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esn’t Seem Like Work

If something that seems like work to other people doesn’t seem like work to you, that’s something you’re well suited for.

– Paul Graham, in his essay

“다른 사람들에게 일처럼 보이는 것이 당신에게는 일이 아니라면, 그것이 당신의 적성이다. (중략) 당신의 취향이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느껴질수록 그 취향이 당신이 계속 해나가야할 적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게임을 개발하는 직업은 ‘다른 사람들에게 노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 ‘나에게는 일’인데, 이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망한 건가.

오늘 페이스북에서 김성안님의 링크 포스트를 보고 발견한 글. (번역은 박상민 블로그.)

인용

대중의 관심에 대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관심사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관심이라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정보와 관심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게 누구나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에 관심을 갖느냐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24시간 내내 뉴스를 본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사건을 파악할 수 없고, 24시간 내내 게임을 한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게임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그 ‘누군가’의 집합인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흥행’이라는 것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은 많은 사람이 돈을 지불한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게 그 관심을 받는 댓가로 돈을 버는게 소위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이 된다. 인기는 곧 돈이다.

그래서, 반대로 아무도 관심이 없는 주제와 의식과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돈을 벌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관심이 없다는 말은 투자도 없고 관심도 없고 사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돈을 벌지 못 한다는 뜻이다. 먹고 살 수가 없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돈을 벌거나, 아니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대중의 관심이 높은 그런 내용에 기대어서 뭔가를 만들어야만 하게 된다.

이게 어떻게 보면 게임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도 하고, 모든 분야가 비슷하다. 그냥 남들이 관심있는 콘텐트를 만드는게 돈이 되고 잘 먹고 사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면 유행 게임을 만들 수 밖에 없다. 누구는 유행 게임 짝퉁을 만들어서 흥행을 하고, 그게 광고만 붙였을 뿐인데 수백만 다운로드에 수십만 동접이 나와서 매달 억 단위 돈을 벌고 있고, 또 누구는 그냥 유튜브에서 혐오 영상을 만들어 뿌리는데도 수억씩 벌어드리는 걸 보다 보면, 그걸 따라하지 않을 재간이 있는가. 오, 있다면 당신은 유행 좆까 하는 인디 제작에 어울리는 감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인디 감성으로 한 6개월 쯤 만들다 보니 6개월 안에는 만들 수 있겠거니 하고 준비했던 생활비도 떨어지고, 부모님의 압박, 여자친구(아내)의 압박 같은 것들을 받기 시작한다. 만들던 것은 여전히 아무도 관심이 없고, 다 만든다고 해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별로 없다. 어차피 이런 게임 만들어 봐야 아무도 안 살 거라는 건 만드는 본인도 안다.

그렇게 아무도 관심이 없고 돈이 될 것 같지도 않은 프로젝트를 꾸역꾸역 만들어서, 그걸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관철시켜서 출시를 하는게 인디 게임이다. 아무도 안 할 거라는 걸 알고, 망할 거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일단 만드는 것 그 자체가 목적으로 내가 게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지와 이미지를 투영하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게 인디 게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의 인디 게임들은 대다수가 인디 게임이 아니라고 본다. 어떻게든 만들어서 출시를 하면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대박이 날 수도 있다는 기대로 만드는 게임과 망할게 뻔하지만 내가 가진 게임에 대한 이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걸 만들 수 밖에 없다는 그 둘을 어떻게 동치할 수 있나.

아무도 못할 것 이라는 걸 뻔히 알지만 만들고 있는 그런 개발자들이 힘들게 만들어 낸 인디라는 개념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대중의 관심에 대하여

상호 검증 기능

한 5~6년 전 쯤에 한 데이팅 사이트에 가입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사이트는 본인 인증을 해야 했는데, 신분증을 찍어서 올리면 그 신분증을 확인하고 실명 본인 인증을 해주는 것이다. 와 수십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에 이걸 일일이 다 체크하려면 존나 빡세겠다 생각을 했더랬는데, 며칠 뒤 의문이 풀렸다.

서비스 이용자에게 랜덤으로 서비스에 기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약간의 이익(benefits)을 주는 기능이 열린 것이다. ‘기여 의사’를 밝히면, 다른 사람들이 올린 신분증 사진과 실명, 사진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다. 이 사진들이 같은 사람의 것입니까? 사진과 신분증의 사진이 일치합니까? 이용자 이름과 신분증 이름이 일치합니까? 같은 것들이다.

랜덤한 사용자에게 보여주고 확인을 하게 하는 것이므로 주변인을 동원하는 어뷰징은 불가능하고, 여러 사용자들에게 보여주고 그 결과를 취합하는 것이므로 검증 인력을 내부에 둘 필요가 없다. n명의 사용자에게 보여줬는데 n명의 답변이 일치하면 그대로 인증을 해주면 된다. 만약 10% 정도의 불일치가 있으면, 그건 내부 인력으로 마지막으로 확인을 하면 될 것이다. 그 이상의 불일치라면 오류를 던져서 본인 인증을 신청한 이용자에게 ‘다시 시도하라’고 회신하면 된다.

