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스펙터가 말하는 것

“첫 번째는 플레이어의 힘입니다.” 스펙터는 설명했다.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말할 힘을 플레이어에게 주는가? 그 다음으로, 이 게임에 그동안 누구도 보거나 하지 않았던 것 한 가지가 있는가? 세 번째로 플레이어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했는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있게 했는가? 그리고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게임을 만들었는가? 플레이어를 생각하게 했는가? 제게는 이 네 가지가 성공을 규정합니다.”

“The first is player power,” he explained. ” Are you epowering players to tell a new story in collaboration? Next, have I delivered one thing in the game that nobody has ever seen or done before? Thirdly, have I allowed the player to see the world through the eyes of someone different to themselves – have I let them walk in someone else’s shoes? And have I made a game about something beyond what’s on the surface? Have I made them think? These are the four things which define success for me.”

– Warren Spector: “I couldn’t care less about maximising profitability”

그렉 코스티키얀(Greg Costikyan)이라든지, 피터 몰리뉴(Peter Molyneux)라든지, 이번에는 워렌 스펙터라든지 이 업계에서 수십 년을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항상 게임 메카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게임의 규칙이라든지 이야기라든지 하는 마이크로한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혜안이 있고 직관을 보여주지만,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야할 길이나 개발자로서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 네 가지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이 게임에 그동안 누구도 보거나 하지 않았던 것 한 가지가 있는가?”이고, 최근 가장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게임을 만들었는가? 플레이어를 생각하게 했는가?”라는 부분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면서 현실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게임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게임의 재미로 성공을 규정합니다.저는 재미가 쓸모없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제 스튜디오에서는 그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합니다. 의미가 없고 게임을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단어니까요.

라는 문단에 주목하는데, 사실 이게 왜 쓸모 없는 말이냐면, 재미는 게임의 가장 기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사는데 무엇이 중요합니까: 밥을 먹는게 중요합니다’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밥을 먹는 것은 일단 기본으로 치고 그 다음 것을 이야기 해야지, 밥 먹는 것에 집중을 하면 되겠는가 하는 뜻이다. 그건 다들 알고 있는 거니까 넘어가고, 다음 스텝을 이야기하자는 뜻이다.

워렌 스펙터가 말하는 것

우리가 아는 건 다 틀렸…나?

“Listening to Kristina made me realize that I hadn’t been having good ideas. I realized that I had been working with people who think too similarly to myself, who draw on the same cultural references (geek culture), who use the same game design theory that was developed mainly by (white, male) gamers for (white, male) gamers. I realized that I was stuck. This is what happens when everyone is the same as each other. We make boring things.”

– Video Games Are Boring: Maybe everything we know is wrong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컴퓨터라는 걸 구경해보지 못한 제3세계의 사람들부터 스마트폰으로 전화만 하는 사람들, 게임 속 세상을 구하는데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게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거나, 게임으로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까지도 있다. 대체로 게임 산업은 후자의 ‘믿음(mutual trust)’을 가진 사람들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피엔스’를 읽은 이후로 이 ‘믿음’이라는 개념으로 많은 것들을 해석하고 있는 느낌이지만, 아무렴.)

인용문의 브리(Brie Code)는 이 ‘믿음 밖의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사실 인류 전체의 통계로 보자면 이 게임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실제로 게이머라고 통계로 잡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십 분 ~ 이십 분 점심 시간을 비주얼드 같은 캐주얼 게임으로 시간을 때우는 정도 플레이 한다. 나나 우리처럼 하루에 수 시간 ~ 십여 시간 동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임교 신자’들 외곽의 세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판단을 해야할 것이다. 저 ‘불신자들’을 신자로 만들어 ‘진짜’ 게임에 빠지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신자들만을 위한 게임을 계속 만들 것인가.

사실 나는 게임으로 현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쪽이고, 그런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쪽이(되었)지만, 그런 영역의 게임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레벨’이라느니 ‘전투’라느니 하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거의 규칙만 존재하는 게임들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단순한 규칙들로 일정한 ‘플레이’를 거치면서 플레이어가 직접 생각하고 깨닫게 하는 쪽.

