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균점권

‘이익균점권’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장석준 선생이 <고래가 그랬어>에 기고한 글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눈에 띈 것이다.

옛날 헌법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단다. “제18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서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어려운 말들이 많지? 고래 친구들에게 친숙하게 바꾸면 이런 이야기야. “상품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회사들에서는 노동자도 이익을 공평하게 나눠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회장님을 위해 일을 해주고 월급을 받아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지. 노동자들도 회장님과 함께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고르게 나눠 가져야 한다는 말이야.

그래서 관련된 여러 글을 찾다가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1948년에 제정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 즉 제헌헌법에는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규정한 조항이 들어 있었다. 제헌헌법 제18조 제2항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서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익균점권’이라는 것은 물론, 노동자들이 노동의 대가로 단순히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한 임금 차원을 넘어서, 노동자는 기업 활동에 의한 성과를 자본가와 동등한 자격으로 고르게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규정한 조항인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되돌아보면, 제헌헌법의 이와 같은 조항은 실로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이 헌법조항이 실제로 현실에서 반영된 적은 없었다. 정부 수립에 이어 곧장 동족상잔의 대규모 전쟁이 터졌고, 휴전 이후에는 독재정권들에 의해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헌법의 핵심적인 요소는 끊임없이 무시되고 유린되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이익균점권’이라는 헌법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돼버린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신경이 쓰였던지 박정희 정권은 헌법을 개정하면서 이 조항을 아예 말소해버렸다. 그 결과, 일반시민들은 대한민국이 애초에 이러한 매우 ‘진취적인’ 조항을 가진 헌법 밑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살아왔다. 이 무지상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제헌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이 ‘이익균점권’ 조항이 건국 당시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단순히 외국의 헌법(들)을 베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시의 국회 속기록은 이 조항이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정파 사이의 여러 날 동안의 치열한 논쟁 끝에 성립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원래 이 조항을 주도적으로 제안한 이는 대한민국 초대 내각의 사회부장관이기도 했던 전진한(錢鎭漢)이었는데, 그는 처음에 노동자의 ‘이익균점권’뿐만 아니라 ‘경영참가권’까지 헌법에서 명시해야 한다고 제안·주장했다. 그러나 며칠 동안의 격렬한 토론 과정에서 ‘경영참가권’은 통과에 실패하고, 그 대신 ‘이익균점권’은 관철될 수 있었다.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물론 오늘의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친일파 지주계급 출신들이 압도적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경영참가권’이나 ‘이익균점권’ 등 매우 진보적인 아이디어가 공개적으로 제안되고 그것이 국회의사당에서 활발히 토론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노동자의 경영참가권은 끝내 부정되었지만, ‘이익균점권’ 조항이 성립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제헌국회의 모습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선진적인’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익균점권’이라는 아이디어는 근년에 우리사회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논의되다가 꼬리를 감춘 소위 ‘이익공유제’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이익공유제라는 아이디어에는 어딘가 대기업과 자본가의 눈치를 보는 왜소한 자세가 엿보이는 데 비해서 ‘이익균점권’ 개념에는 기업 활동의 결실을 나눠 갖는 게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논리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 개념을 제시한 전진한의 논리는 명쾌했다. 그에 의하면, “노동을 상품시하여 자본에 예속시키는 것은 고루한 사상”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는 ‘노력’을 출자했다는 의미에서 자본가와 다름없는 자본가이며, 따라서 이윤을 균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얼핏 매우 급진적인 좌익사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진한은 대한노총이라는 우익 성향의 노동자단체를 세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반공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반대했던 것에 못지않게 자본주의 독재체제도 거부하는 ‘자유협동주의자’였고, 무엇보다도 평생 참선수행을 계속한 ‘탈속’의 정치가였다.)

– ‘국가의 쇄신, 개헌, 용기‘, 뉴스타파 포럼, 김종철

또 이런 기사가 있다.

전진한(1907~1972)은 이승만 정권 초대 내각의 사회부장관이었던 인물로, 좌익계 노동단체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을 와해시키기 위해 조직된 우익계 대한노총에서 이승만 총재 아래 위원장을 지냈다. 이를테면 노동계의 이승만 대리인이었던 셈. 이런 인물이었건만 그는 건국에 대한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고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농민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판단해 제헌헌법에 ‘이익 균점권’을 밀어 넣었고 이에 맞춰 한국전쟁 와중에 노동쟁의조정법 등 하위 법체계를 만든다.”