이런 식의 사용자들의 상호 검증과 인증은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일단 사용자들의 서비스에 대한 충성도가 생긴다. 자신이 뭔가를 기여한 서비스는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부에 검증을 위한 인력이 필요하지 않게 되므로 인건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또 이런 식의 검증 시스템은 서비스 자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호 인증 방식의 신뢰도도 낮지 않다.

어떻게 보면, 이것들을 (요즘 유행하는) 학습형 인공지능을 통해서 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한데, 온갖 다양한 형태의 신분증과 다양한 각도의 사진들을 학습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싸게 들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위의 장점들을 볼 때 훨씬 나을 수 있다. (심지어 인공지능이 더 싸진다고 하더라도, ‘사용자의 기여 → 충성도’라는 과정을 볼 때, 인공지능보다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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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undry of Neverwinter Online from official site

이런 상호 검증 기능은 사실 게임 서비스에도 많은 부분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플레이어의 게임 태도에 대한 평가 같은 것은 이미 LOL의 트리뷰날(tribunal)로 활용된 적이 있기도 하고,네버윈터 온라인(Neverwinter Online)의 사용자가 만든 퀘스트인 ‘the Foundry’의 평가도 이런 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비슷한 예로 아키에이지(ArcheAge)의 법정도 있겠다.

어쨌거나 이 기능의 기본 요지는 ‘불특정의 다른 사용자들이 평가한다’이므로, 특정 아이템의 밸런스 같은 것에도 활용할 수 있겠다. ‘사용해본 결과 이 아이템의 성능은 어떻습니까(별점)’ 같은 식으로 아이템마다 사용자들의 평가 별점이 보여지는 것은 실제 효용에 대해서 보여줄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식으로 평가들이 기준 없이 별점으로객관화되면 플레이어들의 획일적 취향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명백한 단점이 존재한다.)

뭐, 다른 활용처는 좀 더 생각을 해보는 것으로.

상호 검증 기능

인공지능이 언어를 개발했단다

지난 7월 말 온라인에서 가장 크게 이슈가 되었던 뉴스 중 하나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다가 폭주해서 언어를 개발했고, 이를 개발하던 개발팀이 놀라서 전원을 차단했다는 것이었다.

최근 4차 산업 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뉴스들이 쏟아지면서, 4차 산업혁명이 되면 로봇이 일자리를 다 대체해버려서 일자리가 부족해질 것이라느니, 직업들이 소멸되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과 알파고 이야기가 뒤섞인 연장선에서 나온 공포스러운 뉴스였다.

그런데 이 뉴스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단 JTBC의 팩트체크에서도 언급을 했고, 미국의 유명 IT 뉴스 사이트 GIZMODO에서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며 “No, Facebook Did Not Panic and Shut Down an AI Program That Was Getting Dangerously Smart“라는 기사를 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페이스북 개발팀에서는 당황을 하지도 않았고, 딱히 심각한 버그도 아니었으며, 이것이 예상 밖으로 벗어나서 인류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AI들은 아주 제한적인 테스트였을 뿐이고, 이 프로젝트는 이후 취소되지도 않았다.

문제는 ‘공포’다.

4차 산업 혁명은 확실히 지금의 로드맵 상에서라면 인류의 노동을 대부분 대체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서 많은 인간의 직업이 사라질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근래(10~20년 이내)에는 상상처럼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고, 충분한 대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기본 소득 같은 것들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고.

인공지능은 이미 많은 영화들(대표적으로 터미네이터나 아이 로봇 같은 영화들)에서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로봇들이 인류를 직접적으로 말살하려거나 위협하는 그런 상황들로 공포를 그려내고 있지만, 그런 마스터마인드에 가까운 인공지능이 등장한다거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말살해야 한다는 등의) 의식, 의지를 갖는 다거나 하는 일은 인간이 인간의 의식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만들어내는게 불가능하다. 모든 존재는 인식하는 범위 내에서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우리의 의식과 뇌에 대해서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이를 능가하는 것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

미디어들은 지금 이런 공포들을 확산시켜서 판매 부수(페이지뷰, PV)를 올리려는 의지 밖에 없다. 단지 한 번의 충격적인 뉴스 기사 하나로 PV를 올릴 수 있겠지만, 그 이후 기사를 읽은 사람들의 공포가 확산되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갖지 않는다. 단지 한 건의 대박만 노리는 그런 말초적인 자극적인 기사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건 사실 요즘 뉴스 확산의 주요 통로로 확정되어 버린 페이스북 같은 소셜 매체의 문제가 가장 크다. 충격적인 제목, 자극적인 이미지는 일반적인 제목과 이미지에 비해서 훨씬 조회수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노려서 분석하고 만들어내는 걸 요즘은 신기술이고 매출을 증대하는 획기적인 방법이라며 ‘그로스해킹’이라고 부르고 연구해 개발하고 있다. 가장 많이 클릭하는 제목의 단어를 분석해서 그런 단어로 된 페이스북 뉴스 매체를 만든다. 그리고 이런 기사들에 쓰는 이미지나 영상의 저작권은 애초에 관심도 없다, 저작권자에게 들킬 확률도 낮고, 걸렸다고 해도 내리면 그만이다.