하지만 이미 신자들의 세상은 거대하고, 이만으로 충분히 이 현실 세계의 삶을 영위할 직업을 유지할 수 있다. 두 서로 다른 세상이 있는데, 한 쪽에서 다른 쪽을 보면서 ‘아 이 세계는 쓸모 없는 세계야’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브리도 이런 것을 어느 정도 깨닫고, 마지막 문단처럼, 이 두 세계의 브릿지가 될만한 새로운 일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겠지만.

우리가 아는 건 다 틀렸…나?

모바일 vs 콘솔

며칠 전에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내가 ‘PC와 콘솔 게임은 이제 계속 감소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가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다. 난 이걸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인데, 게임 플랫폼이 단지 모바일/타블렛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플랫폼(VR?)이 등장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한다.

이 자료는 닐슨의 원 자료를 IGN에서 2차 공개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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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 게이머 중 모바일/타블렛 게임을 하는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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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33:콘솔 39:PC 26이 현재 상황인데, 모바일/타블렛과 콘솔의 균형은 깨졌다고 보인다. 콘솔:PC:모바일(타블렛)이 거의 1:1:1인 상황인데, 모바일이 계속 증가세인 것이 갈수록 균형을 깨는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으로 보인다.

여기에 장기적으로는 VR, AR이 새 플랫폼으로 진입하면서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VR, AR을 기존 플랫폼(콘솔, PC)에서 ‘품어 안아’ 플랫폼에 내장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어쨌거나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면에서 새로운 플랫폼이라고 봐야지 않나 생각한다.

특히 AR은 요즘 모바일 장치에서 스마트폰의 카메라와 화상을 이용해 구현하고 있는 중이라 상당히 과도적인데, 여기서 기술과 노하우를 좀 확보한 뒤에 MS의 홀로렌즈(HoloLens)로 들어가는 쪽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MS가 홀로렌즈를 적극적으로 밀기 시작하면 파괴력이 상당할 것이다. 당장 실 사용기를 보면 좀 실망했다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공간 인식이나 활용이 좀 문제가 있는듯.

모바일 vs 콘솔

What about ‘permadeath’?

퍼머데스(permadeath)는 게임에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의 실패가 영구적으로 남는 기능을 말한다. 실패로 인해서 캐릭터가 사망한다면 되돌릴 수 없다(부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보통은 매 선택마다 강제 세이브를 하게 해서 플레이어가 되돌릴 수 없게 만든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 기능은 처음 로그가 시도한 이후로 넷핵 등 로그류 게임들(rogue-like games) 위주로 적용되다가 다른 게임들로도 퍼졌고, 스타워즈 갤럭시즈(Starwars Galaxies)에서 제다이 캐릭터에 처음 적용되었다가 이후 삭제됐던 일도 있다. 코타쿠에서 처음 로그에 퍼머데스를 넣은 의도에 대해서 인터뷰를 했다.

Some people find the ongoing debate over the definition of “roguelike” tiresome, but it provides opportunity to talk about which gameplay elements matter most to us. Does a roguelike need to be turn-based? Should you be limited to just one character, or can you control a party? Do the environments need to be randomized? What about “permadeath?”

“We need a different name from ‘permadeath,’” Rogue co-creator Glenn Wichman said. “When people talk about permadeath, they talk about us three being mean. ‘Oh, they wanted to make it extra hard, so they threw in permadeath.’ [But] permadeath is [just] an example of ‘consequence persistence.’ Do I read this scroll, do I drink this potion? I don’t know. It might be good. It might be bad. If I can save the game and then drink the potion and—oh, it’s bad—then I restore the game and I don’t drink the potion. That entire game mechanic just completely goes away. So that was a whole reason why, once you have taken an action and a consequence has happened, there’s no way to undo it. Permadeath is not the right name for that, so that’s my homework to all of you: come up with a better name.

“We were trying to make it more immersive by making things matter, but not to make it more painful,” added Toy. “It was really meant to make it more fun: ‘This thing matters, so I’m going to think about this.’”