“이는 유진오 박사가 만든 제헌헌법 초안에 대한 전진한의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담고 있는 초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경제 분야는 취약하다고 봤다. 이어 “농민과 근로대중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실현하지 않는다면 헌법 초안은 사문화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가 이익 균점권을 생각하게 된 배경이자, 보수 정치인들과 상공회의소의 집요한 반대를 물리치고 격론 끝에 관철시킨 이유다.”

– ‘제헌헌법 18조 ‘이익균점권’ 아시나요‘, 서울신문, 2011년 2월 16일자

그런데 이 조문(제정헌법 제18조)은 이후 개정으로 사라졌다.

이익균점권

포케몬 GO

  • 포케몬(Pokémon)이 위치기반서비스(Location Based Service)에 최적화되어 있는 IP(Intellectual Property)라는 것은 틀림 없다. 높은 인지도와 지역 탐색이 잘 어우러져, 그 동안의 위치기반 서비스들이 이뤄내지 못했던 플레이어들이 직접 이동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 그 동안의 위치기반 서비스들은 ‘게임 아이템을 얻으러 직접 이동을 하게 할 수 있나’라는 난제가 있었지만, 포케몬 IP가 결합하면서 ‘속초까지 휴가를 내고 가서 게임을 하게’ 만들었다.
  • 플레이어간 거래, 경쟁(결투), 지역 챔피언, 레이드 같은 기능들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매출과 수명은 쭉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최종적으로 아시아 서비스까지 열렸으므로(인도, 한국 제외), 서버 안정화는 최종 단계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 컨텐츠 1차 추가는 빠르면 8월 말에서 9월 초에 가능하려나.
  • 일단 LBS 게임이 극복해야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소셜이다. 옆에 있는 플레이어를 게임 안에서 보고 함께 할 수 있게 만들어야 게임의 수명을 길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거래나 결투가 들어가면서 이 문제도 해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이제 서비스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넘었고(7월 6일 출시), 전세계 서비스도 이제 아시아를 마지막으로 뚫렸으니, 초반에 오픈한 지역들은 슬슬 완만한 하향세가 되기 시작하겠다. 곧이어 8월 말이면 유럽까지도 같은 흐름이 될테니, 뭐라도 컨텐츠를 추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포케몬 IP는 반면 단점이 있다. LBS라고 하면 플레이어들의 오프라인 삶과 온라인 삶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이걸 통해서 현실의 상점 등이 마케팅에 활용해 돈을 벌 수 있다. 포케몬도 유인기를 뿌리는 방식으로 일부 상점들이 이미 하고 있긴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상점 주인들이 원한다면 상점에서 직접 설치를 하거나, 주변에 있는 사용자들에게 ‘우리 가게 번개 할인합니다’라고 공지를 날리거나, 근처에 온 사용자들에게 쿠폰을 뿌려서 유인하거나 등의 확장이 가능해야 하는데… 포케몬 IP는 불가능하다. 닌텐도가 허락할리가 없다. 결국 저런 활용이나 확장 없이 그냥 ‘포케몬 게임’으로 계속 가게 될 것이다.
  • 그래서 아마 예상되는 뻔한 기능들 외의 컨텐츠 확장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닌텐도는 IP에 굉장히 깐깐한 회사 중의 하나이고, ‘이런 기능은 세계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커트당하는 일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결국 예상되는 기능들만 오픈하고 내년 초반~중반께 적당히 사그라드는 코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지역 한정 몬스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인다. 북미, 유럽, 일본, 호주(아시아)로 넓게 나눠져 있다. 좀 더 공격적으로, 해외 여행의 기념품으로 포케몬을 잡아다가 친구들에게 주거나 팔 수 있는 식의 활용을 만드는게 좋지 않았을까도 생각하지만, 역시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 나이안틱도 그냥 인그레스 위에 덮어 씌워서 하면 플레이어들이 알아서 지지고 볶고 놀겠지 하는 정도까지만 생각했지, 이걸 LBS로서 어떻게 확장해야겠다 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그레스를 보면 애초에 LBS라는 기능의 활용은 관심이 없던 것 같다.
  • 포케몬 GO로 불이 붙은 한국의 지도 서비스 문제는 어쨌거나 결국 네이버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포케몬 한국 서비스는 모르겠다, 관심 없다.) 그리고 네이버가 해외 진출을 하지 않는 한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구글맵을 쓰고 한국에서는 네이버 지도를 계속 써야할 것이다. 반대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관광객들은 구글맵이 왜 이렇냐며 황당해할 것이고. 그런데 구글맵에 자기 나라를 공개한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안보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포케몬 GO

삼성이 얼마 전 수직적 조직 구조를 개선한다고 하는 뉴스가 났다. 이렇게 댓글을 달았더랬다.