이런 언론들의 작태에 한겨레, 중앙, 동아 (SBS는 나름 중간을 지키며 정리를 했다.) 같은 주류 언론들이 놀아났다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이렇게 여러 매체와 사람들이 뒤늦게 기사를 검증하고 바로 잡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도 간혹 든다. 어차피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잘못된 지식을 접한 사람들이, 이후의 정정 보도 같은 것을 찾아 보겠느냐 본다고 자신들이 믿기로 결정한 정보와 그에 기반한 의사 결정을 철회할 의지가 있겠느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에 관해 쓰는 기자들을 위한 조언 같은 걸 좀 참고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안 읽을 것 같다.

인공지능이 언어를 개발했단다

타이틀 인플레이션

직함이 하늘 위로 치솟은지는 꽤 오래 됐다. 평범한 사장들 사이에서 ‘난 더 큰 회사 사장이니까 회장’이라는 게 생겼고, 회장들 사이에서도 ‘같은 규모지만 난 젊은 회장이니까 의장’이라는 게 생겼다. 그냥 평범하게 ‘손님’하고 불러도 되는 것을 ‘사장님’하고 불러줘야 하고, ‘고객’도 ‘고객님’이라고 불러줘야 하게 됐다. 좀 더 차별화되고 좀 더 우대 받는 느낌을 서로 주고 받다 보니까 호칭은 계속 더 있어보이는 걸로 인플레이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한 기사에서 1인 게임 개발자를 ‘아무개 대표’라고 써 놓은 것을 봤다. 세금이나 비용 처리, 투자 문제 때문에 개발팀을 출시 전에 법인화 하는 경우도 흔하고, 소규모 개발사라도 그렇게 대표라느니 하는 타이틀을 쓰는게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1인인데 ‘대표’라니.

보통 ‘대표’라는 단어는 ‘대표이사(CEO)’의 줄임이다. 법인 내에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이 있고, 그 이사들의 대표라는 뜻이라서 ‘대표이사’다. 한국에서는 개인 기업(개인사업자)의 ‘사장’이라는 개념이 기업으로 확장되어서 주식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회사의 소유권을 가진 것처럼 ‘사장’이라고 부르는게 일반적이었다가, 2000년대 벤처 붐에 따라서 뭔가 최신 기업인인 것 같은 이미지로 ‘대표’라는 호칭이 확산됐다. 그리고 이제는 그냥 어떤 단체의 리더격이면 ‘대표’라는 호칭을 쓴다.

하지만 1인 개발이라고 하는 건, 혼자 직접 기획/설계를 하고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고 직접 그림을 그리고 사운드도 직접하고 사업/마케팅도 직접 하고 뭐 그런다는 뜻이다. 일부 외주 아웃소싱을 통해서 해결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체로 일부 아웃소싱은 1인 개발이라고 봐주는 편이다. 어쨌든 이 개발팀에 실질 구성원이 혼자 뿐이라는 것인데, 뭐를 대표한다는 뜻인가.

내가 모범적이라고 보는 예는 대표적으로 한국에 SOMI 같은 분이 있다. 실명을 쓰기가 어려운 상황도 있고 하니까, 그냥 닉네임을 쓴다. 외국의 개발자들도 실명을 쓰기가 꺼려지면 그냥 닉네임을 쓴다. 1인 개발자라거나 소규모 인디 개발자에게 직함 같은 것은 원래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개발팀 인원이 세 명 있고 기획/설계, 프로그래머, 아트를 각자 나눠 하고 있으면서 ‘기획팀장’, ‘프로그래밍팀장’, ‘아트팀장’ 이렇게 나누고 그 중에 또 한 사람은 ‘대표’라고 타이틀을 쓰는 것 정말 웃기지 않나. 팀원 없는 팀장들이 곧 이사이고, 그 셋의 대표라서 대표라니.

뭔가 좀 웃기는 상황인데도, 그냥 서로 추켜주는 그런 기분 좋은 상황이니까, 좋은게 좋은 거니까 ‘응응, 그래그래’하고 넘어가고 있다. 그냥 서로 크게 한 번 비웃고 좀 정상적인 호칭이나 개념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

타이틀 인플레이션

베트남의 핫팟 요리, 러우(lẩu)

베트남 사람들이 매우 자주 먹는 요리 중 하나인 러우(lẩu)는 핫팟(Hot pot), 훠궈(火鍋, hǔogūo),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라고도 부르는, 냄비에 육수를 끓이고 채소와 고기를 담가 익혀 먹는 방식의 음식이다. 베트남에서는 주로 러우 혹은 핫팟이라고 부르고 간판도 핫팟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꽤 많다.

러우에 넣어 익혀 먹는 재료는 다양하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뿐만 아니라, 해산물과 생선, 개구리, 염소 고기 등을 주재료로 하고 버섯이나 당근, 감자 등 채소를 곁들여 넣는데, 대체로 주재료(고기) 하나와 채소류 여러가지라고 보면 된다. 보통 식당에서는 주재료와 약간의 기본 채소를 메뉴로 하고, 이외에 채소를 추가로 주문해서 넣어 먹는다.