“The good stuff is just as permanent as the bad stuff,” said Wichman.

– Rogue Creator Says We Need A Better Word For Permadeath, Kotaku

이 ‘영구적 사망(퍼머데스)’는 플레이어가 실패에 대해서 부담감을 가지게 만들어서 선택을 신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일반적인 싱글 플레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함으로 게임의 난이도를 뭉개고 ‘진행’ 자체에 의미를 갖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성취감을 제공할지는 몰라도 게임의 난이도나 경험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래서 세이브와 로드를 애초에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면 플레이어는 한 번의 선택 자체에 부담을 느끼게 되고 신중하게 된다. 반대로 부정적 효과라면 이 부담이 너무 커서 어떤 플레이어들에게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멀티플레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퍼머데스에 가까운 방식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유지되기는 하지만, 선택의 실패가 죽음으로 연결되고 일정한 시간/경험적 손실을 플레이어에게 부담지운다는 면에서 퍼머데스의 의도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전통적인 ‘싱글플레이 선호 게이머들’이 MMORPG나 멀티플레이 게임을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돌파의 경험’이나 ‘학살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플레이어에게 ‘쉽게’ 접근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게임들은 플레이어게 게임 공간 안에서 신중하게 자신의 행동의 결과(consequence)를 받아들이면서 ‘선택’ 자체를 즐기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퍼머데스는 아주 흥미로운 기능이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볼 가치가 있다.

What about ‘permadeath’?

How gamers become a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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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슨(Nielsen)의 조사 자료는 두 개로 쪼개져 있었는데, 이걸 하나로 합쳐 봤다. 일부 항목이 한 쪽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애초에 저 항목들은 질문을 안 했나?) 바이럴(viral)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의미가 있다. 그리고 모바일에서 스토어 피쳐링(featuring)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이렇게 볼 수 있는듯 하다.

How gamers become aware

크레딧잡

크레딧잡은 국민연금 가입 데이터를 통해서 기업의 종사자 연봉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였다. 국민연금은 소위 ‘4대 보험’중 하나로, 정규직 노동자가 당연히 가입(해야)하는 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이 국민연금 데이터를 보면 어떤 회사의 정직원 숫자(가입자)와 해당 직원의 연봉(소득) 구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데이터를 이용하면 법인명(회사 이름)을 가지고 직원들의 분포가 어떤지를 파악할 수 있게 역산할 수 있어서, 이를 기반으로 만든 사이트가 크레딧잡이다.

문제는 연봉 정보의 공개를 가지고 일부 기업들이 민원을 넣었고, 이에 따라 정보 공개를 중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직원의 연봉 정보 공개에 대한 부분을 가지고 기업들이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여긴 크게 세 가지의 관점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국민연금 납입 정보를 왜 기업의 민원으로 중단하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납입을 노동자 개인이나 기업이 자의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것은 국가가 법으로 보장/강제하고 있는 것이고, 정직원으로 취업을 하게 되면 당연 가입되는 것으로써, 심지어는 직업이 없어도 납입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민원 유무로 이 정보 공개가 중단된다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둘째로, 이 국민연금에 가입되는 연봉은 구간에 따라서 구분된다. 소득 금액의 범위에 의해서 납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연봉을 특정할 수도 없고 따라서 개개인을 특정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는 개인 정보와는 관계가 없고, ‘민원에 대응한다’는 부분은 어불성설이다. 연봉 정보가 어느 구간에 해당하는지를 파악할 수 없게 하려면 450만 원 쯤 월급을 줘서 정확하게 어딘지 파악 못 하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셋째로, 원래 기업들은 직원들의 연봉 공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다. 아주 간단하게 러프하게 비유를 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저 일 잘하는 사람(A)이 연봉을 100원 받는다.”, “저 일 못하는 사람(B)이 연봉을 200원 받는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원래 직원들의 연봉이 공개되지 않을수록 직원과 연봉 협상을 하는데에 유리하다. 애초에 이런 정보의 불균형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협상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직원 A든 B든 연봉이 공개되지 않아야 다른 직원의 연봉을 싸게 후려칠 수 있고, 부당하게 많은 연봉을 주는 직원의 정보를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연봉을 공개하는 것은 일종의 고용자(기업)-피고용자(개인) 사이의 신뢰 문제인 것이지, 이것을 공개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그리고 또한, 양자간의 ‘합의(계약)’에 의해 공개치 않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익명(개인을 특정할 수 없게)’으로 공개하는 것은 원래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런 연봉의 범위를 통계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 문제가 없는 일이다.