호칭이 조직의 경직이나 위계, 수직화를 만들고 있던 거였나보네요, 호칭 바꾸면 사내 분위기도 부드러워지고 조직의 경직성도 해소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잘 돌아갈 수 있다는 진단에서 하는 거겠죠?

그리고 어제, 조선일보에서 ‘삼성이 자기반성에서 간과한 것‘이라는 기사를 냈다.

지난 21일 삼성그룹 계열사에 일제히 방영된 사내방송 ‘삼성 소프트웨어 경쟁력 백서, 1부 소프트웨어의 불편한 진실’ 때문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이 3만2000명으로 구글의 2만3000명 보다 많지만 문제해결 능력으로 따지면 삼성 인력의 1~2%만이 구글에 입사할 수준이라는 내용이 나왔다.

그러나 삼성전자에는 하드웨어 제조사의 DNA로 꽉 차있다.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는 스마트폰이나 가전 완제품의 출시 일정에 맞춰 개발됐다. 신제품의 출시 주기는 반년 또는 1년 정도다. 촉박한 일정에 다듬어지지 않거나, 보완이 덜 된 서비스를 내놓기 일쑤였다. 2014년 해체된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인 미디어솔루션센터(MSC)의 실패 원인도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인사 제도가 악순환을 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원이 모든 소프트웨어 상품의 운명을 결정짓는 구조인데, 임기 연장을 걱정하는 임원들은 성과지표(KPI)를 우선시하기 마련이다. 신입 임원 교육이 끝나고 3월에 본격적인 개발 업무에 들어가면, 9월에는 끝마쳐야 한다. 10월부터 KPI 평가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고과용’으로 만든 소프트웨어가 나오게 된다. 해가 바뀌면 상당수의 임원이 갈리고 이전 소프트웨어는 유지보수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구조적, 총체적 문제는 어느 하나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은 ‘견제받지 않는 오너 중심 체제’를 버릴리가 없으므로 이 문제의 가장 큰 부분이자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문제를 개선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저것 만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그런 것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문제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답이 제대로 나올리가 있나. 정작 자신은 바꾸지 않으면서 가족 빼고 다 바꾸라는 이야기도 있긴 했구나. 거기에 비판도 있는데 이런 건 안 듣고.

한국 게임 산업에 대한 문제도 비슷하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있으니 ‘라면 정신‘ 같은 것이나 강조하는 글을 써제끼는 것이지.

게구리 논란과 게임계의 성 차별

여성 게이머는 원래 게임 안에서 잘 해도 욕을 먹고 못 해도 욕을 먹는다. 아니 플레이를 잘 한다 잘 못한다를 논하기 이전에 여성 게이머는 ‘보호의 대상’이거나 ‘뒤에서 힐이나 해’야하는 존재이고, 또 게임 플레이와 관계 없이 ‘누가 봤다는데 존나 예쁘더라’로 소비되는 대상일 뿐이다. 원래 그렇다.

대체로 여성 게이머들은 그래서 게임 안에서 성별을 밝히는게 좋은 일로 연결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성별을 밝히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전체 MMORPG 플레이어의 3~40% 가량은 여성이다. 하지만 게임 안에서 ‘명백히 여성인 플레이어’를 30%나 보고 있나? 아닐걸. 여성이라는 걸 밝혀봐야 인기가 있으면 여왕벌이 되고, 인기가 없으면 남자 꼬시려고 게임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이게 성 역할론, 성적 대상화로 연결된다.

게임 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전사라든지 미드라이너라든지)은 당연히 남성이 하는 것이고, 여성은 뒤에서 힐이나 마법을 쓰면서 1234 누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처음 롤을 시작하는 여성이 있다고 하면 의례껏 서폿을 시키는 것이고, 처음 MMORPG를 시작하는 여성은 의례껏 사제를 하게 한다. 이런 게이머들의 편견이 게구리 논란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여자가 이렇게 잘 할리가 없다’, ‘여자인데도 잘 한다’.