보통, 국물을 주고 직접 끓이면서 재료를 이것저것 넣어야 하기 때문에, 찌개를 끓이는게 아닌가 착각이 들 때도 있지만, 기본 재료를 넣고 익힌 이후에는 거의 야채만 추가해서 살짝 익혀 먹는 방식이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러우의 남비(pot)는 일반 남비를 쓰기도 하고, 훠궈에 쓰는 태극 문양 같은 남비를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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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중국집에서 먹었던 훠궈, 소고기, 대추, 두부 등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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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를 주로 하고 다양한 버섯을 곁들인 러우

한국의 훠궈 그릇과 비슷하고, 훠궈와 마찬가지로 매운 국물과 단 국물로 되어 있긴 하지만, 훠궈처럼 말린 두부라든지 하는 것들을 넣지는 않는다. 또, 훠궈는 재료들을 넣으면서 우려내어 국물을 만들어 가면서 먹는다는 느낌이 있는데, 러우는 그냥 한 번에 다 넣고 끓인다.

좌측에는 경단과 베트남식 순두부가 보이고, 우측에는 얇게 썬 소고기가 있다. 베트남의 훠궈에 대해서 느낌을 좀 더 간단하게 말하면, 일단 국물을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딱히 순서 없이 아무 재료나 막 넣는 것이랄까… 다 건져 먹고 나면 또 아무거나 막 더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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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토막들을 다양한 향채와 곁들인 러우

그리고 이 러우의 특이한 것이라면, 왼쪽의 소면(bun)을 각자 앞 그릇에 조금 담고, 러우 국물을 옮겨 섞어 말아 먹는 것이다. 국수 같기도 하지만 국물이 독특한 맛이라 가게마다 다른 맛이 난다. 말하자면 러우 요리집은 이 국물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아무래도 핵심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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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를 주로 하고 각종 오뎅과 채소를 곁들인 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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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잡고기를 주로 하고 감자와 버섯을 곁들인 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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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를 주로 하고 채소를 곁들인 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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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고기를 주로하고 토마토와 채소들을 곁들인 러우

여기저기 러우에 대한 글들이 있는 걸 봤는데, 죄다 한 커뮤니티의 글을 복사해 옮긴 수준이라 내가 먹으면서 찍은 사진들로 한 번 엮어봤다.

베트남의 핫팟 요리, 러우(lẩu)

베트남의 도로명 주소 체계

베트남의 주소 체계는 정말 찾기 쉽게 되어 있다. 이곳 도로의 모양이 서양처럼 사각형으로 규격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도로에 건물이 나뭇잎처럼 붙어 있는 개념이라서 도로에서 몇 번째 건물인지만 표시를 하는 식인데도 찾기가 상당히 쉽다.

간단한 예시를 그려봤는데, 실재하는 주소는 아니고, 8월 혁명 거리(Đường Cách mạng tháng tám)을 둘로 쪼개서, 혁명 거리(Đường Cách mạng)와 8월 거리(Đường Tháng tám)이라고 임의로 만들어 봤다.

베트남 주소 체계

일단 저 주황색으로 쓴, 주 도로에 붙어 있는 13은 주소가 ’13 Cách mạng’이 된다. 짝수와 홀수로 도로의 좌측 우측이 나뉘어 있어서, 번지가 홀수네?라고 보는 즉시 왼쪽에 있구나 오른쪽에 있구나 알 수 있다. 왼쪽에서 접근을 하든(홀수가 증가) 오른쪽에서 접근을 하든(홀수가 감소) 거리도 대충 예상할 수 있다.

골목(hẻm)은 몇 번지에서 빠지느냐에 따라서 숫자가 붙는다. 말하자면 hẻm 13에 붙어 있는 건물이면, 주소가 ’13/2 Cách mạng’, ’13/17 Cách mạng’하는 식이 된다. 다시 hẻm 13에서 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게 되면, hẻm 13/6 골목이 되고, 또 순서대로 건물 번호가 붙는다. 그래서 맨 끝에 있는 건물이라면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내려가서 ’13/6/2/3 Cách mạng’이 되는 것이다.

결국, ‘큰 도로 → 골목 → 골목 → 골목 → 의 몇 번째 집’으로 주소가 되어 있어서, 어떤 도로에서 접근을 해야하는지가 마치 컴퓨터의 폴더 체계 처럼 정리가 되어 있는 거다.

일단 베트남 생활에서 이것만 알면 어디를 찾아갈 때 헤메는 일은 없게 된다.

베트남의 도로명 주소 체계

직업으로서의 게임 개발

게임 개발 커리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고, 나도 여기저기 여러 번 글을 쓴 적이 있다. 게임 개발을 하는데 뭐뭐를 배워야 하고, 뭐뭐하는 기술들이 필요하고, 또 뭐뭐하는 기술을 배우면 좋더라 뭐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여전히 게임 개발자가 되려는데 부모가 반대한다거나 이 직업이 좋으냐거나 하는 글들은 꾸준히 올라오고 답변도 반복된다. 매년 젊은이들이 자신의 인생 진로를 고민하면서 반복해서 묻고 있으니까.

그래서 기획자(게임 디자이너) 관점에서 게임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글을 한 번 써 봐야겠다고 상당히 오래 벼르다가 이제서야 착수를 한다.