결론을 내자면,

한국은 역시 기업하기에 너~어어~무 행복한 나라라는 것이다. 직원들의 연봉 정보가 이렇게 공개되는 것도 ‘공단’에 압력을 넣어 멈출 수 있고, 법인세도 국가에서 계속 감면해주고, 국가가 기업에 해고의 자유도 계속 확보해주는 데다가, 심지어는 파업에 대해서도 불법으로 만들어주고 노동자 착취를 아주 편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나라다.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직접 도와주는 이런 나라가 전세계에 몇이나 있겠는가!

노동자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아니다. 국민으로 간주된 적이, (저들이 말하는) ‘건국’ 이후로 없었다.

크레딧잡

게임 문법과 ‘가상의 실재’

게임은 말하자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세계관의 공유’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세계관’이라는 것은 사피엔스에서 말한 ‘가상의 실재’와 비슷한 개념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창조한 일시적인 공간(instance world: 마치 MMO 게임 안에 존재하는 ‘인던’ 같은 공간)에서, 이 공간을 지배하는 (실재하지 않는) 규칙과 질서에 동의하고 빠져들어 이 규칙에 따라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다. 즉 게임이란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개발자와 플레이어가 합의한 가상의 공간이고, 이 공간에 플레이어가 얼마나 동화되느냐에 따라서 플레이를 지속할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

따라서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이 규칙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보는 즉시 이해할 수 있게’ 보여줘야 하고, 이 규칙에 따를 때 점수를 따르지 않을 때 패널티를 부과하는 것으로, 플레이어가 규칙 안에 존재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규칙은 대체로 이전에 존재했던 다른 게임들이 만들어낸 규칙이나 관념들을 승계한다. 예를 들면 투사체의 궤적(총알이 날아가는 것이 보임), 물약을 먹으면 회복된다거나, 캐릭터가 자신의 키보다 높은 곳으로 뛸 수 있다거나, 생명체에는 가시적이고 수치화된 HP가 있다거나, 착용한 아이템을 바꿔입거나 소지품을 확인할 때 시간을 멈출 수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규칙들은 현실의 규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각 게임 공간은 각 게임이 나름대로 만들어낸 ‘가상의 실재’가 있고, 이것은 다시 커다란 게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게임들끼리 서로 공유하는 ‘가상의 실재’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게임의 문법’이라거나 ‘게임적 표현’이라고 불러 왔다.

게임 문법과 ‘가상의 실재’

이익균점권

‘이익균점권’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장석준 선생이 <고래가 그랬어>에 기고한 글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눈에 띈 것이다.

옛날 헌법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단다. “제18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서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어려운 말들이 많지? 고래 친구들에게 친숙하게 바꾸면 이런 이야기야. “상품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회사들에서는 노동자도 이익을 공평하게 나눠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회장님을 위해 일을 해주고 월급을 받아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지. 노동자들도 회장님과 함께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고르게 나눠 가져야 한다는 말이야.