대체로 ‘~에도 (불구하고)’는 척박한 조건이라든지 환경에 대해서 붙이지만, ‘여자임에도 불구하고’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여자인 것이 척박한 조건이나 환경이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여자는 원래 게임을 못 하는 존재이지만, 넌 잘한다’는 말이다. 칭찬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구나’라는 말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상대보다 못 하는 것을 납득하는 말이다. 롤의 ‘Faker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선수라서 내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게 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선수이므로 내가 너보다 못 하는 것을 납득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건 현실의 성차별에서도 같다. ‘여자는 약하다’ 하지만 훈련 받은 군인이나 선수들은 나보다 강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존재라서 인정한다. 그리고 ‘어차피 걔들도 남자 군인한테는 진다’ 같은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여성 군인’이고 ‘남성 군인 보다는 약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성차별적인 사고는 어떻게 보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문화적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여자 애한테 무슨 공부를 가르쳐’라는 부모들이 6~70년대 결혼한 내 부모들이었고, ‘여자는 결혼이나 잘 하면 되지’라는게 지금의 부모들이다. 달라진게 없다. 지금의 청년들은 이걸 그대로 물려받아 ‘여자들은 취집이 있잖냐’는 말을 흔하게 내뱉는 상황이다. 어쩌면 더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체화되어 있는 성차별적 사고를 어떻게 인지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사회는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이게 무슨 성 차별이냐’고 반발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이런 충돌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사실 이 세계는 ‘남성이 만든 것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만들어 왔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남성의 성취만 기억할 뿐, 여성의 성취에 대해서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기억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에서 여성의 이름은 사라진다.

여성은 흑인보다도 투표권을 늦게 가질 정도로 노예에 가까웠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지금도 편견들에 의해 사회의 진출을 제약당하고, 성취를 약탈당하고, 무시당하며 멸시당하고 있다. 그러지 말자. 여자가 게임을 잘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여성이 게임 안에서 편하게 게임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또한 페미니즘이다. 그리고 그건, ‘게임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남성들이 해야할 일이다.

마치 거실에 혼자 앉아 게임을 하다가, 여자친구에게 앉으라며 옆으로 살짝 비켜 앉는 것처럼.

게구리 논란과 게임계의 성 차별

붉은 여왕 가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붉은 여왕 이야기가 나온다. 선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달려야만 하는 그런 상황인데, 진화학에서는 이를 이용해서 ‘붉은 여왕 가설(Red Queen hypothesis)’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냈다. 말하자면 계속 진화를 하지 않으면 생존 경쟁에서 밀려 죽는다는 것이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같은 곳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인간의 역사라는 것도 비슷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계속 공부하고 사고하지 않으면 멈춰 서고 뒤쳐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보는 수 많은 ‘정신 빠진 노인들’이 60년대의 사고로 현대의 청년들과 대화를 하는 모양새가 딱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젊은 시절 이후로 사고를 멈춘 것이다.

같은 견지에서 지금의 청년들을 볼 때도 비슷하다. 이미 사고를 멈춘 자들과 나이가 40인데 90년대의 사고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도처에 있다. 각각 40년 20년 뒤가 되면 저들이 현재의 ‘정신 빠진 노인들’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 하겠나.

계속 공부를 하고 사고를 해야 한다. 뉴스를 볼 때마다, 사건을 접할 때마다, 주변의 상황과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다양한 매체와 다양한 이야기들을 보고, 그것이 현재 학술적으로는 어떻게 연구가 되고 있고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를 계속 추적해야 한다. 바쁘다, 60년대의 과학 철학 사회 분야에 비해서 지금은 백 배 천 배는 많은 분야를 공부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자신이 아는 분야에서만이라도 첨단의 지식과 판단력을 유지해야 한다.

사고를 멈추면 그것은 이미 죽는 것이다.

붉은 여왕 가설

뉴스 미디어의 변화와 게임

지디넷에 올라온 “WP의 베조스 효과…”격식 깨고 기술 입혔다라는 기사를 읽는 중에 제프 베조스의 이런 발언 이야기가 나왔다.

“그 동안 우린 상대적으로 소수 독자를 확보한 뒤 독자 한 명당 많은 돈을 버는 방식으로 해왔다. 하지만 앞으론 많은 독자들을 기반으로 독자 1인당 적은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
– 제프 베조스(Jeffrey Preston “Jeff” Bezos)

게임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어떤가. ‘그 동안 우린 상대적으로 소수 게이머를 확보한 뒤 게이머 한 명당 많은 돈을 버는 방식으로 해왔다’라고 바꿔도 문제가 없지 않은가. 이 구조를 바꾸는데는 (현재의 내가 보기에)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듯 하다.