게임 개발 커리어 시작

일단 게임 개발에 관련이 있는 파트는 다양하다, 기획(게임 디자인)도 이미 마케팅적 관점이나 사용자 편의 관점, 내러티브 중심이나, 부분유료화 등의 사업화 관점, 게임 메커니즘에 대한 관점이나 기술적 관점을 가진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활동하고 있고, 작은 회사에서는 올라운드(all-round)를 하지만, 좀 큰 회사가 되면 각자의 장단점에 따라서 업무가 갈리기도 한다.

이런 ‘관점’은 결국 각 디자이너의 배경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본다. 대학에서 전공했던 것에 의해서 갈리기도 하고, 개발을 하다가 관심 가는 분야를 공부하다가 갈리기도 한다. 애초에 ‘난 뭐를 좋아하니 뭐를 해야겠다’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살다보니 그거 말고 더 잘하는게 발견된다거나 해보니 내가 생각보다 소질이 없다거나 해서 더하고 빼고 하다가 나중에 남는게 내 분야가 되는 식이다.

그래서 게임 개발에서 대학 전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전공이 컴퓨터든, 게임 개발이든, 미술이든, 역사든, 철학이든, 경영이나 마케팅이든, 심지어 법학이나 회계학 같은 것도 괜찮고, 생물학이나 화학 수학, 물리 같은 자연과학도 아주 쓸모가 있다. 게임 개발을 진로로 선택하는데 아아무 관계가 없다.

‘게임 개발 전공을 하고 싶어요’라는 것도 그래서 장단점이 있다. 게임 개발 방법을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확실히 개발 실무에 대해서 일찍 접하고, 같은 신입이라도 바로 쓸모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장점이 된다. 반면 자신의 특수한 고유의 분야가 아직 확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똑같은 판타지 배경에서 싸움질하고 공성전하는 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디자이너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묘사가 달라질 수 있는데, 그런 개발 철학을 만드는 건 개발 기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개발자로 살면서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copy & paste) 컴퓨터든, 게임 개발이든, 미술이든, 역사든, 철학이든, 경영이나 마케팅이든, 심지어 법학이나 회계학 같은 것도 괜찮고, 생물학이나 화학 수학, 물리 같은 자연과학도’ 게임 개발 일을 하면서 계속 배워야 된다. 요즘은 거의 모든 IT가 비슷하지만, 게임 개발은 공부 안 하면 도태되는 업종이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기술은 영어다. 공부를 하려면 일단 뭘 배우려든지 영어가 가장 중요하다. 영어로 읽고 들을 수 있으면, 영어로 된 강좌는 검색만 하면 전세계에서 쏟아져 나온다. 동영상, 문서, 논문, 책 부지기수로 쏟아진다. 한국어로 된 문서는 그 중 5%도 안 된다. 최근 가장 범용 기술인 유니티만 해도 ‘unity tutorial’은 126만 개가 검색되는데, ‘unity 강좌’는 20만 개가 나온다. 아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구현 부분의 궁금증을 찾을 때는 특히 더 심각해진다, 찾는 내용이 한국어 문서로는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전공은 취업을 할 때 별로 차이가 없다. 신입을 뽑는데는 딱히 어떤 특별한 기준이 있지 않다고 본다. 공채가 있는 회사들은 내부 기준이 일단 뚜렷해서 뭐라 말하기 어렵고, 회사마다 학벌/학력을 보기도 하고, 실무적 활용을 요구하기도 하고, 또 어떤 회사는 그냥 ‘열정만 있으면 뽑아서 가르치면 되지 뭐’라는 생각으로 뽑기도 한다.

문제는 ‘열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내보이고 증명하느냐 하는 것과 열정이라는게 있는게 좋으냐 하는 부분이다. 열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신입도 있고, 열정이 있으니까 월급을 적게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장도 있다. 난 둘 다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근무 시간에 열정적으로 일 하고, 일찍 퇴근해서 공부를 하든 데이트를 하든 하는게 좋다고 본다.

하지만 게임 개발은 결국 직업이다.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부를 많이 해야하는 직업이다. 항상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하고, 최신 기법/기술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게임도 해보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배우고 걸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게임을 좋아하느냐 아니냐는 게임 개발자로써 성공하느냐 아니냐와 관계가 없다. 일단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게임 개발에 관심을 가질 확률이 높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게임 개발을 좋아하는 쪽이 더 이 직업에 유리하다.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깨닫지만, 게임을 즐기는 것과 개발을 즐기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구현이 안 되는 부분을 풀어냈을 때 희열을 느낀다거나, 다른 개발자들이 하지 못한 것을 성취했을 때 즐거운 사람들. 성취와 달성이라는 관점에서 ‘완성’이라는 큰 목표보다 더 세부적이고 미시적인 부분에서 성취를 느끼는 사람들은 게임 개발에 재미를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직업적으로도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게임 개발에 대해서 기성 세대들은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젊은 세대들은 부러워하는 직업인 경우가 많다. 외부에서 보면 마치 놀면서 돈을 버는 직업이라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뭔가 일을 하는게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혼자서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게 아니라면) 일단 조직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하는 스트레스는 일반 회사나 크게 다르지 않고, 업무 성과나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결과를 뚜렷하게 보여낼 수 없는 부분도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조직에서 직업인으로 생활하게 되면 다른 직장 생활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일반 기업처럼 보수적이고 경직적인 면은 덜하겠지만, 어쨌거나 직장은 직장이라는 걸 염두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게임 개발이 다른 직업에 비해서 장점이라는 것은, 요약하면,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냥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월급을 받는 직업이다.