그래서 관련된 여러 글을 찾다가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1948년에 제정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 즉 제헌헌법에는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규정한 조항이 들어 있었다. 제헌헌법 제18조 제2항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서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익균점권’이라는 것은 물론, 노동자들이 노동의 대가로 단순히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한 임금 차원을 넘어서, 노동자는 기업 활동에 의한 성과를 자본가와 동등한 자격으로 고르게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규정한 조항인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되돌아보면, 제헌헌법의 이와 같은 조항은 실로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이 헌법조항이 실제로 현실에서 반영된 적은 없었다. 정부 수립에 이어 곧장 동족상잔의 대규모 전쟁이 터졌고, 휴전 이후에는 독재정권들에 의해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헌법의 핵심적인 요소는 끊임없이 무시되고 유린되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이익균점권’이라는 헌법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돼버린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신경이 쓰였던지 박정희 정권은 헌법을 개정하면서 이 조항을 아예 말소해버렸다. 그 결과, 일반시민들은 대한민국이 애초에 이러한 매우 ‘진취적인’ 조항을 가진 헌법 밑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살아왔다. 이 무지상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제헌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이 ‘이익균점권’ 조항이 건국 당시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단순히 외국의 헌법(들)을 베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시의 국회 속기록은 이 조항이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정파 사이의 여러 날 동안의 치열한 논쟁 끝에 성립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원래 이 조항을 주도적으로 제안한 이는 대한민국 초대 내각의 사회부장관이기도 했던 전진한(錢鎭漢)이었는데, 그는 처음에 노동자의 ‘이익균점권’뿐만 아니라 ‘경영참가권’까지 헌법에서 명시해야 한다고 제안·주장했다. 그러나 며칠 동안의 격렬한 토론 과정에서 ‘경영참가권’은 통과에 실패하고, 그 대신 ‘이익균점권’은 관철될 수 있었다.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물론 오늘의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친일파 지주계급 출신들이 압도적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경영참가권’이나 ‘이익균점권’ 등 매우 진보적인 아이디어가 공개적으로 제안되고 그것이 국회의사당에서 활발히 토론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노동자의 경영참가권은 끝내 부정되었지만, ‘이익균점권’ 조항이 성립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제헌국회의 모습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선진적인’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익균점권’이라는 아이디어는 근년에 우리사회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논의되다가 꼬리를 감춘 소위 ‘이익공유제’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이익공유제라는 아이디어에는 어딘가 대기업과 자본가의 눈치를 보는 왜소한 자세가 엿보이는 데 비해서 ‘이익균점권’ 개념에는 기업 활동의 결실을 나눠 갖는 게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논리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 개념을 제시한 전진한의 논리는 명쾌했다. 그에 의하면, “노동을 상품시하여 자본에 예속시키는 것은 고루한 사상”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는 ‘노력’을 출자했다는 의미에서 자본가와 다름없는 자본가이며, 따라서 이윤을 균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얼핏 매우 급진적인 좌익사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진한은 대한노총이라는 우익 성향의 노동자단체를 세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반공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반대했던 것에 못지않게 자본주의 독재체제도 거부하는 ‘자유협동주의자’였고, 무엇보다도 평생 참선수행을 계속한 ‘탈속’의 정치가였다.)

– ‘국가의 쇄신, 개헌, 용기‘, 뉴스타파 포럼, 김종철

또 이런 기사가 있다.

전진한(1907~1972)은 이승만 정권 초대 내각의 사회부장관이었던 인물로, 좌익계 노동단체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을 와해시키기 위해 조직된 우익계 대한노총에서 이승만 총재 아래 위원장을 지냈다. 이를테면 노동계의 이승만 대리인이었던 셈. 이런 인물이었건만 그는 건국에 대한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고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농민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판단해 제헌헌법에 ‘이익 균점권’을 밀어 넣었고 이에 맞춰 한국전쟁 와중에 노동쟁의조정법 등 하위 법체계를 만든다.”

“이는 유진오 박사가 만든 제헌헌법 초안에 대한 전진한의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담고 있는 초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경제 분야는 취약하다고 봤다. 이어 “농민과 근로대중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실현하지 않는다면 헌법 초안은 사문화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가 이익 균점권을 생각하게 된 배경이자, 보수 정치인들과 상공회의소의 집요한 반대를 물리치고 격론 끝에 관철시킨 이유다.”

– ‘제헌헌법 18조 ‘이익균점권’ 아시나요‘, 서울신문, 2011년 2월 16일자

그런데 이 조문(제정헌법 제18조)은 이후 개정으로 사라졌다.