  1. 고객 확보 비용
  2. 대중적 콘텐츠
  3. 맞춤 전략

게임도 뉴스와 마찬가지로 고객 확보 비용에서 유사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 보인다. 일단 게임을 시작하게 하는데 뉴스는 페이스북 등의 바이럴 링크를 활용하고 있고, 게임은 주로 미디어 광고나 바이럴을 활용하고 있는게 약간 다른 부분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고 본다. 또한 콘텐츠의 대중적인 접근성(뉴스 기사의 수준 vs 게임의 난이도 등) 면에서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기사의 ‘고객 참여 깔대기 원칙’ 중 깔대기 상층(우연한 방문자)의 매출 구조는 광고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이들은 방문했다가 지나가는 고객이므로 현재 지불 의사를 가지고 있는 고객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콘텐츠에 매력을 느끼고 ‘정기 방문자’ 이상으로 이동하게 될 때는 구매 가능성을 가진 진짜 고객이 된다. 그러면 여기서부터는 광고의 비중이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낮춰줘도 되지 않을까.

여기서 문제는 이 고객이 ‘우연한 방문자’인지 ‘정기 방문자가 첫 방문자’인지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이 고객의 행동 패턴을 분류하고 이전 모델(분석 결과에 유사한 모델)에서 ‘정기 방문자가 된 고객’들에 합치된다는 걸 빠르게 판단하고, 거기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핵심 임무를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 한 가볍게 처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 댄 케니디(Dan Kennedy)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고객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근했을 때 기본적으로 광고 모델을 적용해서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이 고객이 어떤 고객인지를 빨리 분석해서 하층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동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를 판단하는 것이 ‘첫 구매’를 용이하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고객이 살 의지를 가질만한 제품을 빠르게 분석해서 제공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업계의 모든 통계를 봤을 때, ‘한 번 산 고객은 다시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단 ‘첫 구매’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미디어 전체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은 어떻게 바뀌어야할 것인가. 그런 생각으로 이어진다.

뉴스 미디어의 변화와 게임

운동 집단에서 여성의 위치

이 내용은 넷플릭스의 <She’s Beautiful when she’s angry>라는 다큐멘터리 중 발췌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60년대 형성하기 시작한 당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당시 활동가들이 직접 구술로 회상하고 있다. (관련 기사, 영문)

Fran Beal: 그 당시에 있었던 모든 사회적 변화 운동은 결국 여성 운동으로 귀결됐어요. 그들은 여성의 의식화를 높이고자 했죠. 동등한 환경에서 활동하기 위한 필요성이요.

Ruth Rosen: 시민권 운동의 일원으로 반전 운동의 큰 부분을 맡았어요. 버클리 대학원 시절이었죠. 뉴레프트 조직 여성은 직접 느끼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Susan Griffin: 상대적으로 여성은 상당한 차별을 받고 있었죠. 남자들은 이름이 알려졌고 연사가 되기도 했죠. 우린 편지 봉투 풀칠 같은 걸 했죠. 고된 일은 우리가 했어요. 우리가 실제 일(ground works)은 다 했죠. 종종 실제 조직화하는 일도 했어요.

Heather Booth: 전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 연합(SDS) 집회에서 토론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조직의 리더였죠. 조직의 한 남자가 ‘닥치고 찌그러져’ 이러는 거예요.

Marilyn Webb: 우린 SDS 내에서 여자로서의 고유 역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왜 우린 지도자 위치에 있지 않은 거야? 그때부터 모든 사람에게 인식의 스파크가 일어났어요. (아하)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도 불안하구나.

닉슨의 선거를 저지하는 반전 데모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여성 자체적으로 집단을 만들기로 했죠. 그리고 자체 운동을 선언했어요.

Ellen Willis: 마릴린 웹이 무대에 올라 수많은 뉴레프트(주: 신좌파) 남자들 군중 앞에서 연설을 시작하려고 했어요.

Marilyn Webb: 제가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군중들이 미쳐 날뛰었죠.