간혹 착각하는 것

게임 회사는 출퇴근이 자유롭다거나 일이 안 되면 놀 수 있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1. 요즘의 대부분 회사들은 출퇴근을 엄격하게 지키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쪽이 훨씬 생산성이 높다는 공감대가 생기고 있다.
  2. 일이 안 되면 자유롭게 늘어지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데드라인이 옮겨지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 업무에 대한 결과물이 확실히 나올 수만 있다면, 자기 시간을 좀 여유롭게 쓸 수는 있을 것이다.
  3. 컴퓨터를 사용하니 업무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2로 수렴한다. 노는 걸 보고 뭐라지는 않지만, 마감은 변하지 않는다.
  4. 양복은 입지 않아도 된다, 면접에서든 출근에서든. 공채 면접의 경우에는 양복을 입는 경우가 있고, 이게 좀 더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에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출근 복장을 강제하는 회사는 내가 알기로는 없다. 작은 회사들은 이런 부분에서 좀 더 자유로워서 반바지나 슬리퍼도 괜찮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통상적으로’ ‘사회가 용인하는 선’이라는 건 지켜야겠다.
  5. 게임이 대박 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뒤에 설명하겠다.

명백한 단점들

최근 크런치에 대해서는 크게 논란이 되었으니, 게임 업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많은 회사에 크런치가 있다. 크런치로 인해서 건강이나 인간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번아웃하거나, 과로로 쓰러지거나, 애인과 헤어지게 되거나… 한다.

업무를 너무 사랑해서 – 이것은 절대로 권하지 않는다 – 자기의 여유 시간을 전부 업무에 쏟아 붓는 경우도 간혹 있다. 퇴근해서 집에서 일을 한다거나 회사에서 명시적으로 야근을 금지하거나 수당을 제공하지 않는데 남아서 일을 한다거나 한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회사는 별도의 보상을 챙겨주지 않는다. 그리고 개발중인 프로젝트가 엎어지거나 뒤집어지거나 하는 것은 이런 노력과 아무 상관이 없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서 심신을 망치거나 한 것에 대해서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산재 처리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다. 스스로 인생을 망치지 말기를 바란다.

게임 업계의 급여 수준은 최근 5년 사이에 빠르게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는 경쟁적으로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작은 회사의 신입 연봉은 보통 2000만 원 수준을 주는 경우도 있다.

최저임금이 2017년 기준 6,470원이고, 연봉으로 계산하면 1630만 원 정도다. 최저임금 1만 원이 되었을 때 연봉이 2508만 원이다. 신입 연봉은 현재 기준으로 2500만 원이 최소한 되어야 하고, 3000만 원은 되어야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50인 이하 중소기업의 경우는 대부분 재무 구조가 열악해서 고용 자체를 줄이는 분위기가 있기도 하다.

보편적으로 포괄임금 계약을 한다. 포괄임금제로 연봉을 3000만 원 책정했을 경우, 48시간 정도(최대치)의 초과 근로를 포함했다고 보면, 실제 연봉은 2000만 원 수준이 된다. 초과 근로는 1.5배를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월 72시간분의 임금이 연봉에 포함된 것이므로, 월 250만 원 급여는 총 281시간의 시급이라고 계산할 수 있다. 즉, 연봉 3000만 원의 포괄임금은 8900원 시급을 받는 것이 된다. (포괄임금이 아닐 때는 3000/12/209 해서 시급이 1.2만 원이다.)

따라서, 포괄임금제 계약에서 초과근로는 자신의 연봉을 깎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포괄임금제를 하지 않거나, 계약에 포함되는 기본 초과 근로 시간을 줄이거나, 포괄임금제로 계약된 경우 가능하면 초과 근로를 하지 않는 쪽이 좋다. 포괄임금 계약은 회사 쪽에서는 피고용자의 성실을 의심하는 것이고, 노동자는 이를 가능하면 회피하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불신을 조장하게 된다. 결국 회사나 개인이나 매우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제도이기 때문에, 업계와 정치계에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폐지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연봉제 계약을 하거나, 프로젝트의 취소에 따라 정리해고가 쉽게 발생한다. 연봉제 계약은 마치 성과에 따라서 연봉이 크게 인상될 것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연봉의 인상 상한이 정해져 있고, 게임의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도 명시적으로 지급 약속을 하는 일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구두로 약속을 한 경우도 자의적으로 기분에 따라 지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전년의 개발 성과가 탁훨하다고 해도 연봉이 +50%, +100% 되는 일은 절대 없다.

반면, 개발중이던 게임의 프로젝트는 쉽게 취소된다. 시장의 방향이 달라지거나 예상 매출이 기대만하지 못하거나, 게임이 경영진의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팀장이 경영진에 개겼다거나 하는 등의 알 수 없는 객관적이지 않은 이유로도 프로젝트가 취소될 수 있다. 개발중이던 팀원들을 흡수해 줄 다른 팀이 있는 경우는 옮겨 갈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해고(권고사직으로 처리)를 한다.