이익균점권

포케몬 GO

  • 포케몬(Pokémon)이 위치기반서비스(Location Based Service)에 최적화되어 있는 IP(Intellectual Property)라는 것은 틀림 없다. 높은 인지도와 지역 탐색이 잘 어우러져, 그 동안의 위치기반 서비스들이 이뤄내지 못했던 플레이어들이 직접 이동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 그 동안의 위치기반 서비스들은 ‘게임 아이템을 얻으러 직접 이동을 하게 할 수 있나’라는 난제가 있었지만, 포케몬 IP가 결합하면서 ‘속초까지 휴가를 내고 가서 게임을 하게’ 만들었다.
  • 플레이어간 거래, 경쟁(결투), 지역 챔피언, 레이드 같은 기능들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매출과 수명은 쭉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최종적으로 아시아 서비스까지 열렸으므로(인도, 한국 제외), 서버 안정화는 최종 단계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 컨텐츠 1차 추가는 빠르면 8월 말에서 9월 초에 가능하려나.
  • 일단 LBS 게임이 극복해야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소셜이다. 옆에 있는 플레이어를 게임 안에서 보고 함께 할 수 있게 만들어야 게임의 수명을 길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거래나 결투가 들어가면서 이 문제도 해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이제 서비스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넘었고(7월 6일 출시), 전세계 서비스도 이제 아시아를 마지막으로 뚫렸으니, 초반에 오픈한 지역들은 슬슬 완만한 하향세가 되기 시작하겠다. 곧이어 8월 말이면 유럽까지도 같은 흐름이 될테니, 뭐라도 컨텐츠를 추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포케몬 IP는 반면 단점이 있다. LBS라고 하면 플레이어들의 오프라인 삶과 온라인 삶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이걸 통해서 현실의 상점 등이 마케팅에 활용해 돈을 벌 수 있다. 포케몬도 유인기를 뿌리는 방식으로 일부 상점들이 이미 하고 있긴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상점 주인들이 원한다면 상점에서 직접 설치를 하거나, 주변에 있는 사용자들에게 ‘우리 가게 번개 할인합니다’라고 공지를 날리거나, 근처에 온 사용자들에게 쿠폰을 뿌려서 유인하거나 등의 확장이 가능해야 하는데… 포케몬 IP는 불가능하다. 닌텐도가 허락할리가 없다. 결국 저런 활용이나 확장 없이 그냥 ‘포케몬 게임’으로 계속 가게 될 것이다.
  • 그래서 아마 예상되는 뻔한 기능들 외의 컨텐츠 확장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닌텐도는 IP에 굉장히 깐깐한 회사 중의 하나이고, ‘이런 기능은 세계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커트당하는 일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결국 예상되는 기능들만 오픈하고 내년 초반~중반께 적당히 사그라드는 코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지역 한정 몬스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인다. 북미, 유럽, 일본, 호주(아시아)로 넓게 나눠져 있다. 좀 더 공격적으로, 해외 여행의 기념품으로 포케몬을 잡아다가 친구들에게 주거나 팔 수 있는 식의 활용을 만드는게 좋지 않았을까도 생각하지만, 역시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 나이안틱도 그냥 인그레스 위에 덮어 씌워서 하면 플레이어들이 알아서 지지고 볶고 놀겠지 하는 정도까지만 생각했지, 이걸 LBS로서 어떻게 확장해야겠다 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그레스를 보면 애초에 LBS라는 기능의 활용은 관심이 없던 것 같다.
  • 포케몬 GO로 불이 붙은 한국의 지도 서비스 문제는 어쨌거나 결국 네이버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포케몬 한국 서비스는 모르겠다, 관심 없다.) 그리고 네이버가 해외 진출을 하지 않는 한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구글맵을 쓰고 한국에서는 네이버 지도를 계속 써야할 것이다. 반대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관광객들은 구글맵이 왜 이렇냐며 황당해할 것이고. 그런데 구글맵에 자기 나라를 공개한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안보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포케몬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