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주세요(Paper, Please)

가상의 국가에서 뺑뺑이에 당첨되어 이민국 심사관이 된 주인공. 한 명을 심사할 때마다 $5를 받아 6시가 되면 집에 돌아가지만 집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처자식과 장모님, 삼촌. 생계를 위해 하나라도 더 많은 심사를 해야한다는 압박과 정확하게 심사하지 못하면 딱지를 끊게 되고 딱지가 누적되면 그 심사비를 받을 수가 없게된다는 압박. 꼼꼼하게 피심사자의 서류와 인적 사항들을 검토해서 ‘입국 허가’ ‘입국 불가’ 도장을 찍는 그런 게임이다.

저 요약 안에 게임의 기본 요소가 다 들어있다. 플레이어는 하루가 끝날 때마다 가족들의 상태에 따라서 그날 받은 돈을 식비나 난방비, 약값 등에 분배해야 하고, 심사를 좀 더 빠르게 하기 위한 업그레이드도 내 돈으로 해야한다. 이 와중에 심사관을 어떻게든 속여서 통과해보려는 피심사자들의 온갖 꼼수와 청탁, 사기, 타협에 응할지 말지도 계속 고민하게 한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이 폭압적인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고 점점 더 많은 갈등과 간섭 요소를 만나게 된다. 기자증 하나로 입국을 하려 하면서 “나 기자야!”라는 놈부터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비밀 결사’ 조직의 접촉, “제발 통과만 시켜주면 돈을 주겠다”며 절박하게 살려달라고 말하는 사람, ‘입국 불가’ 도장을 받고 망연자실해서 “난 이제 죽었다”며 돌아가는 사람까지. 놀이로써의 게임이 아니라 어떤 정치 시스템 아래에서 인간이 느끼는 갈등 요소들의 셋트다.

시스템 자체는 좀 더 편하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름을 찍으면 모든 서류의 이름이 한 번에 매치되어 보이거나, 서류에 찍힌 도장이 진짜인지 아닌지, 여건은 위조가 아닌지 더 쉽게 볼 수 있게 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 게임은 그 심사를 게임의 한 과정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로 만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게임은 단순하게 심사 과정을 그냥 지나가는 절차로써의 심사가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의 밥줄, 목숨줄이 걸린 진지한 갈등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진지한 갈등 과정’이 과연 단순히 갈등이고 고역으로써 플레이어에게 전해진다면 이건 게임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여권 주세요’에서는 이 과정들을 플레이어에게 심각한 주제를 던져 주면서 갈등하게 하고, 그 안에서 긴장과 퀴즈를 푸는 그런 재미로 풀어나가고 있다. 서류는 멀쩡한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얼씨구 얼굴은 남자인데 왜 여자야, 서류는 완벽한데 수배자야! 모든 서류들을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이 피심사자의 적합한 도장은 뭔지, 내가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없는지 그런 것들이 정말 깔끔하게 잘 짜여져 한 명 한 명 통과할 때마다 쾌감을 느끼게 만든다는게 이 게임의 최고 장점이다.

소위 ‘심각한 게임(serious game)’이라는 움직임이 있다. 국내에서는 단지 교육용이나 학습용, 체험 등의 게임을 부르면서 ‘기능성 게임’이라고 (다소 정치적인 의미를 넣어) 번역하고 있지만, 외국의 경우 이 ‘심각한 게임’들에는 정치나 인권, 전쟁 같은 소재를 채택해 현실을 보여주고 폭로하거나 문제를 개선하도록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형식의 게임이다. 물론 이 ‘여권 주세요’는 심각한 게임류로 보기에는 좀 어렵지만, 가상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독재와 인권 유린 등의 상황들에 대해서 한 번 쯤 생각하게 한다는 면에서 유사한 효과를 가진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게임이라면 가상의 독재 국가를 경영하면서 독재자가 얼마나 더럽고 자의적으로 국가를 경영하게 되는지를 엿볼 수 있는 트로피코 같은 게임이 있겠다.

물론 이 게임들이 실재 국가는 아니지만 가상의 소재를 가져와서 현실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묘사하고 비판하는 사례들이 영화나 다른 문화에서는 흔한 것을 비유해 보면, 이런 형태의 주제의식은 매우 환영할만한 부분이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했다고 요란한 ‘스카이 운지’라는 게임도, 커다란 맥락에서 같은 부류라고 볼 수 있다. 풍자와 희화라는 수단을 어떻게 활용하든, 그것은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테두리 안에서 허용되어야 하며, 이런 게임들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현실 참여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 나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스카이 운지’ 퀄리티는 좀 다른 면에서 대차게 까여야 하겠지만…

관련해서, PPSS에 오랫만에 좋은 글이 올라왔다: 노무현 희화화 게임 ‘스카이 운지’ 무엇이 문제인가?

여권 주세요(Paper,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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