Ellen Willis: 남자들은 휘파람과 야유를 퍼부었어요. 그리고 ‘무대에서 끌어내려 떡이나 쳐라(Take her off the stage and fuck her)!'(같은 소리를 질렀죠.(자막 누락))

Marilyn Webb: 군중들이 소리쳤죠 ‘구석에 데려가 떡 쳐라(Fuck her down at dark alley)!’ 그건 마치 미친 군중들이었어요.

Ellen Willis: 우린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어이가 없었죠… 뭐야?

Marilyn Webb: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할 거라 생각도 못 했어요. 충격받았죠. 흑인 조직도 있고, 저소득층 부녀 조직도 있고, 우린 여성을 조직했는데 다들 이걸 전체 운동의 또 다른 줄기로 봤죠. 하지만 우리는 대접받지 못했어요. (09:20~11:50)

저기서 나오는 60년대 당시 미국 ‘신좌파’들의 행동과 이후 모습은 80~90년대 한국 운동권 진영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다큐멘터리 뒷 부분에는 신좌파들이 페미니즘 운동에 어찌할바를 모르는 모습들도 비춰진다.) 그리고 저 모습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변한게 전혀 없다고 보인다는게 슬픈 지점이다.

심지어 이제 한국에서 좌파 운동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망해버린 상황에서, 자칭 진보라고 싸돌아다니는 혹은 진보 정당의 지지자라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저와 같은 것이 똑같이 드러나고 있다. 20년 만에 운동권의 모습이 일반에 다시 나타난 것인가! 하면 그게 아니라, 그 때 그 인간들이 386에서 지금 586세대가 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개선된 것이 없이 그대로 내리 계승되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를 고치려 하지 않았고 페미니스트 활동에 귀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좌파 & 진보 진영 안에서 여성 활동가들과 동지들에게 일어났던 사건들, 그 후속 처리들 등을 보면 특히 변한 것은 없다.)

2016년 5월 현재 페이스북과 클리앙을 위시한 온갖 자칭 진보들이 ‘일베나 메갈이나’하며 페미니즘 활동에 ‘무대에서 끌어내려 떡이나 쳐라(Take her off the stage and fuck her)!’ 같은 소리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도 공부 안 하고 말만 많던 386들이 지금 상당 수 현실 정치인이 되어 있고, 지금도 여전히 공부 안 하고 말만 많은 인간들이 진보랍시고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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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ll Street Ogle-In Of 1970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지금 페미니스트 진영 일부에서 ‘미러링’이라고 부르는 것 비슷하게) 그 당시 ‘추파의 날(Ogle day in Wallstreet)’이라는 걸 만들어서 남성들이 여성에게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들을 던지는 걸 그대로 되돌려주는(same kind of double-edged sexualized compliments) 활동을 기획했다고 한다.

  • ‘미러링’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의에 논란이 있지만, 그 개념이 저 때부터 있었다고.
운동 집단에서 여성의 위치

게임에서 규칙의 의미

아날로그 게임에서 규칙은 ‘할 수 없는 것의 리스트’를 뜻한다. 이 공식적인 규칙 외의 것들은 플레이어들끼리 합의를 하거나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바둑은 플레이어끼리 반상에 돌을 놓는 것만 할 수 있고, 어떻게 놓인 돌은 어떤 효과를 갖는다는 것에 대한 규칙이다. 플레이어들은 이 외에 정해지지 않은 ‘사소한’ 바둑 돌을 손에 쥐고 딸깍거리거나 뭉쳐 흔들며 소리를 내거나 하는 행동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만약 플레이 상대가 상대의 행동이 불편하거나 자신의 플레이에 방해된다고 느낀다면 이에 불만을 표시할 수 있고, 두 플레이어가 합의해서 ‘돌 굴리는 소리를 내지 말자’고 임시적인 금지 규칙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규칙은 임시적인 것이고, 상대가 바뀌거나 새로운 게임에서는 다시 이전의 규칙을 계승하는 합의를 해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축구 같은 구기 종목도 (현대에 와서는 매우 상세해졌지만) 기본적으로는 상대의 골에 공을 넣는 것만 규정이 되어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경기장 안에서 상대를 때리거나 꼬집거나 옷을 붙잡고 늘어진다거나 하는 ‘사소한’ 방해 행위들을 할 수 있다. 상대 팀의 선수들이 이를 불편하게 여기고 불만을 제기하면 플레이어들은 경기를 잠시 중지하고 이를 금지한다는 내용에 합의한 뒤 경기를 속행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규칙들을 현대의 공식적인 경기들 – 학교 대항전이나 프로팀, 국가대표의 경기 등 – 에서는 세부적인 내용까지 합의된 규칙이 존재한다. 물론 그럼에도 사소한 ‘창의적인’ 반칙들은 규칙 외에 존재하고 이것들은 새로운 국제적 표준 합의에 의해서 정리되기 전까지는 암묵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인 상태이다.

