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장과 거래소

WOW가 등장하기 전의 아이템 거래를 생각해보면 정말 ‘난장판’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리니지의 아이템 판다, 산다 채팅 메시지로 게임을 하기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던 기억이 있는데, 에버퀘스트는 한 술 더 떠서 특정 지역에 플레이어들이 시장을 형성하고 서서 공개 채널을 통해 “[WTB]~~아이템 구합니다” “[WTS]~~아이템 팝니다” 하는 채팅을 수도 없이 올려댔고, 이 시장이 있는 지역에 들어가면 게임 메시지보다 거래 스팸으로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다른 게임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구매자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 서버의 온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했던 울티마 온라인이나, 지도에서 검색을 통해서 상점 광고를 찾았다고 해도 거기까지 가기가 너무 힘들었던 스타워즈 갤럭시(Star Wars Galaxies), 개인 상점들로 난장판이 되는 리니지2의 마을이나 라그나로크의 마을을 되새겨 보면 경매장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발상이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아이템을 한 곳에서 거래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경매장(혹은 거래 중계소)는 하지만 판매자와 구매자 누구에게 편하게 되어 있느냐는 관점에서 크게 몇가지 형태를 만들 수 있다.

WOW, 워해머 온라인(Warhammer Online) 같은 게임들이 지원하는 경매장은 구매자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최저 가격과 최고 가격이 설정되어 있고, 최저 가격으로 입찰하면 다른 플레이어와 경쟁을 통해 물건을 사게 된다. 필요한 물건을 검색해서 경쟁자가 많은 물건을 피해 최저가가 가장 낮은 물건에 입찰하거나 급하다면 최고 가격으로 즉시 구매를 할 수도 있다. 다르게 말하면, 구매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코난의 시대(Age of Conan)나 아이온과 같은 거래소는 판매자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구매자는 물건의 가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올라와 있는 매물의 가격에 구매한다/안한다의 선택권만 가지고 있다. 오히려 판매자가 직접 가격을 결정해서 원하는 가격에 항상 판매할 수 있고, 구매자가 없으면 가격을 내리는 것도 판매자의 선택이다. 아무리 인기 있는 품목이라도 판매자가 가격 책정에 실수했다면 손해를 보기도 한다.

두 방식이 모두 장단점은 있다. 문제는 경매 방식이 MMORPG의 특성상 플레이어가 시간을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걸 간과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구매자는 일주일 뒤에 경매에서 승리해서 아이템을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판매자는 일주일 정도 넉넉히 경매를 진행해서 제 값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면에서는 중계소 쪽이 좀 더 유리하다.

하지만 이 두 방식 외에 이브 온라인(Eve Online)이 사용하는 호가 방식이 있다. 판매자는 판매 가격을 올리고 구매자는 희망 구매가와 함께 예치금을 올린다. 누군가가 급히 팔아야할 때는 구매 호가에 맞춰서 팔 수 있고 구매자는 매물이 올라온 가격을 보고 구매하거나 급하지 않다면 구매 호가를 올려놓을 수 있다. 그렇다. 주식 거래와 같은 방식이다.

이 방식은 국산 MMORPG인 거상에서 도입해서 호평을 받은바 있지만, 거래의 난이도가 조금 높은 편이라 플레이어에게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매물을 올리는 방법이나 구매 호가를 등록하는 방법이나.

아이온이 저 장단점을 모두 분석해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거래소 방식을 채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아이온이 (게임 공간을 그렇게 지저분하게 만드는) 개인 상점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기는 하다.

플레이어들은 적정 가격을 잘 모르는 바보들 뒤퉁수를 후려치기를 노릴 때 개인 상점을 이용하며, 사냥터에서 주구장창 잡템은 줍지 않고 값나가는 것들만 집으면서 수십 시간 ‘닥사(냥)’만 하는 플레이어들을 위해 봉혼석(리니지2의 그 데미지를 증가시켜주는 정령탄과 같은 기능)을 ‘찾아가는 서비스’로 비싸게 팔기 위해서 이용한다. 간혹 상대 진영과 의사 소통을 위해 상점의 간판을 사용하기도 하고, 서버 접속 대기자가 있는 서버에서 접속이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접속 유지용으로도 활용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난 라그나로크의 상인 클래스가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상점의 물건을 할인받아서 사다가 플레이어들에게 ‘상점보다 싸게’ 파는 것도 매력적이었고 플레이어들에게 잡템을 사서 NPC 상점에 비싸게 되파는 차익을 남기는 것도 훌륭했다. 다만 그 상인 클래스가 이 기술들을 배우기 위해서 필드에서 사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았지만.

개인 상점에도 장점 – 어디에나 상점을 열 수 있다 – 이 없지는 않지만, 개인 상점과 거래소는 서로 충돌하는 컨텐츠라고 보는 것이 옳다. 개인 상점이 활성화되면 매물은 사방 팔방으로 찢어져 존재하게 되고 구매자들은 거래소에서 찾는 물건을 구하기 쉽지 않으므로 거래소가 죽는다. 그래서 마비노기의 하우징과 연계된 거래 게시판이 죽은 컨텐츠가 되는 걸 설명할 수 있다. 반대로 거래소가 활성화되면 개인 상점에서 물건을 찾기 보다 거래소에서 가격을 비교하며 일목요연하게 구매하는 쪽이 유리하게 된다. 아이온의 경우가 그렇다.

  •  찾아보면, 경매장이나 거래소가 없이 개인 상점 방식에도 대안은 있다. 어떤 게임의 경우는 개인 상점들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게임이었는지 확실히는 기억이 안난다.) 플레이어는 검색을 통해 적정 가격의 아이템을 종류별로 검색할 수 있었고, 이 상점의 위치까지 검색 결과로 나온다.

 하지만 이 거래를 중계하는 장소(경매장이던 거래소건)는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할 것이 있는데, 구매자의 편의다. 기본적으로 물건을 검색하기 용이해야 하고 여기에는 자신의 레벨이나 클래스에 맞는 물건을 찾기 쉽게 해주는 것과 가격, 기능 비교를 쉽게 해주는 것이 포함된다. 구매자가 편할수록 거래는 활발해지고 가격은 안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브 온라인처럼 거래 가격 동향까지 그래프로 제공한다면 금상첨화이고.

문제는 이런 컨텐츠를 설계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비교’라는 것이다. 다양한 게임의 같은 기능을 하는 컨텐츠들을 놓고 어떤 쪽이 유리한지를 비교하고 취사 선택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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