인센티브라는 걸 기대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게임의 성공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대박’은 0.1% 수준의 확률로 발생한다. 그리고 이렇게 대박이 났을 경우의 인센티브 보상은 대부분의 회사가 명시적으로 계약에 포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게임은 정보재(information goods)라서 12개월간 천억 매출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마케팅비와 인건비를 뺀 대부분이 순이익인데, 인센티브를 10억도 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직급과 업무 참여율에 따라 차등적이므로, 대리급이나 말단급에서는 연봉의 100%는 커녕 월급의 100%를 받기도 쉽지 않다. 기대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게다가 게임 업계는 소위 ‘고용유연성’이 매우 높은 업종이다. 이 말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파리 목숨이라는 뜻이다. 2000년대 초반, IMF 이후로 처음 연봉제 계약이 도입되었을 때 IT 업계에서는 ‘능력이 있으면 다른 회사에 갈 수 있다’며 합리화를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보면 재취업은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맥이나 시장 상황에 영향을 가능성이 더 높다. 지금처럼 게임 업계의 고용이 매우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유연성’은 ‘자유로운 해고’이고 ‘어려운 재취업’이라는 말과 통한다. 아주 악마적인 기업이라면, 인센티브를 지급하기 직전에 해고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만성적 시간 부족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불안정한 고용이 가장 위협되는 부분이 된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자녀를 양육하는데는 돈이 꾸준하게 드는데, 불안정한 고용은 불안정한 수입이라는 뜻이고, 가족의 생계가 항상 위협되는 부분이다. 큰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아서 오래 다닐 수 있겠지만, 이것도 온라인 게임 시절의 이야기지 모바일 게임에서는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팀이 해체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또 달라졌다.

한정적인 시간을 일과 공부와 가족과 휴식으로 잘게 쪼개서 관리해야 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부족한 시간을 이렇게 쪼개 쓰다 보면 피로가 누적되고 건강이 악화되기가 일쑤다. 그래서 가능하면 야근은 하지 않는 쪽이 좋다.

난 야근을 하는 것보다 가족이나 친구과 시간을 쓰는 쪽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인생 마라톤

어차피 인생은 길다. 게임 개발자나 IT 종사자들의 최대 연령이 현재 40대 후반 수준이기 때문에, 그런 장기적인 관점에서 게임 개발이라는 커리어를 보는 이야기들을 거의 드물다. 예를 들어서, 게임 개발자의 노후나 은퇴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뭐 그런 것은 아직 생각할 때가 안 되었기 때문에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터널에서, 게임 개발은 하나의 선로에 불과하다. 게임 개발은 하나의 직업일 뿐이고, 내가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없는 때도 있는 것처럼, 내가 아무리 게임 개발을 하고 싶다고 해도 계속 게임을 만들 수 없는 때도 언젠가는 온다.

게임 개발이 정말 좋다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좋은 것을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자신의 건강이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된다. 맛있는 반찬을 초반에 다 먹어버리고 나중에 맨밥만 먹게 되는 수도 생기니까, 심지어는 반찬 그릇이 엎어질 수도 있으니까.

게임 개발을 30년, 40년,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 건강해야 하고, 생계가 안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게임 업계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젊은 개발자들을 싸게 착취해서 능력을 뽑아내고는 다 쓴 휴지심처럼 내팽겨친다. 그리고 새로운 휴지를 달고 열심이 뽑아 먹는다. 팔팔한 신입 개발자는 항상 넘치니까.

직업으로써의 게임 개발업이라는 것은 그래서 아직은 문제가 많다, 이것들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게임 개발자로써의 내 삶도, 후배들의 삶도 불안정하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자면, 게임 개발은 장기적 열정 착취를 토대로 성장해왔고 그렇게 가고 있다.

결코 직업으로써 좋은 선택이 못 된다.

직업으로서의 게임 개발

베트남의 일반 식문화

베트남 사람들은 보통 아침과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저녁은 친구들을 만나서 좀 거하게 먹는 그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걸로 보인다.

이 ‘간단’이라는 선이 어느 정도냐면 정말 간단하게, 밥에 반찬 하나나 두 개 정도를 놓고 먹는 식이고, 길거리에서 껌떰(cơm tấm)이라고 써 붙여 놓은 노점 밥집에서는 밥에 돼지갈비 하나 정도를 올려 놓고 먹는 식이다. 가게마다 약간의 야채를 더해 주는데, 주로 얇게 썬 오이나 채썬 무와 당근 초절임, 배추 초절임을 곁들인다. 혼자 사는 경우는 이걸 스티로폼 도시락에 넣어서 집에 가져가(mang) 먹는다.

지붕이 없는 노점들보다 지붕이 있는 실내는 가격이 약 2배 정도 비싸진다. 길거리의 밥집이 20~30K 정도라고 하면, 지붕이 있는 곳은 최소 30~50K 정도 한다. 물론 음식 수준도 조금 더 나아지고, 곁들여 먹는 반찬의 선택 폭도 많아진다, 당연히 반찬 개수마다 돈을 더 받는다.