흔히 TRPG라고 말하는 종이 RPG(pen and paper RPG)게임에서 규칙은 아날로그 게임과 같은 맥락을 갖는다. 플레이어들은 어떤 것을 하기 위해서 규칙책에 규정된 내용은 반드시 해야하지만, 이 외의 것들은 플레이어와 마스터,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합의로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창의적인’ 플레이는 마스터를 당황하게 하기도 하고 파티원(동료 플레이어들)의 환호성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이 내용은 규칙 사이의 빈틈을 노리는 것이거나 마스터(P&PRPG에서 마스터는 규칙과 동일시된다)의 동의를 이끌어내어 합의되고 가능한 행동이 된다.

반면,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게임에서 규칙은 반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의 리스트’이다. 디지털 게임의 구현 과정이 ‘할 수 있는 기능의 구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프로그래밍된 행동만 할 수 있다. 즉, 구현된 기능은 할 수 있는 기능이고, 이것은 규칙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오픈월드 형태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구현된 내용은 게임 플레이의 규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위배되는 내용들은 애초에 구현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게임이 의도하지 않은 버그를 이용해서 플레이하거나 헛점(glitch)을 이용한 플레이는 디지털 게임의 구조상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플레이어들은 이런 규칙 위반이 플레이어들에게 이익이 되고 그 (관리자나 개발자에게 들킬) 위험이 충분히 낮다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게임에서 규칙의 의미

업적과 패턴

While games have evolved massively in the twenty-odd years since arcades ruled adolescence, those basic ideas of progression and completion remain integral to the experience. Yet we never really stop to ask: why is the illusion of accomplishment so central to games, and why do gamers need that sense of achievement from the games they play?

The answer lies in several foundational theories of psychology, and how the mind is built to cope with the world. In short, an addiction to achievements is an addiction to being human, and being human starts with the desire to punch a tree.

In the same way, a constant stream of achievements in a videogame can subconsciously encourage the player to carry on playing. Now, the idea of psychological conditioning has an assumed malevolence to it, and a tendency to conjure Brave New World style images of brainwashing and control. Indeed, the mainstream media frequently falls over itself to cite this similarity as another reason to demonise videogames (think of the children!). Yet conditioning is how all thinking beings learn to interact with the world, how to avoid hazards such as fire and satisfy basic needs such as hunger. Moreover, achievements are an extremely mild form of reinforcement, easily overridden by a rational human mind. In other words, people aren’t pigeons.

Why are you Addicted to Achievement?, IGN

업적이라고 흔히 번역하는 achievement를 나는 ‘달성도’라고도 쓰는데, 본문에서는 매슬로(Abraham Maslow)의 욕구 단계설과 스키너(B. F. Skinner)의 실험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들에게 무언가를 하게 만들고, 그것을 기뻐하게 만들고, 다시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만드는 과정의 밑바닥에는 한 층위가 더 있다고 보는 쪽이다.

Pattern pleases us, rewards a mind seduced and yet exhausted by complexity. We crave pattern, and find it all around us, in petals, sand dunes, pine cones, contrails. Our buildings, our symphonies, our clothing, our societies — all declare patterns. Even our actions: habits, rules, codes of honor, sports, traditions — we have many names for patterns of conduct. They reassure us that life is orderly.

– ESSAY; I Sing the Body’s Pattern Recognition Machine, New York Times

무질서 더미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려는 심리인데, 이렇게 찾은 패턴을 새로운 것에 적용하면서 그것이 들어맞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를 더 강화하기 위해서 ‘찾은 패턴이 정답입니다’라는 반응으로 ‘업적’을 획득하게 해주는게 추가된 것이고, 이 반복을 지루해하지 않도록 한 것이 스키너의 실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업적과 패턴

“쇼비즈니스는 탄광과 비슷해. 집에 가서도 때가 씻겨지질 않지.(The bullshit business, it’s like coal-mining – you come home to your wife and kids, you can’t wash it off.)” – Lester Siegel, Argo(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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