서는 왜 쓰는 걸까, 내 생각은 이렇다.

‘오늘 라면이 먹고 싶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근처 어디에 가서 라면을 먹어야할지 아는 가게가 있고 길도 제대로 안다면 별로 고민할 일이 없다. 그냥 가서 라면을 주문하고 먹으면 된다. 주문 전에 김치라면이냐, 계란라면이냐, 파 듬뿍 라면이냐, 아니면 파+김치+계란라면이냐를 고르는 ‘사소한’ 과정만 넘기면 된다.

그런데 주변에 분식집도 잘 모르겠고, 왠지 좀 특이하고 맛있는 라면을 먹고싶다면 아무래도 맛집 블로그 같은 것이라도 뒤져서 참고를 해야겠지. 그리고 어떻게 찾아갈지, 거기서 어떤 메뉴를 주문할지 계획도 세워야할 거다.

기획서는 그런 거다. 명확한 방향이 있고 그게 개발 멤버에게 공유되고 있으면 없어도 된다. 특히나 내 경우라면 기획서 없이 개발을 해보기도 했고. 예의 라면을 계속 비유하자면, 슈퍼에서 라면만 제대로 사 왔으면 끓이면서 스프의 양 조절이나 면발의 쫄깃함 정도는 조리하는 도중에 조절할 수도 있고 뭐 그냥 대충 끓여도 맛있게 나온다 뭐 그런 말이다.

그런데 개발 멤버 간에 비전 공유, 기획 방향의 설정, 개발중 변경되는 내용의 기록을 위해서, 게다가 특히나 관련하는 개발 멤버들이 많아지는 경우라면 직접 설명하는 것이 번거롭고 복잡해질 때에도 기획서는 필요하다.

그러면 좋은 기획서는 여기서 뭘까.

내가 기획서를 들고 가서 얼굴을 맞대고 별도의 설명을 할 필요 없이, 문서만 보고 내용이 이해되는게 좋은 기획서라고 생각한다. 명쾌하고 구현하기에 깔끔하게 되어 있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예외 상황이 발생하겠는데요?”라고 질문이 나오면 좋지 않다. 구현시 예외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가 되어 있어야 하고, 발생할 상황이 예측되지 않을 경우는 ‘의도’를 명확하게 기록해서 ‘의도 외 상황’이 발생하면 알아서 처리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게임 디자이너는 프로그래밍을 알면 좋다. 어제 트위터에서 이야기가 나왔던 ‘프로그래머가 좋아하는 기획자는 말이 통하는 기획자‘도 사실 이런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을 할줄 알거나 의사 코딩을 할 줄 아는 게 좋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은 ‘절차적 사고‘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기획서는 왜 쓰는 걸까

기획과 게임 흥행의 관계

기획적으로 훌륭한 게임이 왜 흥행에는 실패할까. 이 고민은 내가 게임 업계에 있으면서 꾸준히 했던 것이기도 하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계속되던 질문과 토론이기도 하다. 이 게임은 잘 만들었는데 왜 실패했을까.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첫째로는 게임을 흥행하는데는 제품 자체의 능력(소위 게임성이라고 한다)도 있겠지만, 출시된 시기나 시장의 토양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쟁 게임이 없는 시장에서 출시되는 경우나 비슷한 유형의 게임이 없는 시기도 중요하고, 충분히 볼륨이 커진 시장이라면 어지간히 잘 만든 게임이라면 성공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즉 게임의 흥행에는 여러 복합 요소가 작용을 한다는 뜻이고, 잘 만든 게임만 가지고는 상황에 따라 흥행성을 보장할 수 없기도 하다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시기에 아무리 잘 만든 2D 슈터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흥행을 보장할 수는 없는 토양이라는 뜻이다.

잘 만든 게임이란 뭔가. 기획적으로 컨셉이 의도하는 것을 게임 요소들이 잘 떠받쳐 주고 있다는 뜻이다. 이 요소와 컨셉의 관계는 장르와 요소의 관계일 수도 있고, 플랫폼과 인터페이스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어쨋든 이런 것들이 잘 버무려져서 종합되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낸다는 거다.

재미, 사실 이 말은 객관화할 수 없는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기획에서 처리할 수 없다. 기획서를 보고 우린 게임의 요소들을 보며 자기 기존 경험들로 비추어 재미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 실제로 구현된 상태에서 재미가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만약 가능했다면 40년 역사 동안 전세계에 등장한 게임들은 거의 모두 재미있었을 것이다. 다른 미디어, 영화 같은 것은 어떤가. 시놉시스만 보고 재미있다고 판단했고 투자했던 그 많은 영화들은 왜 실패하는가도 비슷한 과정이라고 본다.

그래서 기획 그 자체로 흥행성을 담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 게임을 재미있다고 느낄지 아닐지 기획 그 자체로 판단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래픽이나 프로그램의 완성도로 판단할 수도 없다. 완성되어가는 과정 중에 테스트를 해보면서 광내기(polish)과정을 통해 ‘좀 더 재미있게’ 만들 수는 있어도.

흥행성이란 말은 그래서 기획적으로 훌륭하다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 반대의 경우 마찬가지로 흥행한 게임이 기획적으로 훌륭하다 할 수 없다. 한 예를 생각해보면, 초기의 리니지는 기획적으로 훌륭한 게임은 아니었다. D&D의 룰을 카피하면서 발생한 밸런스 붕괴 – 특히 캐릭터의 랜덤 스탯 등에서 기인하는 – 나 캐릭터 본체의 능력과 아이템들의 능력 인플레이션 등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니지의 성공은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 플레이어들의 경쟁 몰입과 환금성 등의 영향이 있었고 국내 최대의 MMORPG가 됐다.

그래서 난 ‘기획만 보고도 성공할지 알 수 있다’는 호언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변수들을 무시하고 있을 뿐더러 초기의 컨셉을 게임으로 구현하면서 추가/삭제/변경될 게임 요소들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게임이 흥행한다거나 흥행한 게임이 좋은 게임이라거나, 그건 모든 것이 결판난 이후에 분석할 때나 가능한 말이다. 그리고 ‘게임은 좋은데 흥행에 실패했다’는 말이 간혹은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고. (대체로는 지가 좋아하는 게임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 동의할 수 없지만.)

기획과 게임 흥행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