친구들의 경우를 보면, 생선 조림 한 토막(15K)이나 개구리 볶음(20K), 두부 미트볼 조림(15~20K), 돼지갈비(20K), 15호는 족히 넘어 보이는 사이즈의 닭다리(20~25K) 같은 메뉴가 대중적이고, 반찬 조절을 실패하면 조림 국물을 부어 간을 맞춰 먹거나 생선 소스(느억맘: nước mắm)를 살살 뿌려 먹는다. 말하자면 반찬은 밥을 더 먹기 위해서 간을 맞춰주는 느낌이다. (나는 두부 미트볼 조림(đậu hũ xíu mại)을 너무 좋아해서, 항상 계란 후라이(옵라: ốp la: omelet)나 삶은 계란을 하나 더해 먹는데 보통 35~40K 정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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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미트볼 조림과 계란 후라이(Cơm đậu hũ xíu mại và ốp la)

저녁 쯤 되면 친구들을 만나는데, 보통은 요리 몇 개를 시켜서 먹고 마무리는 항상 러우(lẩu)라고 부르는, 한국에서 사부사부나 훠궈라고 하는 핫팟(hot pot) 요리를 먹는다. 해산물 요리집에를 가면 오징어, 게, 새우, 조개 같은 요리들을 몇 개 주문해서 먹고 마지막에는 해산물 핫팟으로 야채를 듬뿍 넣어 마무리를 하는 식이다. 그리고 계산은 전체를 그냥 1/n로 나눠서 하는데 보통 요리들이 한 접시에 60~80K 정도 하고 핫팟이 200K 정도 해서, 보통 각자 150K 정도를 나눠 내면 된다.

그런데 이런 베트남의 식사 문화를 보면, 결국 대체로 크게 두 부류가 되는 걸로 보인다. 앞의 언급처럼 먹는 것은 주로 젊은 세대들이 혼자 집에서 밥을 먹거나 서민 식당(껌빈전: cơm bình dân)에서 먹기 때문이고, 이것은 아마도 베트남의 인구와 경제 구조상 지방의 젊은이들이 독립해 도시(호치민)로 와 있는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원래 호치민에서 부모와 함께 살던 계층이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 집에서 여럿이 먹는 경우는 고기 조림, 국, 야채 볶음 등으로 반찬을 보통 서너 개는 해서 먹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젊은 혼자 사는 세대를 위해서 카레라이스 스타일의 덮밥도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서, 알아보니, 카레 블럭이나 카레 가루라는 것을 파는 곳은 없어 보이고, 심지어 이마트(emart Go Vâp)에도 카레 가루는 없는 것 같다. 일본식이나 일본에서 넘어온 한국식 카레라이스가 여기까지는 전파가 안 되었기 때문인 것 같고, 이런게 있는지 모르니 안 먹고 안 먹으니 제품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일단은 요즘 한국식 카레가 너무 먹고 싶었기에, 이마트에 간 김에 오뚜기 3분 카레를 몇 개 사 왔다.

베트남에 카레와 비슷한 류의 음식이 있나 찾아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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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스튜와 후띠우(bò kho hủ tiếu)

일단 보코(bò kho)가 있다. 보코는 아마도 프랑스 식민 시절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소고기 스튜(beef stew)를 말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 소고기 스튜에 바게트 빵(반미: bánh mì)을 곁들여서 찍어 먹거나, 면(hủ tiếu)을 말아서 먹는 것으로 한 끼 식사를 한다. 밥을 말아 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까리가(cà ri gà)도 있다. 보코와 비슷한 닭고기(gà) 카레(cà ri)인데, 이름은 카레지만 베트남식 닭고기 카레는 한국식 카레와는 다르게 묽은 편이고 모양도 건더기(감자, 당근, 고기)를 큼직하게 잘라 넣은 스튜에 더 가깝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밥에다가 얹어 카레라이스로 먹는다는 느낌보다는 스튜의 걸죽한 국물에 말아 먹는 느낌이다.

보코는 꽤 저렴한 음식이라 대략 15~20K VND에 반미 개당 10K 정도 해서, 30K 정도면 밥을 먹을 수 있고, 서민 식당은 밥 15~20K, 반찬 개당 10~20K 정도로 되어 있으니, 만약 한국식 카레라이스를 만들어서 판다면 대략 30~40K 정도가 적정선일 것 같다. 한국식이라는 프리미엄을 붙여도 50K를 넘어가는 건 좀 무리로 보인다.

헛소리는 그만 하고 카레라이스나 먹어야겠다.

베트남의 일반 식문화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중

지대 즉 토지의 가치는 토지의 생산성이나 유용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대는 결코 생산에 어떤 도움이나 이익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결과물 중 일부를 확보할 수 있는 힘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토지가 갖고 있는 생산력과는 전혀 관계 없이 토지는 누군가가 그것을 사용하는 특권을 얻기 위해 노동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노동의 결과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지대를 만들어낼 수 없고, 가치도 없다.

지대란, 간략히 말하자면 인간의 노력이 만들어낼 수도 없고 증가시킬 수도 없는 자연적 요소를 사유권의 대상으로 만든 것에서 발생한, 독점의 대가인 것이다.

우리들의 문명이 왜 불평등하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도 아니고, 생존에 필요한 물자에 대한 인구의 압력도 아니다.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가장 큰 원인은 토지 소유권의 불평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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